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10. 1. 11. 01:14


 
가수가 노래부르는 동영상 같은 것을 모으거나 하는 취미는 없지만

정말로 브라운 아이드 소울, 특히 나얼의 가창력은

그것을 듣고 있으면, 이 순간을 언젠가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불안해질 정도로 좋은 노래를 들려준다.


그래서, 여기에 간직해본다.

ThEnd.
posted by cimple 2009. 11. 7. 12:13


B-boy 포켓.


한국 이름 김기주. 나이 14살. 중학교 1학년.
사진 속에 있는 조그마한 꼬마 한 명이,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IBE2009 를 평정한 어린 소년, 천재 B-boy. Pocket입니다.

저도 인터넷을 항해하다가 보게 된 B-boy Pocket 의 현란한 춤에 완전히 빠져버려서, 그의 동영상들을 뒤적뒤적 찾게 되었습니다.
IBE(International Breakdance Event)는 세계 4대 B-boy 축제중의 하나로서, 승패가 없는 국제 대회입니다. 비록 승패는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우위는 분명 존재하지요. 올해 미국에서 열린 IBE2009 은 한국, 미국, 유럽, 일본의 세계 최고 수준의 B-boy 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쟁쟁한 춤꾼들 사이에서도 가장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B-boy 는 것은 한국의 조그마한 소년, B-boy Pocket 이었습니다.

일단 IBE 에서 Pocket 의 종합 활약상을 모아서 봅시다.




아래 동영상은 미국 팀과의 배틀 동영상입니다. 맨 마지막에 Pocket 이 등장하는데, 스테이지에 나올 때 키가 조그맣다고 상대방 B-boy들이 놀려댑니다.
하지만 보기좋게 엄청만 파워무브를 선보이면서 관중석을 열광의 도가니탕에 빠뜨려버리죠. 정말 시원한 장면이 아닐수 없습니다.


 


(한국vs미국 2번째 동영상 추가. 3분 즈음이 Pocket 등장.)

아래 동영상은 일본 팀과의 배틀 동영상입니다. 1분 즈음에 Pocket 이 등장하는데, 관중들의 반응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알 수 있죠.
 
(한국 vs 일본 2번째 동영상 추가. 4분 즈음에 Pocket 등장.)

(한국 vs 유럽 동영상 추가. 1분, 8분 50초 즈음에 Pocket 등장.)


(한국vs유럽 2번째 동영상 추가. 7분 즈음에 Pocket 등장. 조금 흥분했는지 프리즈가 제대로 안 꽂혔네요.)


이 영상은 A Friday Night 2009 에서 Pocket 의 활약상입니다. 동영상을 본 외국인들의 반응도 '뭐야, 이거, 무서워...' 더군요.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무빙입니다.


 

다음은 Pocket 의 동영상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중간 즈음에 세발 자전거를 타고 등장해서 스핀에 프리즈를 꽂아버리는 장면은 정말 예술이군요. ㅇ_ㅇb

 


더 빠른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서 신발을 벗고 춤을 춘다는 Pocket. 앞으로도 다치지 말고 잘 성장해서, 대한민국의 파워무브를 이끌어 나가는 멋진 B-boy 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ThEnd.



 p.s. IBE2009 트레일러입니다. Pocket 의 얼굴을 확인해볼 수 있지요.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약간은 나이들어 보이는..?

posted by cimple 2009. 10. 15. 08:49



김준곤 목사님이 지난달 29일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메일로 받았습니다.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참 오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CCC 라는 곳과 상거가 멀어진 지금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또 나의 지금 신앙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CCC 의 의미와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때문에, 김준곤 목사님의 장례 예배가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마음이 쓰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마음 속 깊이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민족 복음화, 캠퍼스 복음화라는 꿈을 이 땅의 수십만의 젊은이들 가슴 속에 심어주고

그 불씨가 나에게까지 옮겨붙어, 보잘것 없는 내가 변화되고, 쓰임 받을 만한 사람으로 새로와지고,

삶에 있어 가치와 목적을 분명하게끔 하게 했던. 그 원동력을 제시한 청년과 민족의 리더이셨습니다.

