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10. 11. 13. 06:22

초능력자
감독 김민석 (2010 / 한국)
출연 강동원,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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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다룬 이야기.

Heroes 라는 너무도 유명한 미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우리들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으로 인해 어떻게 고뇌하고, 번민하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 그 개개인이 성장하고, 하나 둘씩 서로를 이해해가며, 정말로 영웅이 되어가는지, 그 섬세한 접근이 Heroes 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드라마로 만들었죠. 또 다른 초능력자를 다룬 영화, X-man 이 선하고 악한 뮤턴트 각자의 신기한 초능력을 보여주는 오락물에 가깝다면, Heroes 는 놀라운 초능력을 가진, 너무도 평범한 '사람’ 개개인에 입체적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인물들이 불분명한 선과 악 사이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성장시키고 그에 따라 판단내리죠. 그러면서도, 초능력자들이 가진 특유의 신비한 능력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키며, 탄탄한 스토리는 긴박감과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듭니다. 때문에, 더 이상의 초능력자를 다룬 매력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할 정도로, Heroes 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물론 시즌을 거듭하면서 안타까워졌지만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Heroes

이 외에도 초능력을 가진 인물을 다룬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전작들은 사실 무수합니다. 영화 ‘초능력자’는 어떻게 이러한 거대한 전작들의 망령의 틈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처음부터 녹록치 않은 과제를 부여받은 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초능력자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의 아픔은 무엇일까? 결국, 그 초능력이라는 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가? 영화 '초능력자' 는, 이런 질문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 그 질문이 처음 시작된 지점으로 되돌아갑니다. 바로 '초능력' 의 본질. '남들과 다르다' 는 것으로요.

 

남들하고 다른 사람을, 남들과는 다르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영화 '초능력자' 는 '남들과 다르다' 에 대해 나름의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입히려 시도했습니다. 영화는 '남들과 달라서 막강한' 초능력 뒤에, '남들과 달라서 연약한' 인물들과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합니다. 일단 노골적이게도,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초능력자(강동원) 본인이 다리 한 쪽이 없는 장애인이고, 또 다른 주인공인 임규남(고수) 또한 중학교 중퇴의 일용직 노동자로서, 사회의 약한 고리에 있는 인물입니다. 규남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서, 원래는 약간의 지적 장애를 가진 인물로 설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 볼수 있었고요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런 설정은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또한 규남의 가장 절친한 친구들은 터키와 가나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었고, 주된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 또한 사회의 뒷골목과 같은 작고 허름한 전당포이며, 영화 후반부에 규남이 휠체어에 앉은 채 정신지체 장애인이 되어 있는 장면 또한 의도적인 설정으로 보였습니다.

임규남(고수) 의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

영화는 꽤나 명백하게, '남들과 다름' 으로 소외받고 고통받는 계층들을 영화 안에 삽입하여, 그들이 품고 있을 분노와 외로움을 초인(강동원) 을 통해 분출합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잘못도 없이 미움받고 차별받는 이들. 그들이 가진 '남들과 다름' 은 무력하고, 나약해서, 무시당하고 조롱당합니다. 하지만 초인(강동원) 이 가진 '남들과 다름' 은 막강한 것이죠. 때문에, 그동안 '평범함' 을 무기삼아 폭력과 잔혹함을 행사해왔던 '보통 사람들' 에게, 그 폭력과 잔혹함을 '남들과 다름' 을 통해 되돌려줍니다. 다른 이를 돌아보지도, 귀기울이지 않던 보통 사람들이, 일제히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도 자신의 목마저 스스로 비틀어 꺾는 역설적인 상황. 또한 모두를 조종할 수 있지만,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초능력자의 고통.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남과 다름' 으로 잣대질하고 저울질하는 그 편견과 오만의 틀 속에, 우리 자신을 해칠 괴물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는, 영화는 나름의 '남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초능력자' 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영화는 '초능력자' 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사회 문제와 연결시켜 그 중심축을 마련한, 꽤나 의미있는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볼거리, 흥미위주로 던져질법한 소재를 가지고 주인공 개인과, 영화를 보는 관객, 그리고 그 전체를 둘러싼 사회 전체까지 아우르려한 영화의 대범한 시도는 분명 훌륭하게 이루어졌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그 '볼거리', '흥미' 에 어설프게 발을 담그려 하면서부터, 영화는 삐그덕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어긋난 가장 첫 단추에, '너무 잘생긴 주인공' 들이 있습니다.


괜찮은 각본, 하지만 아쉽기 짝이 없는 영화.

일단 정말로, 주인공들이 너무 잘생겼어요.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이, 진지하게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방해해버립니다. 일단, 주인공인 초인(강동원) 의 배역이, '너무 잘생긴'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외모로 인해 몰입감과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강동원이 연기한 '초인' 은 샤프하고, 시크하며, 냉철하고 치밀한 이미지의 초능력자입니다. 하지만, 본래 각본상의 초인은 그런 모습이 아닌 듯 해요.

너무도 아름다운 초인, 강동원

일단, 초인은 폭력적인 가정에서 불우하게 자라났으며,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어머니의 품을 떠나 고아로 홀로 살아가게 됩니다. 때문에, 그의 성장 배경상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강동원이 연기한 샤프하고 시크한, 냉철하고 치밀한 캐릭터가 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고수를 만나기까지 그는 허름한 전당포 등에서 몰래 돈을 가져오죠. 물론 그런 곳이 돈이 사라지더라도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곳이어서 일부러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못 배우고, 사람과 교류하기 힘든 초인(강동원) 에게는 그런 곳이 돈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고, 자기에게 익숙한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 좀더 설득력있게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뒷골목에서 적은 돈이나 훔치면서, 자신의 엄청난 능력으로 세상을 뒤흔들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다가,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임규남(고수) 을 만나서 모든 일이 커지고, 뒤틀어져 버린다. 라는 것이 원래 의도된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실제로, 초인의 캐릭터는 정처를 모르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합니다. 사회에 대해 나지막히 독백하는 첫 부분부터,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자신만의 공간을 두는 모습에서는 천재적이고 치밀한 이미지를 보였다가, 전당포를 뒤지고, 임규남(고수) 에게 천박한 욕설을 내뱉는 모습에서는 갑자기 그 섬세한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무식한 이미지가 씌워집니다. 그렇게 초인은 본래 자신과 강동원이라는 꽃미남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습니다.

