posted by cimple 2009. 7. 30. 16:50

감독 피트 닥터, 밥 피터슨 (2009 / 미국)
출연 이순재, 에드워드 애스너, 크리스토퍼 플러머, 조던 나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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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세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일단 그동안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장난감, 개미, 물고기, 괴물, 자동차, 쥐, 슈퍼 히어로, 로봇 등등... 여러분이 생각했던 '가장 참신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는 어떤 캐릭터였나요? 다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그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매력을 설명하고도 남는 주인공들이었지요.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영화처럼 크리스쳔 베일이나 메간 폭스를 주연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매번 캐릭터를 새롭게 창조해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새로이 그 존재를 납득시키고, 매력에 빠져들게끔 해야지요. 모두들 앞다투어 흥미로운 캐릭터, 감동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려 애씁니다. 

그런데, '78세 노인' 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생각해 보셨나요?




PIXAR의 10번째 애니메이션 <UP>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기 힘든 캐릭터를 가지고, 또 한번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풀어 냄으로써, PIXAR 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리고 왜 PIXAR 인지를 다시 한 번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UP>의 줄거리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모험과 탐험을 좋아하던 칼. 그는 자신과 같이 모험을 좋아하던 왈가닥 여자아이인 엘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자녀는 없지만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늙게 되고, 마침내 엘리가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도시 재개발의 열풍 속에서도 엘리와 살아왔던 집을 지키며 혼자 살아가던 어느 날, 칼은 건설 직원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양로원으로 퇴거 조치를 받습니다. 그래서 칼은 마지막 수단으로, 수천개의 풍선을 집에 달아 집을 통째로 하늘로 띄워 올립니다. 그리고 아내인 엘리가 그토록 가기 원했던 남아메리카의 폭포를 향해 날아갑니다.

그런데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그의 여정에 예기치 않은 불청객들이 찾아옵니다. 꼬마 탐험가 러셀, 강아지 더그, 도요새 케빈. 그리고 칼이 어린 시절 우상으로 여겼던 탐험가 찰스 먼츠까지. 이들과 얽혀들며, 칼은 남아메리카의 오지에서 펼쳐지는 갖은 모험을 펼칩니다.

PIXAR 애니메이션은 항상 그렇지만,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들 나름대로 영화를 해석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린이들이 봤을 때에는 집이 풍선을 타고 날아다닌다는, 그리고 야생에서 두근거리는 모험을 즐긴다는 즐겁고 유쾌하며 환상적인 상상력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어린이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어른들이 영화를 볼 때에는 그들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철학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번 <UP> 이 던진 질문은, 그 동안의 PIXAR 애니메이션이 던졌던 질문 가운데에서 가장 녹록치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UP>, 아름다운 보수를 이야기하다.

UP 이 추구하는 가치는 사실 난해합니다. 그동안 PIXAR 애니메이션이 보여주었던 뚜렷한 가치관의 제시에 비해, UP 은 조금 어려운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저울질합니다.

영화는 단순히 '한 노인이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오던 꿈을 끝내 이룬다' 라는, 어떠한 '숭고하고 지켜져야 할 것을 지키는 것에 대한 예찬' 에만 몰두하지 않고,
또는 '낡아빠진 옛것에 매달리지 말고, 새롭고 가슴 떨리는 모험에 도전해라' 라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메시지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약속했던 자신의 오래된 신념을 지켜 나가는 '보수적' 가치와,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삶의 양상을 받아들이고 또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는 '진보적 가치'. 영화는 이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제시하고, 그 가운데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관객들로 하여금 칼과 함께 고민하게 합니다. 그 고민은 쉽지 않습니다.



칼은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과, 자신이 고수해온 가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랑하는 아내 '엘리' 와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온통 사방이 공사중이어도 고집스레 자신이 살아온 터전을 지켜 나가는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점프컷으로 짧게 표현되지만, 칼과 엘리가 서로 행복하게 사랑하면서 늙어 가는 모습을 그려 낸 부분은,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만큼 칼에게 자신의 추억과, 자신이 추구해온 가치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칼은 진심으로 엘리를 사랑하며,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고 싶어 합니다. 엘리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항상 남아메리카의 아름다운 폭포에 가서 그 곳에서 가슴 떨리는 모험을 하면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보물처럼 여기는 탐험 일지에 '내가 앞으로 할 일들' 이라는 제목을 적어놓고, 그 뒤로는 백지로 남겨둔 채, 바로 그곳에 찾아가 '가슴 떨리는 모험들' 을 적어 나가겠다 소망했습니다. 칼은 꼭 그곳에 같이 가자는 엘리와의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천개의 풍선으로 집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날아갑니다.

수천 개의 풍선으로 집이 떠오르는 장면은 단연 <UP>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예고편이 등장하는, 다행히도 저는 '진짜' 보고싶은 영화는 예고편조차 보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데 가장 최고의 준비는, 그 영화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상태 아닐까요? 때문에, 이번 <UP> 도 참 다행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한 할아버지가 아내와의 아름다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적지에 도착하고, 어릴적 탐험의 꿈을 이룬다. 끝.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간단한 답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칼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예기치 않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동행하게 됩니다. 천진난만한 아이 러셀과, 강아지 더그, 도요새 케빈.