물론 이제 천국 가셔서 하나님께 큰 상급 받으시며 영원히 평안을 누리실 터이므로

김준곤 목사님의 소천 소식이 가슴 미어지게 슬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마음으로 가슴이 휑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이제 주님 곁에서 편안히 쉬십시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ThEnd.



p.s.1. 김준곤 목사님의 '민족 복음화의 꿈'



p.s.2. 그리스도의 계절

posted by cimple 2009. 10. 12. 23:55




별로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니지만, 어떤 음악 장르가 가장 좋은 것 같냐고 스스로 물어 보았을 때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3~4분의 노래를 듣는다고 했을 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가장 많이 담아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시보다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보통 노래들이 절제된 가사 안에 감정을 담는다면, 랩은 여과없이 쏟아내죠. 그 자유분방함 안에 담긴 라임과 Flow 의 예술이 마음에 듭니다.

리쌍 6집을 들었습니다. 앨범을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둠의 경로(;;) 로 구한 것은 아니고, 디지털 음원을 구입했습니다. 그렇게 돈을 주고 음악을 사서 듣는 일도 오랜만이군요. 이 정도로 음악이라는 곳에서 제가 멀리 떨어져 있었나, 새삼 팍팍해져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린 시절에는 음악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세상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애틋한 믿음마저 있었던 것 같았는데 말이죠.


딱 잘라 말하면, 생각보다 그다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앨범을 3줄로 요약하자면 이것이었습니다.


이제 어느정도 성공하고 살만해져서 자꾸만 변해가는 스스로가 싫어
옛날 여자들과 나누었던 옛사랑이 가끔씩 스믈스믈 떠올라 센치해져
이제 새마음 새뜻으로 빵빵한 피쳐링 친구들과 함께 다시 새로운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


좋은 노래는 딱 한곡, "To. LeeSSang" 이었습니다. 타이틀곡이라는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보다 이 노래가 더 좋은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냥, 리쌍에게 기대할 만한 가장 리쌍다운 스타일의 노래라고 해야 할까요.



누군가 세상을 떠나도 시간은 흐른다
듣는이 없어도 어떤인 노래를 부른다
수많은 주문과 질타 속에도 어쨌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하지만 너는 뭔가 벌어진 세상의 틈으로
긴 어둠의 끝으로
모든걸 이뤄보겠다는 꿈으로
한참을 달려 성공이란 문을 열었지만
너의 열정은 이제는 물거품으로
사랑이 없을때 음악을 더 사랑했던
차가 없을때 버스에 앉아 세상을 배웠던
천원짜리 한장이 소중했던
니생에 가장 아름답던 순간을 잊었어
제발 꿈을 꿔라 아직 살아갈남이 남았으니
바람뿐인 사막위에 하나뿐인 선인장처럼
외롭더라도 포기하지마라
지금 이대로 이렇게 멈추지는 마라

해가 지고 오 밤이 또 또 시작이되고
내가 바라고 왔던 별은 사라져 가는데
잡으려고 오 팔을 또 또 뻗어보지만
매일 같은 자리를 돌고 도는데 이제 나는 어디로

change you mind
(예 에이에이~~)
change you life
(내겐 아직 많은 것이 남았어~)
change you mind
(예 에이에이~~)
change you life
(아직 가야 할길은 멀었어~~)

기억해라 주머니에 먼지 밖에 없던 시절을
기적을 꿈꾸며 지저분한 방안에 갇혀
밤새 가사를 쓰며 세상에 뛰어들
준비를 했던 너의 그때 그 시절을
순수한 사랑조차 사치처럼 느껴져
외로움에 너를 억지로 묶었던
너의 욕망조차 묶였던 용기있던
너의 그때 그 시절을(그시절) 기억해라
어두운곳에서 세상을 배웠던
꿈으로 니배를 채웠던
어떠한 시련도 너를 붙잡지못했던
오로지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양
살았던 그때 그시절을
어제의 고난이 오늘의 행복임을 알았으니
오늘의 방황도 내일의 행복이 될테니 걱정마라
하지만 기억해라
미친듯 살았던 날개없이도
하늘을 날았던 어제의 널

해가 지고 오 밤이 또 또 시작이되고오
내가 바라고 왔던 별은 사라져 가는데
잡으려고 오 팔을 또 또 뻗어보지만
매일 같은 자리를 돌고 도는데 이제 나는 어디로

change you mind
(예 에이에이~~)
change you life
(내겐 아직 많은 것이 남았어~)
change you mind
(예에에~~)
change you life
(아직 가야 할길은 멀었어~~)
예이예이예이
아직 멀었어



...그래도 덕분에 오랜만에 음악을 귀에 꽂고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ThEnd.

posted by cimple 2009. 8. 21. 16:00



adidas 의 'Impossible is Nothing' 이라는 슬로건으로 만들어진 CF 시리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것. 미국의 NBA 농구선수 길버트 아레나스의 이야기다.

