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09. 1. 13. 23:35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장영희 (평단문화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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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데 무슨 책부터 읽는 것이 좋을까? 고민이라면, 일단 책을 칭찬하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이 맞는 듯 하다.

책을 칭찬하는 책을 읽으면, 일단 책을 읽을 맛이 난다. 독서의 가치에 대해 칭찬을 하고, 책 읽는 사람에 대해 칭찬을 한다. 책을 읽는 중에,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칭찬을 계속해서 듣고 있으니, 괜스레 내 머리를 누군가 쓰다듬어 주는 듯 하여 뿌듯해지고 내가 무언가 그럴 듯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 마련.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일단 '독서 입문서' 로는 독서 예찬, 독서 방법 등에 대한 책을 한두 권 정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렸을 적 부터 나름 책을 좋아하고 어느 정도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되듯, 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서는 책을 멀리하게 되어 버렸다. 군대에 있을 때 - 또한 그 때도 누구나 그러겠지만 - 잠시 책의 감칠맛에 빠져서 잠시 책을 폭식하듯 읽어 나가면서, 내가 읽은 책의 목록을 수첩에 적어 나가는 것이 지루한 군 생활을 이겨 나가는 하나의 재밋거리였다. 하지만 전역한 이후에 다시 책을 붙들자니 왜 그렇게 눈과 귀를 빼앗가는 볼거리, 놀거리들이 많은지.

나름 영상을 전공한다는 것은 핑계일까, 책 읽을 시간이 나도 영화 한 편을 보거나, 게임 한 판을 즐기는 데 시간을 사용해 버리고,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손에 든다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단 책을 열고 나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언어들과 놀라운 지식들은 얼마나 매혹적이고 매력적인지. 일단 시간을 만들고, 책을 손에 쥐고, 그 첫 장을 펴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시작을 하면 책은 여간해서는 실망시키거나 거짓말하는 법 없이 그 나름대로 각자 가지고 있던 가치로운 보물들을 내 앞에 펼쳐 보인다.

다시 한 번, 책과 독서에 대한 소중함과, 책 읽는 사람에 대한 아름다움을 되새기고저 고른 책이 우리 시대의 애서가 29인이 함께 펴낸 <책, 세상을 탐하다> 였다. 책을 사랑하고,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가치를 역설하는 이들의 짧지만 호소력 있는 메시지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글은 이문재 시인의 '척추로 읽읍시다' 였다.

살고 있는 집 자체가 의자가 별로 없는 좌식 문화이다 보니, 어렸을 적 부터 책을 책상에 바로 앉아서 읽는 습관보다는 벌렁 드러누워, 그러다 팔이 아프면 옆으로 드러누워, 그러다 옆구리가 결리면 엎드려, 이렇게 뒹굴거리면서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이 되고 도서관에 다니면서도 삐딱하게 기대어, 아니면 허리를 푹 숙여, 그렇게 구부정하게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문재 시인의 '척추로 읽읍시다' 는 책을 읽는 새로운 방법과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르쳐주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별 특별한 내용이 있지는 않다. 바르게 등을 세우고 책을 읽는 올바른 자세를 말하고 있기도 하고, 그만큼 정신을 집중하고 정독해서 책이 가지고 있는 깊은 가치를 정갈하게 받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대목을 읽을 때 내 자세가 삐딱했었고, 때문에 자세를 고쳐 잡았던 것이 뇌리에 남아서일까.

책을 읽다 보면 책을 읽기보다는 글자를 읽고 있고, 책을 읽고 나서 정보를 얻기 보다는 또 한권의 책을 읽었다는 자기 만족을 얻기 급급한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것은 눈으로 읽는 책이고, 한쪽 눈으로 읽고 한쪽 눈으로 내버리는 책이다.

하지만 척추로 읽는 책은 다르다. 단어와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행과 행, 그리고 그 행간의 보이지 않는 여백에 들어 있는 의미를 읽으며, 내가 이제껏 축적해 온 지식과 내 손에 들려 있는 한 권의 책이 서로 힘겨루기도 하고 이리저리 맞대어보며 들어올 것은 들어오고 내칠 것은 내친다. 책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슷하다. 문학이 아니어도 줄거리는 있다.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 까지, 잘 만들어진 책은 하나의 소설과 같아서, 나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 들이고 웃고 울리다가 결국에는 감동을 준다. 결국 감동은 척추로 읽는 책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많은 양의 책을 읽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이 자그마한 산골 도서관에서 쌓여 있는 장서도 내가 다 읽을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아마 세상에는 이 도서관에 쌓여 있는 모든 책보다 더 많은 책이 하루만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 결국, '내가 읽은 책' 목록표에 빈 칸을 채워 나가는 산술형 독서보다는, 내 척추 한칸 한칸에 새겨놓을 의료적 독서가 나에게 정말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 정신과 마음을 회복시킬.

마지막으로, 같은 글에 소개된, 이면우 시인의 <빵집> 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

큰 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집 빵 사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쓰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 하는 아이가 함께 있는 걸 알았다

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Th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