칼은 그의 삶에 새로이 개입한 것들을 거추장스러워 합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아내 엘리와의 약속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남아메리카의 아름다운 폭포로 떠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인데, 러셀과 그 친구들은 자꾸만 그의 발걸음을 더뎌지게 만듭니다. 때문에 칼은 그들과, 그들과의 관계를 애써 밀어냅니다.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쫓아다니는 강아지 '더그' 도 싫고, 까악거리면서 졸졸 쫓아다니는 도요새 '케빈' 도 귀찮을 따름입니다.

칼이 보수를 대표한다면, 천진난만한 아이 러셀은 진보의 상징과 같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데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을 꿈꾸는 아이. 그 또한 항상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은 줄 알지만, 실제로 그것에 뛰어들면서 그게 생각처럼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들을 배웁니다. 그 아이로 인하여 보수로부터 기꺼이 배움을 마다하지 않는 아름다운 진보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남아메리카의 오지에서 그들과 이미 얽혀버린 칼.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불편한 칼은 다른 이들과의 동행을 거부하고 혼자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걷습니다. 풍선에 매달린 집을 끌고 걷지만, 그 때 그의 모습은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처럼 어둡게 그려집니다. 날으는 집을 타고 행복을 찾아 두둥실 떠오르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아름다운 약속은 굴레가 되어 그를 얽매고 있습니다.

칼은 마침내 아내와 약속했던 그 곳, 그 폭포에 닿는데 성공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일을 달성해 낸 후, 그는 조용히 집 안에 들어와 앉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일,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약속을 지켜낸 후인데,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칼은 조용히 엘리의 탐험 일지를 펴듭니다.

그때, 칼은 당연히 백지여야 할 '내가 앞으로 할 일들' 의 다음 페이지들이 백지가 아닌 것을 발견합니다. 그 곳에는 엘리와 칼이 함께 했던 사진들이 붙어 있습니다. 엘리에게는 칼을 만나고, 그와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왔던 모든 날들이, 마치 꿈꾸던 이상향에 다다른 것 같은 행복이요 아름다움이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칼은 비로소 발견합니다. 오랫동안 숙원해 온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라는 것을 위해 인생을 희생하는 것 보다, 매 순간 순간의 삶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진짜 이상향이었다는 사실을.



칼은 자리를 딛고 일어섭니다. 엘리가 칼에게 지켜달라 원했던 것은 '약속' 이 아니라, '행복' 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삶의 매 순간을 밀쳐내지 않고 포용하고 받아들임에 있다는 것. 그래서 칼은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집의 정든 물건들을 하나씩 내버립니다. 고집스레 붙들어 왔던 그 오래된 집착들로부터 벗어나자, 칼의 집은 다시 두둥실 떠오릅니다. 진짜 행복을 찾기 위해서.

쉽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지만, 이면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며,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가치가 다르지만,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함께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메시지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바로 칼의 어릴적 우상인 찰스 먼츠입니다. 그는 광기어린 극도의 보수주의의 상징입니다. 도요새를 잡아서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또한 원래는 순수했던 탐험가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다른 이의 침입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며, 이미 배타적인 욕심이 그의 삶을 삼켜 버린 후입니다. 그로 발생하는 폭력과 억압은 보수주의의 가장 안좋은 단면을 드러냅니다.



다양한 가치를 가진 수많은 사람이 한데 얽혀 살면서도, 서로 다투지 않고, 싸우지 않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것.
날아다니는 집을 타고서 도착한 꿈같은 장소에서조차 그것을 찾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여정 속에서 해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영화는 말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닿을 수 없는 이상향처럼 여겨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유쾌한, 그러나 평가는 엇갈릴 수 있는.

<UP> 은 충분히 유쾌하고 즐거운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개' 를 이용한 여러 가지 개그 코드 (개에게 테니스 공을 던지면 열심히 물어 온다던지, 개가 다람쥐에게 신경이 온통 쏠린다던지 하는) 들은 사실 미국 문화에 익숙한 것이라서 100% 공감하고 웃기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스럽거나 저질스럽지 않은 유머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관객들로 하여금 유쾌함을 선사합니다. 또 일단 영화 내내 '풍선을 매달아 집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또 끈으로 집을 묶어서 손에 들고 다닌다' 라는 재미있는 설정은 동심을 자극하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의 무게감 때문에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즐거움을 만끽함과 동시에 진지한 질문들을 던져 볼만한 영화로 생각됩니다.

또, 매번 PIXAR 장편 앞에 방영되는 PIXAR 단편 애니메이션이 이번에는 정말 '대박' 입니다. 멋진 상상력과 기막힌 호흡으로 만들어진 이번 단편 애니메이션은 또한 한국인 2세 감독이 연출했다고 해서 더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이지요.



언제나 PIXAR 작품을 볼때마다 되풀이하는 말은

"아, 우린 언제 저런거 만들어보나?"
"우와, 진짜 이런거 한번 만들면 진짜 소원이 없겠다"

...이번에도 어김 없었습니다.

벌써 열 번이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 <UP> 을 보며, 또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한없는 부러움을 가져 봅니다. 하지만, 우리도 할 수 있겠지요?

네, 할수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할 일들"

아직 제 모험 노트는 그 뒤가 백지로 남겨져 있으니까요.



ThEnd.


p.s.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PIXAR animation studio 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