아무도 나를 인정하거나 믿어주지 않을때, 
바로 그럴 때 나 자신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

실망과 낙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과 싸우는 이들에게, 이것보다 큰 화두는 없다.



나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
나를 그 자리에 붙들고 있는 스스로의 생각.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매직으로 '0' 을 그려넣는 길버트 아레나스의 모습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가장 멋진 격려이자 칭찬이다.

ThEnd.


p.s. 다른 'Impossible is Nothing' 시리즈 보러가기
posted by cimple 2009. 7. 24. 00:07

'Playing for Change' 프로젝트는 음악이 국경을 허물고, 사람 사이를 좁혀 평화를 가져다주리라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스태프들은 녹음 스튜디오에 버금가는 장비를 들고 세상을 돌며 거리의 음악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음악 여정은 남아프리카, 인도를 거쳐 히말라야까지 이어졌다.

숨어 있는 수많은 다양한 뮤지션들이 'Playing for Change'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수많은 거리의 공연들이 비디오에 담기고, 스태프들은 재단을 만들어 이들을 커뮤니티로 엮었다.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던 뮤지션들은 언어는 모르지만, 음악으로 소통하며 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 수익으로 소외 지역에 음악 학교를 세우는 일이 더해졌다. 길거리의 음악이 세상을 바꾸는 움직임이 되어 버렸다. 이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작년 말, 몇 개의 거리 공연 동영상이 유투브를 통해 공개되면서부터다. 남아프리카 작은 마을의 합창단이나, 트라이앵글을 치는 도넛 노점 주인. 이 영상들은 지난 2009년 5월, <Songs around the World> 라는 타이틀을 달고 DVD 와 CD로 한데 묶여 발매됐다.

그리고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에 올랐다. 'Stand By Me', 'One Love', 'War/No more Troble' 등 유명한 곡들이 다양한 뮤지션들의 흥미로운 편곡을 거쳐 새롭게 탄생했다.

'Playing for Change' 운동 앞에서는, 위대한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명제는 힘을 잃는다.

진심을 담는다면, 언젠가는 꼭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이 선율 사이로 넘실거린다.



Stand By Me
                                            SONG BY John Lenon


When the night has come
and the land is dark
And the moon is the only light we see
밤이 내려 앉아
온 세상이 캄캄하고
달님만 밝게 빛나도



No I won't be afraid,
No I won't be afraid
just as long as you stand, stand by me
난 두렵지 않을 거에요
두려워 하지 않을 거에요
당신만 곁에 있어 준다면요


And Darling, darling, stand by me
Oh stand by me, stand by me, stand by me
오 그대, 곁에 있어줘요
내 곁에 있어 주세요
내 곁에 머물러 주세요


If the sky that we look upon
should tumble and fall
And the mountains should crumble to the sea
우리가 바라보는
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저 산이 바다로 무너지더라도


I won't cry, I won't cry
No I won't share a tear
Just as long as you stand, stand by me
난 울지 않아요
눈물 흘리지 않겠어요
당신만 곁에 있어 준다면요


And Darling, darling stand by me
oh stand by me, stand by me,
stand by me, stand by me
곁에 있어 줘요
내 곁에 있어 주세요
내 곁에 머물러 주세요


Whenever your in trouble Won't you stand by me
oh stand by me, stand by me, stand by me
언제나 당신이 힘들때면 내 곁에 있지 않겠나요
곁에 있어줘요
내 곁에 머물러 주세요



ThEnd.
posted by cimple 2009. 7. 23. 23:28

 
우리시대의 역설
                                      제프 딕슨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고 너무 지쳐서 일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리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은 부수지 못한다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을 더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 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 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ThEnd.
posted by cimple 2009. 4. 9. 18:54

결승전은 무한한 기쁨과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승전에서도 2:2 상황은, 그 문의 마지막 문턱에서도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단 한 경기 입니다. 수백, 수천, 수억을 거듭해왔던 그 모든 게임들이 바로 이 한 경기를 위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한 걸음. 한 뼘. 아니 종이 한 장 두께만도 못할 것인데, 그 희비는 극명합니다.

