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09. 4. 9. 18:54

결승전은 무한한 기쁨과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승전에서도 2:2 상황은, 그 문의 마지막 문턱에서도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단 한 경기 입니다. 수백, 수천, 수억을 거듭해왔던 그 모든 게임들이 바로 이 한 경기를 위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한 걸음. 한 뼘. 아니 종이 한 장 두께만도 못할 것인데, 그 희비는 극명합니다.

그들을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손아귀에 거의 움켜쥐었는데도, 품에 안지 못하고 놓쳐버려야 했던 그들. 단 한 경기의 패배로 고개숙여야 했던 이들.



그 마음을 헤아려 보고 싶었습니다.



1. 결승전에서 3:2 로 진다는 것




조용호 (MSL, 대 이윤열)
박용욱 (MSL, 대 최연성)
이윤열 (MSL, 대 최연성)
송병구 (MSL, 대 김택용)
강도경 (OSL, 대 기욤)
이병민 (OSL, 대 박성준)
변형태 (OSL, 대 김준영)
오영종 (OSL, 대 이윤열)

스타리그와 MSL 결승전에서, 3:2 패배를 당한 이들은 많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미 우승을 일구어 놓고 다시 결승이라는 자리에 올라섰고,
누군가는 끝내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쥡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은 도전' 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단 한번 찾아온 기회' 였습니다.

은퇴한 이 사내, 이병민 선수에게 그랬지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도 가지가지겠지만, 가장 나쁜 방법 중의 하나가 무시 아닐까요? 나는 너라는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잔인한 별명 아닌 별명을 감내해내던 선수가 바로 이병민이었습니다.
(물론 아예 별명조차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을 생각한다면 그것마저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요)

지금 이병민 선수를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강민의 할루시네이션 리콜 파트너입니까?
최연성의 레이스 벌쳐 관광의 희생자입니까?

아니면 뽀글거리는 머리로 해맑게 웃는 수수한 청년입니까?



EVER 스타리그 2005 결승전.
이병민은 마지막 전장인 네오 포르테에서 두 번에 걸쳐 투신의 숨통을 조였습니다.
그리나 끝끝내 숨이 끊어지지 않은 투신은 조여드는 손을 뿌리치고 오히려 꺾고 비틀어 버립니다.
GG를 치기 전 머리를 감싸고 통탄하던 쪽과, GG를 받은 후 두 주먹을 들어 환호하던 쪽의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단 한 경기였지요.





2. 결승전에서 3:2 로 두 번 진다는 것



정명훈 (OSL, 대 송병구, 대 이제동)

여기, 두 번 연속으로 도전한 결승 무대에서, 두 번 연속으로 3:2 라는 안타까운 눈물을 삼킨 선수가 있습니다.
테란이라는 천년 왕국을 이어갈 국본, 바로 정명훈 선수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 도전하면 겁없이 용감하고, 실패해도 보람있습니다. 정명훈의 첫 번째 도전은 로열 로더라는 새파랗고 혈기 왕성한 도전이었지요. 그 준우승은 놀라움과 기대감이라는 단어만으로 충분히 칭찬할수 있는 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의 실패를, 같은 무대에서, 같은 방식으로 당하는 것은 무척이나 아픈 일입니다.
무대 뒤 어두움 속에서 쉽사리 밝은 조명아래로 나오지 못하는 그의 머뭇거림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쓰라리게 했습니다.



단 한 경기였는데요.




3. 결승전에서 3:2로 세번 진다는 것



임요환 (OSL, 대 김동수, 대 최연성, 대 오영종)


누가 임요환을 보고 쓰라림과 눈물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를 화려한 황제라고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후, 이날까지 그의 행보는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이들의 기대와 멸시, 그리고 자기 스스로와의 험난한 분투였습니다.

그가 일구어낸 4회 준우승에서, 3번이 3:2로 안타깝게 패했던 경기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대단한 집념과 승부욕의 여실한 증거입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라지만, 임요환은 배추마저 통으로 세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포기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남자입니다.



특히나 EVER 스타리그 2004 결승전. 그가 흘린 눈물에 팬들은 같이 울었고, 그가 삼킨 슬픔만큼 팬들은 더욱 안타까워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그 자리가 기약없는 자리이고, 오르기 험난하며, 때문에 마지막 한 경기가 사무치도록 아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다시 도전하고, 또 다시 그 자리에 올랐습니다.

So1 스타리그 결승전.

또다시 3:2로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물흘리지 않았습니다.
팬들도 울지 않습니다. 이제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 그 열정, 그 감동을 보고 느끼고, 이제 분명히, 분명히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 이게 임요환이구나.









홍진호(MSL, 대 이윤열, OSL, 대 임요환, 대 서지훈)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임요환을 보고 '넌 쓰라림과 눈물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당대 최강의 테란들이 홍진호의 발목을 마지막까지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KPGA 2차 결승전은 2:0 으로 뒤지던 이윤열의 3:2 역스윕이었습니다.

박효민 선수가 라그나로크 전진 성큰전략을 몰랐다면, 스타판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퍼펙트 테란 서지훈의 퍼펙트는 원래 비프로스트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전장은 결승전에서 불가사의한 역전승을 그에게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제 홍진호의 이름으로 준우승과, 슬픔과, 눈물을 이야기하기는 그동안 너무 많이 했습니다.

이제 충분히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만 됐습니다.

그냥,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입니다.

두 손 꼭 모으고,





단 한 경기의 승리를 위해서.







4. 결승전에서 3:2 로 지고 계속 도전한다는 것



단 한 경기로 인해 뒤돌아서야 했던 당신들의 아픔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딱 하나 밀려쓴 시험 답안지의 억울함일까요,

마지막 면접에서 뒤돌아서야 했던 무너지는 기대감일까요.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단 한 경기를 향한 당신들의 뜨거운 열정. 노력.



그것이 비록 가슴아픈 패배로 귀결될지언정,









You, never give up.

  - 윈스턴 처칠의 연설 中



Th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