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10. 11. 26. 17:26



으레 3,4위 전이라는 것은 무관심 속의, 맥없는 경기가 되기 마련입니다. '유종의 미' 라는 단어로 치장해보지만, 어쩔 수 없이 두 팀 모두에게 패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채 치루는 경기이기 때문이겠지요.

더군다나 어제와 같은 경우라면 더욱 그랬습니다. 군복무 면제라는 얄궂은 것이 오로지 1등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기에, 그들에게 3등은 애초부터 의미가 없었잖아요.


그것을 위해 팀과 마찰까지 빚어가며 날아온 선수가 있었고,

한발 먼저 이루어낸 야구 대표팀의 화려한 우승이 있다는 것,

또한 4강에서 종료 직전에 당한 어이없는 패배 때문에, 그들 모두는 비웃음과 조롱 속에 깊이 잠겨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의 3, 4위전이라는 것은, 어쩌면 잔혹한 것이었죠.



하지만, 단언컨데,

어제는 그 누구도 그들을 비웃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제가 운이 좋았을까요? 3:1 부터 경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스코어에서, 앞서 말했던 그 모든 무기력과 좌절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쓸쓸히 끝나고 돌아가는 것이구나, 씁쓸했습니다. 즐거워하는 이란 관중들의 모습에서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마, 선수들도 마찬가지 마음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포기의 문턱으로 들어설 만한 후반 33분, 박주영 선수에게 기회가 옵니다. 솔직히 철렁했어요. 들어가는 공이 너무 높았거든요. 그런데, 다행히도 나가지 않고, 상대방의 골문을 뚫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너무 없어서, '기적같은 역전' 을 바라기에는 너무 양심없어 보이는 시간이었죠. 게다가 상대방 이란 선수들의 질질 끄는 플레이와, 심판의 애매한 판정들이 더해져 더욱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살인적인 일정을 치루어내고 마지막 경기의 후반 40분대에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 때, 선수들은 더이상 아시안 게임도, 금메달 좌절도, 3,4위 전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은, 단지 '축구' 속에 빠져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결국, 기적은 현실이 되죠. 후반 42분과 43분, 지동원 선수의 천금같은 헤딩슛이 얄밉게 미적거리던 이란의 골문을 뒤흔들어 버렸습니다. 정말 그 순간 순간이 현실인가 싶은, 거짓말같은 동점, 역전골이었죠.  

4분의 길고 긴 인저리 타임 후에 경기가 끝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태극 전사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정말 기뻤고,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 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물론 우승하지 못했죠. 그동안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있던 박주영 선수는 군복무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도 밝혔듯이, 인생에 있어서 정말 큰 것을 배우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모든 것이 좌절되고, 망쳐버렸다고 생각되는 그 때에, 축구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롭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

그렇게 큰 것을 얻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오히려 그의 인생에는 더욱 큰 의미와 가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어찌 보면 공을 차서, 다른 편에 넣는 놀이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그로부터 삶과 인생을 살아 나가는 가치를 배우게 하고, 그로부터 국민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대한민국의 축구라는 것은, 참 언제 보아도 뜨거운 스포츠입니다.



잘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신들은 이겼습니다. 승리자입니다.



ThEnd.



p.s. 수고하신 홍명보 감독님께도 다시 한 번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더욱 훌륭한 명장으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