그들을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손아귀에 거의 움켜쥐었는데도, 품에 안지 못하고 놓쳐버려야 했던 그들. 단 한 경기의 패배로 고개숙여야 했던 이들.



그 마음을 헤아려 보고 싶었습니다.



1. 결승전에서 3:2 로 진다는 것




조용호 (MSL, 대 이윤열)
박용욱 (MSL, 대 최연성)
이윤열 (MSL, 대 최연성)
송병구 (MSL, 대 김택용)
강도경 (OSL, 대 기욤)
이병민 (OSL, 대 박성준)
변형태 (OSL, 대 김준영)
오영종 (OSL, 대 이윤열)

스타리그와 MSL 결승전에서, 3:2 패배를 당한 이들은 많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미 우승을 일구어 놓고 다시 결승이라는 자리에 올라섰고,
누군가는 끝내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쥡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은 도전' 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단 한번 찾아온 기회' 였습니다.

은퇴한 이 사내, 이병민 선수에게 그랬지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도 가지가지겠지만, 가장 나쁜 방법 중의 하나가 무시 아닐까요? 나는 너라는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잔인한 별명 아닌 별명을 감내해내던 선수가 바로 이병민이었습니다.
(물론 아예 별명조차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을 생각한다면 그것마저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요)

지금 이병민 선수를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강민의 할루시네이션 리콜 파트너입니까?
최연성의 레이스 벌쳐 관광의 희생자입니까?

아니면 뽀글거리는 머리로 해맑게 웃는 수수한 청년입니까?



EVER 스타리그 2005 결승전.
이병민은 마지막 전장인 네오 포르테에서 두 번에 걸쳐 투신의 숨통을 조였습니다.
그리나 끝끝내 숨이 끊어지지 않은 투신은 조여드는 손을 뿌리치고 오히려 꺾고 비틀어 버립니다.
GG를 치기 전 머리를 감싸고 통탄하던 쪽과, GG를 받은 후 두 주먹을 들어 환호하던 쪽의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단 한 경기였지요.





2. 결승전에서 3:2 로 두 번 진다는 것



정명훈 (OSL, 대 송병구, 대 이제동)

여기, 두 번 연속으로 도전한 결승 무대에서, 두 번 연속으로 3:2 라는 안타까운 눈물을 삼킨 선수가 있습니다.
테란이라는 천년 왕국을 이어갈 국본, 바로 정명훈 선수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 도전하면 겁없이 용감하고, 실패해도 보람있습니다. 정명훈의 첫 번째 도전은 로열 로더라는 새파랗고 혈기 왕성한 도전이었지요. 그 준우승은 놀라움과 기대감이라는 단어만으로 충분히 칭찬할수 있는 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의 실패를, 같은 무대에서, 같은 방식으로 당하는 것은 무척이나 아픈 일입니다.
무대 뒤 어두움 속에서 쉽사리 밝은 조명아래로 나오지 못하는 그의 머뭇거림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쓰라리게 했습니다.



단 한 경기였는데요.




3. 결승전에서 3:2로 세번 진다는 것



임요환 (OSL, 대 김동수, 대 최연성, 대 오영종)


누가 임요환을 보고 쓰라림과 눈물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를 화려한 황제라고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후, 이날까지 그의 행보는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이들의 기대와 멸시, 그리고 자기 스스로와의 험난한 분투였습니다.

그가 일구어낸 4회 준우승에서, 3번이 3:2로 안타깝게 패했던 경기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대단한 집념과 승부욕의 여실한 증거입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라지만, 임요환은 배추마저 통으로 세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포기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남자입니다.



특히나 EVER 스타리그 2004 결승전. 그가 흘린 눈물에 팬들은 같이 울었고, 그가 삼킨 슬픔만큼 팬들은 더욱 안타까워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그 자리가 기약없는 자리이고, 오르기 험난하며, 때문에 마지막 한 경기가 사무치도록 아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다시 도전하고, 또 다시 그 자리에 올랐습니다.

So1 스타리그 결승전.

또다시 3:2로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물흘리지 않았습니다.
팬들도 울지 않습니다. 이제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 그 열정, 그 감동을 보고 느끼고, 이제 분명히, 분명히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 이게 임요환이구나.









