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10. 2. 28. 01:30




그냥 이 영상 하나로 설명.


ThEnd.
posted by cimple 2010. 2. 24. 22:05






오늘 오후 한시, 저도 그렇고, 대한민국이 숨죽여 지켜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미 그 아름다운 스케이팅에 매료되어 있는 스스로를 보며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 모든 불안함과 걱정마저 흔적도 없이 사그라지게 만드는 환상적인 공연.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김연아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수천번은 뛰어봤을 점프. 수백번도 넘게 연습했을 곡과 안무.
하지만 그럼에도, 그 단 한번의 무대에서, 단 몇분만에 모든것이 결정되어 버리는 그 자리에서,
'전혀 실수없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껏 연습해 온 그 엄청난 노력들은 나의 소중한 자산임과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부담입니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감과 바램은 내 손끝마디까지 파르르 떨리게 만듭니다.
그 모든것을, 가뿐히라는 표현으로는 너무 가벼운, 그러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는 듯이 사뿐히 올라앉은 저 나이어린 소녀의 모습이, 왜 그렇게도 아름답고 또 대단해 보이던지요.

오늘, 김연아 선수와 비교는 우습지만 문득 제 군대 시절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름다운 김연아 선수 이야기하다가 괜히 군대이야기 나오니까 이거 칙칙하네요. 왠지 냄새도 나는것 같고. 컹컹)
제 보직은 "암호병" 이었습니다.
군에서 이야기하는 3대 축복받은 보직 중의 하나라지만, 저는 사단 소속이 아니라 연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암호실 없는 암호병은 무던히도 각종 작업에 불려 나가야만 했더랬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구르는 재주가 하나 있었던 게, '암호를 빨리 만들고, 빨리 푸는 데' 조금은 소질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단에서 저를 군단에서 개최하는 '암호 경연대회' 에 출전시키고자 파견 근무를 시켰습니다.

대한민국 육군의 암호체계를 이 자리에서 언급하는 일이야 안 될 일이지만 (관심도 없으시죠? 예 예 ㅡ_ㅡa 긁적)
약간만 기밀을 누설하면, 100자를 만드는데 암호병으로서 요구되는 시간은 15분입니다. 사실 이 시간도 그렇게 만만한 시간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단에서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이 시간을 무려 5분 안쪽으로까지 줄입니다...;;
처음에 보면 무슨 괴물들을 보는 것 같았죠.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단지 손으로 쓰는 시간동안 다음 글자의 계산을 끝냅니다.
하지만 이 암호라는 것이 마치 타자연습 비슷한 것이라서, 아무리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정확도가 무조건 우선입니다. 그래서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단지 몇 분의 시간 안에,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해서, 그 한번으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나 버리는.
살면서 수많은 시험이나, 테스트, 평가들을 받아왔지만, 그만큼 첨예한 칼날 위에 올라가 있는 듯한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경연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참 부던히도 많이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습니다.
사실 밖에 나가서 전혀 쓸모도 없고, 오히려 다 잊어버려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돌아보면 감사한 일입니다.

결국 저도 제가 보던 괴물들처럼 되더군요. 1년 가까이 꾸준히 연습을 하자, 이제는 제가 역대 가장 좋은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3분 초반대의 기록을 가지게 된 것이죠.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몇번은 3분 안쪽으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우승은 당연시 되었습니다. 유일한 경쟁자는 함께 출전하는 같은 사단 암호병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암호 경연대회날. 어줍잖지만 '장비' 도 준비합니다. 부러지지 않도록 연필을 곱게 깎아서 준비하고,
사용할 여러 준비물들을 챙기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담이 크다거나 용기 백배한 스타일은 아닌지라, 떨리는 마음을 쉽사리 진정시키기는 어려웠지만
또 침착하기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경연대회. 군단 내에 있는 각 사단에서 2~3명의 암호병들이 한데 모여 승부를 가립니다. 경연대회는 2가지로 나뉘어 펼쳐집니다. 평문을 암호문으로 정확하게 만드는 테스트, 암호문을 평문으로 해독하는 테스트.
사실 평문을 만드는 해독은 실수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문제는 실수 여부가 나중에야 판단되는 '암호문 만들기' 테스트이지요.
첫 번째 테스트.
감독관의 '시작' 소리가 들리고, 이후로는 무아지경입니다. 이제껏 해왔던 대로, 익숙하게 왼손을 놀리고, 오른손을 놀리고, 글자를 써 내려갑니다. 글자를 쓰는 종이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일정한 호흡으로 죽 써내려 나가면 자동으로 암호문은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데에 대한 긴장은, 확실히 최고 수준의 기록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몸에 배어 버린 습관과도 같은 연습의 결과물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끝. 4분대의 기록이 나왔습니다. 군단 전체에서 가장 빠른 기록입니다.

해독은 쉽습니다. 말이 되는 문장이 만들어지면 되기 때문에. 끝. 역시 가장 빠른 기록입니다.

그리고 나서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우승이다.
오랫동안 함께 해 왔던 다른 암호병들, 그리고 이래저래 저를 괴롭게도 했고 즐겁게도 했던 암호관님의 생각도 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오랜 노력의 시간들을 쏟아낸 제 자신과 마주합니다.
그래, 수고했어.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암호문을 만드는 데 있어서, 실수가 있었다고 나왔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정확했는데. 정말 틀림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미 손 안에 잡혀 있던 것이 빠져나가 버리는 느낌이었고,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이제껏 기존에 암호문을 만들던 방식에서는 쌍따옴표 ( " ) 를 점 1개로 만들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쌍따옴표( " ) 를 점 2개로 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실수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억울한 일이었죠. 그렇게 바뀐 규정에 억울해했고, 암호관님도 항의를 하셨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다음 대회가 있을 때에 저는 전역을 할 것입니다. 그건 저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 첨예했던 저의 도전은 아쉬운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도전을 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 스스로를 몰아넣어 볼 수 있었다는 것.
제 자신의 한계를 체험해 보고, 생각의 속도를 정말 끝까지 올려보며,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 보았던 것.
그리고 단 한번의 기회라는 그 순간에 처해보고, 겪어 보았다는 것.

그것은 정말 어디서도 얻기 힘든 소중한 자산입니다.



우중충한 군대 이야기를 세계 최고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여신 김연아 선수와 매치시키다니요.
저도 참 어지간히 넌센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김연아 선수가 링크 안으로 스케이트를 밀며 미끄러져 들어갈 때,
그 때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감정이 어렴풋이 무엇일까.
저는 그 '감정' 이라는 것에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공감과 동감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도전이 마음에 와닿고, 그것을 극복해 내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지요.

물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금요일에 진정으로 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지요.
연약했던 저는 그 최후의 순간에 쓴웃음을 지었지만,
강인한 김연아 선수는 활짝 핀 밝은 웃음을 지어줄 것입니다.

그럼 그 웃음 또한 제 것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겠지요.


ThEnd.


p.s. 아, 물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 또한 우리 모두의 눈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