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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04 해프닝(Happening, 2008) 1
posted by cimple 2009. 2. 4. 07:13
해프닝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2008 / 미국)
출연 마크 월버그, 주이 디샤넬, 존 레귀자모, 애슐린 산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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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 의 과학적이고도 명확한 설명에 대한 인간의 집착, 비판.

명쾌하고, 분명했습니다.
영화를 본 이후, 이렇게 또렷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제 머릿속에 들어오고, 그 메시지가 밝은 것도 오랜만인 것 같네요. 물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제가 받아들인 것과 동일하게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제가 본 영화 '해프닝' 은 그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 구조만큼이나 간결하고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난 주위 사람들로부터 주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대체 뭘 말하려는 지 모르겠다."
"뭐가 어쨌다는 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 저는 그들의 이러한 반응들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비교하여,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는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죽어 나갑니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자살을 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테러리스트의 소행인 줄 알았지만, 관찰 분석 및 연구 결과 이 현상은 '자연적인' 일이며, 특수한 화학 물질이 인간의 자기방어기제를 자기공격기제로 바꾸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은 이러한 일들이 '나무' 에서 기인한다고 가설을 세우며, 나무가 집단을 가진 인간을 공격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살아 남습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인간이 잘 모르는 것도 존재한다" 입니다. 이것을 꾸준히 역설합니다. 끝내 영화는 이러한 현상이 왜 생겼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파괴적인 행동에 대한 자연의 경고이고, 나무의 공격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어째서 이러한 일이 생겼는지 밝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밝히 알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하고, 어느 정도 그 현상을 분석해 내는데는 성공합니다.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인간이 과학적 사고를 하는 방법이지요. 가설을 세우고, 실험과 관찰을 통해 검증하는 과정. 인간이 자살을 하게 되는 이유, 그리고 특정 크기의 집단이 죽는 이유와, 어떻게 하면 살아 남을수 있는가 등등을 찾아 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잘 모르는 것' 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발달한 현대 과학사회의 사람들은 이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잘 모르는 것이란 존재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 명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는 전문가의 의견에 대해 시청자들과 아나운서는 굉장히 냉소적인 시선을 던집니다. 그리고, 사건이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놓고, 사람들은 그 배후에 정부가 존재할 것이라는 음모 이론으로 이것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 모르는 것' 으로 방치하는 것 보다는 마음이 편하니까요. 그것이 과학적인 사고이고, 합리적인 이성이라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을요.

자연을 분석하고, 인간과 그 주위의 모든 현상을 연구하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아직까지 인간에게는 미지의 영역, 전혀 모르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고, '알 수 없는 것' 으로 남겨진 것들이 무한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지성체이며, 과학적이라 생각하는 인간은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잘 모르는 것' 으로 남겨두는 것을 죄악으로 여깁니다. '잘 모르는 것' 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과학이라는 행위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떠한 비밀도 인간은 모두 밝혀낼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과학의 오류와, 교만함과 오만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불확실성과 미지의 것 투성이일 텐데, 그래서 영화에서 나오는 수학 교사의 말처럼 인간은 근거 없는 62% 라는 숫자라도 제시받았을 때 위안을 받는 존재인데도 인간은 스스로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실상은,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차를 태워달라는 애절한 부탁을 묵살하고 출발해버리는 이기심이고, 꽁꽁 문을 닫아버리고 도움을 청하는 바깥 사람에게 총을 쏴버리는 얼굴 없는 학살자입니다. 과연 이러한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 잔혹함도 과학과 이성, 합리적인 사고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영화 내내 사람들은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결국 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부분들, 컴퓨터로는 프로그래밍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 같은 것들이 현존함을 부정한다면,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스스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영화는 역설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난 후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대체 뭘 말하려는 지 모르겠다."
"뭐가 어쨌다는 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우리에게는 무언가를 보고, 그 원인, 과정, 결과, 의미, 모든 것을 명명백백히 알아야만 하는 일종의 집착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추상화를 감상하는 것과 비견될 수 있겠습니다. 추상화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대체 이게 무엇을 그린 것인가? 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질문합니다. 무언가 있을 것이다. 무언가 의미하고 있을 것이다.


그림 1. 잭슨 폴록의 추상화.



하지만 추상화는 그렇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를 보고 있는 순간 '예술' 과 '나' 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 상호작용 안에서 예술적 가치가 만들어지는 그림일 텝니다. 거기에 대놓고 과학적, 합리적, 이성적인 이유와 원인, 설명을 요구한다면 허공에 공허하게 울리는 외침이 아닐까요.

영화 <해프닝> 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최고의 위치에서 끌어 내리더니,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만들어 버리고, 요즈음에는 아예 그런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믿는 당신에게도, 바로 오늘, 지금 이순간, '어떤 일' 들은 끊임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당신이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ThEnd.


p.s. 여주인공 주이 디샤넬은 정말 아름답더군요. 영화 보는 내내 "우와..." 최근 보았던 영화 <예스맨> 의 여주인공이었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그림 2. 주이 디샤넬.



p.s.2. 공감 많았던 영화 내용에 반해, 좀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들이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메시지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좀 불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좀 관객들에게 충격이 필요하긴 했겠지만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