홍진호(MSL, 대 이윤열, OSL, 대 임요환, 대 서지훈)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임요환을 보고 '넌 쓰라림과 눈물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당대 최강의 테란들이 홍진호의 발목을 마지막까지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KPGA 2차 결승전은 2:0 으로 뒤지던 이윤열의 3:2 역스윕이었습니다.

박효민 선수가 라그나로크 전진 성큰전략을 몰랐다면, 스타판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퍼펙트 테란 서지훈의 퍼펙트는 원래 비프로스트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전장은 결승전에서 불가사의한 역전승을 그에게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제 홍진호의 이름으로 준우승과, 슬픔과, 눈물을 이야기하기는 그동안 너무 많이 했습니다.

이제 충분히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만 됐습니다.

그냥,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입니다.

두 손 꼭 모으고,





단 한 경기의 승리를 위해서.







4. 결승전에서 3:2 로 지고 계속 도전한다는 것



단 한 경기로 인해 뒤돌아서야 했던 당신들의 아픔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딱 하나 밀려쓴 시험 답안지의 억울함일까요,

마지막 면접에서 뒤돌아서야 했던 무너지는 기대감일까요.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단 한 경기를 향한 당신들의 뜨거운 열정. 노력.



그것이 비록 가슴아픈 패배로 귀결될지언정,









You, never give up.

  - 윈스턴 처칠의 연설 中



ThEnd.
posted by cimple 2009. 4. 9. 15:30

아버지 학교를 마치며

  아버지라는 단어가 '권위' 와 '복종' 과 결부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 시대의 아버지들은 '소외' 와 '서먹함' 이라는 단어와 더 가깝다. 당황한 아버지들은 잃어버린 권위와 복종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아버지들도, 이 시대의 아버지들도 모두 가지지 못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행복' 이다.




  아버지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예전에는 무섭고 두려운 아버지로 사랑받지 못했고, 지금은 무시당하고 어색한 아버지로 사랑받지 못한다. 사랑 없는 가족에 염증을 느낀 아버지들은 밖으로 향했다. 술로, 도박으로, 음란한 문화들로. 그러나 밖에도 행복은 없었다. 아버지는 방황하고, 아버지의 방황은 아들의 방황으로 대물림된다. 그 아들은 다시 아버지가 된다. 단언컨대,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그 언제고 행복하지 못했다. 돌아갈 옛날은 없다. 그 어떤 아버지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하지만 아버지 학교는 '모르면 배우라' 라고 잠들어 있던 아버지들을 일깨운다.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아버지가 될 것을 가르친다. 지긋지긋하게 이어져 내려왔던 그 아버지의 불행을 끊고, 행복한 아버지, 사랑받는 아버지가 될 것을 가르친다. 아버지들의 귀는 번쩍 뜨인다. 아니, 그런 마법같은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 정말 있다.



  5주간에 걸친 다섯 번의 교육으로 변화받는 아버지 학교. 아버지 학교는 이렇게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꾸준한 실천으로 아버지들이 '진짜로' 달라지게끔 한다. 아버지학교 교재 중에 참으로 마음을 울리는 적절한 명언이 있었다.

"만사에는 그것을 성숙시키는 시간의 여유가 있고 또 그것을 썩게 만드는 게으름이 있다."
<조셉 룩스 / Meditations of a Parish Priest>

  아버지 학교 교육은 보물같이 귀하지만, 집에 돌아가 있는 시간동안 엄습하는 게으름의 침공은 그 귀한 보물도 썩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오랜 시간을 두고 성숙시킨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겠는가? 그래서, 아버지 학교는 썩지 말라고 돌아가는 아버지들 주머니에 방부제를 슬며시 끼워넣는다. 바로 아버지학교 숙제다.

  아버지학교 숙제라는 것이, 다시 돌아보면 참으로 기막힌 것들이 많다. 기가 막히다는 것이, 안타까운 느낌이어서 그렇다. 아내와 데이트하기, 아내에게 편지쓰기, 자녀에게 축복기도 해주기, 아내와 자녀를 꼭 끌어안아 주기... 아니, 아내를 꼭 한번 끌어안아 주는 것이 숙제가 될 만큼 우리 아버지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내랑 데이트 하는 것이 어색해져 버리고, 아내의 장점을 찾는 것 조차 힘들어진 이 부부들은 대체 어찌 된 거란 말인가?



