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09. 4. 9. 15:30

아버지 학교를 마치며

  아버지라는 단어가 '권위' 와 '복종' 과 결부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 시대의 아버지들은 '소외' 와 '서먹함' 이라는 단어와 더 가깝다. 당황한 아버지들은 잃어버린 권위와 복종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아버지들도, 이 시대의 아버지들도 모두 가지지 못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행복' 이다.




  아버지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예전에는 무섭고 두려운 아버지로 사랑받지 못했고, 지금은 무시당하고 어색한 아버지로 사랑받지 못한다. 사랑 없는 가족에 염증을 느낀 아버지들은 밖으로 향했다. 술로, 도박으로, 음란한 문화들로. 그러나 밖에도 행복은 없었다. 아버지는 방황하고, 아버지의 방황은 아들의 방황으로 대물림된다. 그 아들은 다시 아버지가 된다. 단언컨대,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그 언제고 행복하지 못했다. 돌아갈 옛날은 없다. 그 어떤 아버지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하지만 아버지 학교는 '모르면 배우라' 라고 잠들어 있던 아버지들을 일깨운다.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아버지가 될 것을 가르친다. 지긋지긋하게 이어져 내려왔던 그 아버지의 불행을 끊고, 행복한 아버지, 사랑받는 아버지가 될 것을 가르친다. 아버지들의 귀는 번쩍 뜨인다. 아니, 그런 마법같은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 정말 있다.



  5주간에 걸친 다섯 번의 교육으로 변화받는 아버지 학교. 아버지 학교는 이렇게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꾸준한 실천으로 아버지들이 '진짜로' 달라지게끔 한다. 아버지학교 교재 중에 참으로 마음을 울리는 적절한 명언이 있었다.

"만사에는 그것을 성숙시키는 시간의 여유가 있고 또 그것을 썩게 만드는 게으름이 있다."
<조셉 룩스 / Meditations of a Parish Priest>

  아버지 학교 교육은 보물같이 귀하지만, 집에 돌아가 있는 시간동안 엄습하는 게으름의 침공은 그 귀한 보물도 썩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오랜 시간을 두고 성숙시킨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겠는가? 그래서, 아버지 학교는 썩지 말라고 돌아가는 아버지들 주머니에 방부제를 슬며시 끼워넣는다. 바로 아버지학교 숙제다.

  아버지학교 숙제라는 것이, 다시 돌아보면 참으로 기막힌 것들이 많다. 기가 막히다는 것이, 안타까운 느낌이어서 그렇다. 아내와 데이트하기, 아내에게 편지쓰기, 자녀에게 축복기도 해주기, 아내와 자녀를 꼭 끌어안아 주기... 아니, 아내를 꼭 한번 끌어안아 주는 것이 숙제가 될 만큼 우리 아버지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내랑 데이트 하는 것이 어색해져 버리고, 아내의 장점을 찾는 것 조차 힘들어진 이 부부들은 대체 어찌 된 거란 말인가?



  그 지극히도 당연한 사랑의 표현에, 아내들은 울며 무너지고, 자녀들은 울며 매달린다. 함께 살았지만 함께 있지 않던 아버지. 아버지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아버지의 자리를 찾지 못하던 아버지들이 가정의 자리로 돌아오고, 가장으로서 우뚝 선다. 이 아버지들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세대, 행복한 아버지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아버지학교에 참석할 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분명 도움이 되기는 되겠지만, 내가 아버지가 아직 아니니, 혹시나 그곳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많은 순서들이 결혼한 아버지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을 텐데, 나와는 거의 상관없이 진행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는 수지맞은 일이었다. 만약 나와 같은 청년들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면 그냥 저냥 '좋은 얘기' 로 듣고 흘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진 아버지들과 함께 있으면서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간증, 그것은 바로 '진짜 아버지' 의 날것 그대로였다. 정말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소외감, 인간적 두려움, 후회, 미안함, 그리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공통된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것은 아버지 학교가 아니면 배울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 장차 아버지가 될 나를 일깨워주고,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지 청사진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 학교를 수강하며 내가 원했던 것 또 한 가지는 '내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 이었다. 아버지 학교를 진행하는 동안 처음으로 아버지의 인생 여정을 진지하게 들을 수 있었고, 아버지께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 오셨는지, 좀더 그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모르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에게 어떻게 대하셨는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등등. 아들이면서도 잘 몰랐던 아버지의 다른 면들. 그 면들로 아버지와 좀 더 가까워지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학교가 끝나간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변화가 도계 땅 아버지들 사이에 일어났다. 나 또한 내 안에서 분명히 이전과는 달라진 기준들과 목적들이 세워진 것을 확인한다. 이 놀라운 변화의 현장. 이 감사가 넘치는 배움의 자리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 또한 도계 땅을 찾은 수많은 아버지학교 Staff 들과 마찬가지로, 줄무늬 옷을 입고 감동과 회복의 현장을 찾아 기꺼이 봉사하게 될 그 날이 눈에 선하다.

Th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