그건 고수도 마찬가지였죠. 다행히 임규남이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붙들어 둘 추 같은 것이 있어서, 일단 그것만 붙잡고 늘어지면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캐릭터였지만, 진짜로 차별받고 소외받는 '남들과 다른' 계층을 표현하기에는 고수도 너무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나 합니다. 임규남이 방바닥에 뒹굴거리며 구직란을 뒤적거릴 때, 주위에서 '할거 없으면 그 얼굴로 배우나 하지'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강동원, 고수라는 스타 파워는 영화를 흥행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될 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본래 의도한 주제를 생각해 보았을 때 '너무 잘생긴 배우' 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관객으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만드는 까끌까끌한 모래알 같은 요소였습니다.

역시 너무 잘생긴 임대리, 고수

또한, 서브 캐릭터들이 너무도 정체 모를 역할들이었습니다. 일단, 임규남의 두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 임규남은 그들과 진정으로 허물없이 절친하게 지내죠. 아마도 이러한 '편견없는 소통' 이 임규남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었고, 능력이었으며, 어쩌면 그것이 초인의 지배 하에 임규남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인이 아기를 지배할 수 없었던 장면으로 보아, '편견 없음' 이 초인의 능력을 벗어난다는 설정이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임규남의 두 외국인 친구들은 단지 그런 장치적인 의미를 가지거나, 코믹 캐릭터로 전락해 버리기 보다는, 스토리 라인에서 좀더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제트 엔진으로 임규남의 차가 위기를 탈출하는 장면에서, 친구들의 모습이 플래시백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사실 헛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장면이었고요.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영숙(정은채)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극중에서 히로인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어느 정도 초인과 임규남 사이에서 긴장감을 형성할 정도의 비중이 있고, 결국 가장 마지막에 납치되어 구해야만 하는 목표이며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임규남에게 단지 '일하는 직장 사장님의 예쁜 딸'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니며, 초인에게는 더더욱 '단지 내가 조종할 수 있는 보통 사람' 일 뿐입니다. 그런데 임규남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고, 더 대책없는 것은 영숙을 납치한 초인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영숙의 어깨에 기대는 장면입니다. 그냥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자기가 조종하는 아무 사람의 어깨에나 기댄다고 보기에는, 사실 장면 자체만 놓고 보면 애틋하고 가슴 시릴 수 있는 장면이었죠. 차라리 영화의 다른 쓸데 없는 장면들을 가지치기 하고, 여성 캐릭터인 영숙을 '닫힌 소통' 의 매개체로서 초인과 임규남 사이에 두었다면, 그 또한 너무 뻔한 삼각관계가 되어 버렸을까요? 그래도 지금의 어정쩡한 공주 역할보다는 나아 보이는데요.

갈 곳 잃은 히로인, 영숙(정은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집어내자면, 어쩔 수 없이 '초능력' 영화에서 기대되는 화려한 CG 장면이었습니다. 금문교를 통째로 옮기거나, 하늘과 땅을 뒤집어버리는 만화같은 초능력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관객으로 하여금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초능력 씬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초능력 장면이라고 해야 임규남을 향해 사거리에서 한꺼번에 달려드는 자동차 정도였을까요? 그 장면을 포함해서, 90년대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법한 장면들만 영화 '초능력자' 에 가득했습니다. 어차피 임규남 또한 초능력자로 바뀌어져 간다는 복선을 노골적으로 넣어 놓았으니, 초인이 건물에서 사람들을 떨어뜨릴 때 임규남이 그들을 초능력으로 구해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아니라면, 클라이맥스의 한 장면 정도는 도시 전체의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정지시키는 장면 정도는 충분히 구성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CG 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임팩트 한 번이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살기 힘들다는 말.

'살기 힘들다' 는 말, 저 스스로도 참 자주 합니다. 할 게 많아서 힘들고, 사람 대하는 게 힘들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두려워서 힘들고. 물론, 삶을 살아 가는 게 녹록치만은 않은 일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대로의 감당해야 할 짐이 있고, 자신이 감당할 분량 만큼 힘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누구의 인생도 쉽다 가볍다 판단내리기란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세상엔 '정말로 살기 힘든' 사람들도 많습니다. 부모님 잘 계시고, 온 몸 멀쩡하며, 꽤나 좋은 학교 다니면서, 삼시 세끼 걱정없이 먹으며 공부하고 있는 지금 저 스스로도 힘들다고 느끼는데, '정말로 살기 힘든'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정말 얼마나 힘들 것인가. 생각해 보면, 아득할 정도입니다. 몸이 불편해서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고, 국적이 달라 차별에 괴롭힘 당하며,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환경 속에 처한 사람들. 그들에게, 세상은 얼마나 무겁고 괴로운 것이며, '평범함' 이란 얼마나 잔혹하고 이기적인 것일까요.

어쩌면 그들이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 주말에 시간 나서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볼 돈과 시간과 사람이 있고, 또 영화를 보고 나서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고통받는 이' 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영화 리뷰를 쓰는 팔자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그 어떤 반성과 고민도 너무도 사치로와서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마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어려운 일입니다.


Th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