  그 지극히도 당연한 사랑의 표현에, 아내들은 울며 무너지고, 자녀들은 울며 매달린다. 함께 살았지만 함께 있지 않던 아버지. 아버지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아버지의 자리를 찾지 못하던 아버지들이 가정의 자리로 돌아오고, 가장으로서 우뚝 선다. 이 아버지들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세대, 행복한 아버지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아버지학교에 참석할 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분명 도움이 되기는 되겠지만, 내가 아버지가 아직 아니니, 혹시나 그곳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많은 순서들이 결혼한 아버지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을 텐데, 나와는 거의 상관없이 진행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는 수지맞은 일이었다. 만약 나와 같은 청년들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면 그냥 저냥 '좋은 얘기' 로 듣고 흘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진 아버지들과 함께 있으면서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간증, 그것은 바로 '진짜 아버지' 의 날것 그대로였다. 정말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소외감, 인간적 두려움, 후회, 미안함, 그리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공통된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것은 아버지 학교가 아니면 배울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 장차 아버지가 될 나를 일깨워주고,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지 청사진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 학교를 수강하며 내가 원했던 것 또 한 가지는 '내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 이었다. 아버지 학교를 진행하는 동안 처음으로 아버지의 인생 여정을 진지하게 들을 수 있었고, 아버지께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 오셨는지, 좀더 그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모르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에게 어떻게 대하셨는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등등. 아들이면서도 잘 몰랐던 아버지의 다른 면들. 그 면들로 아버지와 좀 더 가까워지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학교가 끝나간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변화가 도계 땅 아버지들 사이에 일어났다. 나 또한 내 안에서 분명히 이전과는 달라진 기준들과 목적들이 세워진 것을 확인한다. 이 놀라운 변화의 현장. 이 감사가 넘치는 배움의 자리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 또한 도계 땅을 찾은 수많은 아버지학교 Staff 들과 마찬가지로, 줄무늬 옷을 입고 감동과 회복의 현장을 찾아 기꺼이 봉사하게 될 그 날이 눈에 선하다.

ThEnd.
posted by cimple 2009. 1. 22. 22:43

(즐겨 찾는 PGR 이라는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과 관련,
시위에 화염병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격한 논쟁이 붙었습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 vs 폭력을 사용하게끔 한 부조리함이 문제이다.
이 팽팽한 주장에 맞서, 졸필이나 글을 올려 보았고, 달린 댓글들도 함께 옮겨 보겠습니다.)





<영상은 EBS 지식채널 e의 '블랙' 이라는 영상입니다>

아래에 벌어진 '화염병' 논쟁에 대한 리플을 달다가,
리플이 길어지기도 하고, 또는 저의 의견을 한번 PGR 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보기도 해야겠구나 하여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도마' 라는 표현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PGR 의 글쓰기 버튼은 상당히 무거우며, 빈약한 논거로 논쟁을 벌이기가 무섭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씀드리고, 또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은 듣기 위하여 한번 말씀드려 봅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면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폭력 저항 운동을 주장했고
말콤 X 박사는 "폭력에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성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지금 아래 글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가만히 살펴보니,
이 두 사람의 생각의 차이와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라 생각됩니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독립 투사들처럼 매국노들과 원흉들을 암살하고 폭탄을 던지는 방법도 있겠고,
마하트마 간디처럼 비폭력의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 다 나름의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렇게 힘써 저항한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그 저항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후세대로서 그 방법의 가부를 함부로 잣대질하는건 주제넘은 짓거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만약에, 제가 어떤 저항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마하트마 간디가 택했던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미국의 경우, 아직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큰 문제임에는 분명하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X 박사가 저항하던 시대와 비교할 때
이제 흑인이 대통령이 될 정도로 흑인의 인권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 원동력은 흑인들의 폭력적 저항 운동보다는, 조용하지만 꾸준하고 평화롭지만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흑인들의 인권에 대한 변호와 투쟁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영향력있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공부하고, 그 곳에서 차별을 뚫고, 또 버티어내고, 법안을 통과시키고, 후대를 교육시키고...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지루합니다. 변화가 있는것 같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얻어낼수록, 더욱 견고해 진다고 확신합니다.


