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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5 극단 '드림' 의 연극 - "경로당 폰팅사건"
posted by cimple 2010. 3. 15. 21:07



세월이 흐르고 흘러 돌고 돌아, 여기 웃음과 눈물로 굳어졌다. -
극단 드림의 연극 “경로당 폰팅사건”



우리에게 연극이란?

삶은 한 편의 연극과도 같다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우리는 매일 아침 무대에 올라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광대와도 같다는 말. 그래서 우리의 삶은 연극과 꼭 닮았고, 연극에는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나 보다. 그래서인지 이번 KAIST 문화행사는 공연 시작 한참 전부터 이미 모든 좌석이 예매가 끝났고, 공연이 시작되자 입추의 여지없이 관객들이 들어섰다. 무미건조하고 피로에 지친 바쁜 현대인들이 그토록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까지 원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웃음과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감동. 그것을 가까운 우리네 삶에서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갈망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연극 ‘경로당 폰팅사건’ 에는 그것이 있었다. 우리와 가까운 이들이 있었고, 우리가 함께 할 유쾌한 웃음이 있었으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눈물과 감동이 있었다.



경로당, 그 나이든 소년, 소녀들.

연극은 시종일관 하나의 무대,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경로당. 노인들이 모이는 공간. 모두가 똑같이 벌거벗고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삶이란 측량할 수도 없고 저울질 할 수도 없는 모든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것일진대, 그 숱한 인생의 굴곡을 돌고 돌아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이들의 모습은 또한 다시 엇비슷해진다. 삶의 모든 것에 익숙하고, 모든 것을 알 만도 하건만, 오히려 그 만큼 여전히 아이같이 설레이며 떠들썩한 노인들. 몸은 두 다리 후들거리도록 천근 만근처럼 무거워도, 마음에는 무게가 없을 터, 여전히 노인들의 젊은 마음만큼은 요란스레 들썩인다.
그래서 그 들썩이는 마음은 홀로 남겨진 그들의 외로움에 직면할 때마다 더욱 갈곳없이 방황하고 외로워지며 침울해진다. 경로당은 노인들의 만남이자 소통의 장이지만, 서로의 외로움을 부벼대는 측은한 놀이터이기도 하다. 화투를 치고, 장기를 두며,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모두 그들의 외로움에 대한 줄기찬 항변이다. 연락이 되지 않는 자식들. 먼저 떠나가버린 사랑하는 아내, 그 고독의 틈바구니에서 슬픔과 아픔을 잊고 살아가기 위해 그들은 오히려 더욱 분주하려 애쓰고 소란스러우려 노력한다. 그것이, 이 시대 잊혀져가는 노인들의 자신들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들의 자그마한 사건, ‘경로당 폰팅사건’

사실 연극의 주제가 되는 ‘경로당 폰팅사건’ 은 대수롭잖은 일이다. 경로당의 전화비가 수백만원이 나왔는데, 그게 전화로 음란한 이야기를 하는 폰팅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 때문에 노인들은 서로 서로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가 자세히 알게 되고, 서로의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결국 범인은 노인들이 아닌 다른 젊은이었다. 그런데, 그 젊은이에게 경로당 노인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하나가 되어 남긴 편지가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꼭 같은 말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말들이었다.

“젊은 시간은 생각보다 짧아. 그 주어진 시간동안 좀 더 진솔하고 진실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자네가 되었으면 좋겠네.”
“우리는 그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떠나보냈고, 또 얼마 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야만 하지.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하도록 해.”

그 마지막 한 마디 한 마디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이었다. 또한, 그 말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른 사람들만이 건넬 수 있는 진심어린 충고였다. 우리네 삶에서 소외받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외면받기 쉬운 노인들. 그러나 아무리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더라도, 그들이 건네는 진실된 삶의 조언 한 마디는 여전히 어리석고 절제력 없는 젊은이들에게 소중하고 귀중한 것이었다. 세대간 너무도 높다란 벽으로 서로를 감싼 요즘과 같은 시대, 연극 ‘경로당 폰팅사건’ 은 그 너머에 있는 서로가 전혀 다르지 않은, 나와 닮은 똑같은 사람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며, 그 머나먼 듯 느껴지는 소통의 거리를 약간이나마 메워주는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Th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