글을 쓰는 저도 강원도의 한 탄광촌에 살면서, 석탄 산업 합리화라는 정책의 명분하에 보상도 없이 직장을 잃은 숱한 가장들과 그들의 가정의 눈물을 보며,
또 낙후되어가는 지역 사회에 살아가면서, 공권력과 정부의 눈먼 정책에 대한 원망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살 터전을 잃고 주저앉아 눈물흘리는 철거민들에게 비폭력이나, 꾸준하고 점진적인 사회의 개선은 헛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궁지로 몹니다.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갑니다. 도망갈 곳도 없는 데 숨통을 죄어 옵니다.
하지만 어찌 그 억울함과, 분통함과, 권력의 오만한 부조리함을 모르고 간디나 킹 목사는 비폭력을 부르짖었을까요? 정말 멋모르고 하는 배부른 소리였을까요?

화염병으로 대변되는 폭력의 방법은 즉각적으로, 눈에 확연히 보이고, 충격적이고, 신속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실로 역사상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자유와 독립을 위해 폭력의 방법을 사용하고 그것을 쟁취해 냈습니다.
또한 말콤 X 박사의 주장처럼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는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폭력으로 사회가 본질적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신속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사용했던 폭력이, 기존 권력에게 빌미를 제공하여, 더 큰 억압과 부조리한 상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들 이미 알고 계신 사실이겠지만, 바로 이것이 비폭력 운동을 하게 된 이유겠지요.
또한 폭력으로 이룩해낸 일들은 우리 사회에 안좋은 영향력을 심어 놓을 위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폭력이었지만, 폭력이 문제를 해결하면, 폭력의 힘을 알게 되고, 결국 그 힘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폭력'의 변질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번 문제에 대해 한번 다른 묘안을 제시해보라고 하신다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없다고 대답해야 겠네요.
어떤 법안이 필요할까요. 어떤 사람을 갈아치우고, 어떤 정당을 없애고, 어떤 교육을 실시하고, 어떤 곳에 돈을 투자해야 이 문제가 시원스레 해결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했던 '점진적인 사회의 발전' 을 위한 대안이라는 것은 많은 시간을 들여,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일구어져야 할 결실이니까요.
문제의 책임을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돌려 버리는 듯 하여, 말씀드리고도 무책임하게 느껴지지만, 일단 그게 무책임한 발언이 되지 않기 위해 제가 스스로 할 일은, 오늘 하루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올바른 판단을 위해 열심히 보고 듣고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천하보다 소중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중점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몇몇 사람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은 바삐 단죄되어야 하고 국민에 의해 심판받아야 합니다.
촛불 시위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성숙한 비폭력 시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촛불 시위마저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미친 이 나라 위정자들은, 사실 내키는 대로 말하면 그네들이 죽어야합니다.
그러면 국민들도 그들을 심판할 힘이 있어야겠지요.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잘못된 그들을 몰아낼 힘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해야 합니다.
잘못된 대통령을 뽑은 것은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국민이라는 존재에 대해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잘못된 대통령을 세우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지금 국민들은 삶으로 뼈저리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성숙한 국민' 으로, '무서운 국민' 으로, '아는' 국민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이제 달라져야죠.
국민의 선택이 드러나는 선거에서 달라지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가 늘어가고,
그렇게 모두가 꾸준히, 점진적으로, 동반하여 성장할 때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들이 하나 하나 깨어져 가리라 확신합니다.


글쎄요.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한번 "큰 충격" 이 필요할 정도로 정치는 썩어 있고, 경제는 망가져가며, 교육은 답이 없고, 문화는 초라합니다.
꾸준한 노력도 좋지만, 때때로 조금 자극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무언가를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물론 투쟁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킹 목사도 "자유는 절대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고 역설하셨더군요.
비폭력은 저항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라는 이야기겠지요.


마지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현존합니다. -> 이로 인해 폭력적인 방법의 저항 운동이 발생했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먼저 존재하므로 그로 인한 폭력은 정당성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느 한 명의 영웅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 처럼 뚝딱 해결할 수도 없고,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폭력적인 저항 방법이 가져올 수많은 악영향을 생각했을 때,
저는 차라리 이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분개하며 폭압적인 경찰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찰서에 돌을 던질 수도 있겠고,
길거리 시위에 참여해서 촛불을 들고 묵묵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저는 미디어를 통해서 좀더 많은 사람에게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에
그런 영향력 있는 사람이 하루 빨리 되고자, 오늘 하루도 학생의 신분으로 최선을 다 해서 공부를 할 것입니다.
각자가 선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Th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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