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12. 7. 21. 16:33

- 다량의 미리니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버튼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 제목에서도 눈치채셨다시피,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를 비판하는 내용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의 감동을 해치고 싶지 않으시고, 기분을 상하지 않고 싶으신 분들 또한 '뒤로' 버튼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수없는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것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실망감을 예견하는 버릇이 들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기대치 않은 즐거움을 얻는 경우는 꽤 있지만, 기대한 곳에서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긴 사실 대단히 어려워졌습니다. 때문에 사실 요즈음의 우리는 일종의 습관처럼 실망감을 예견합니다. 말하자면, 마지막 스타리그에서 4강의 테테전을 기다리는 마음이랄까요.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정말 오롯이 기대감만을 쏟아붓고 싶은 대상이 생깁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런 흔치않은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작의 성공도 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에는 단순히 그런 박스오피스 숫자로 측정하지 못하는 일종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표현할 단어가 정말 궁색하네요.) 그 아름다움이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오락' 에서 쉽사리 찾아보지 못하는 '영화의 미'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라는 주제에 대해 '헐리우드 슈퍼히어로 무비' 가 깊이있고 복합적으로 그려내었다는, 좀 믿기지 않은 사실 말이지요. 우리는 그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 마무리된다는 '다크나이트 라이즈' 에, 순수하고 열정적인 기대감들을 차곡 차곡 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전설은 끝났습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는 전설을 이어 나가기보다는, 전설을 끝맺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유도 있겠지만, 제가 본 '다크 나이트 라이즈' 는 더이상 우리에게 어떠한 이야깃거리나 마음을 쏟을 만할 거리를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왜 전설은 끝났다고 표현했는지, 그래서 왜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또다른 찬사와 경탄보다는, 이 배트맨 시리즈가 잘 끝났음에 안도하고 미소짓는 정도로 극장에서 일어나야 했는지, 제가 느꼈던 이유들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너무 많아서 정리가 잘 될지 의문입니다. 






1. 사라진 캐릭터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를 좋게 볼 수가 없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 가장 먼저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도무지 그 어떤 캐릭터도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리뷰를 쓰면서 캐릭터 하나 하나를 되짚어 보아도, 전혀 공감을 형성하거나, 두려움이 들게 한다거나, 감동을 주는 인물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악역입니다.






- 최악의 악역들.


전작 히스 레저의 조커를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아도, 베인은 그 자체로 너무나 특색없고 매력없는 악당입니다. (빌런이라는 이름도 아깝습니다.) 단지 그가 임팩트를 준 것은 목소리와, 배트맨과 싸워 허리를 부러뜨렸다는 사실 뿐이며, '지능과 힘을 겸비한 최고의 빌런' 이라는 사전 보정 없다면 카리스마도 그닥입니다. 


우리는 라즈 알 굴이라는 죽어버린 유령과 싸우는 배트맨을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베인에게 결정적으로 실망하게 된 장면은, '라즈 알 굴의  뜻을 이룬다' 라는 대사부터 였던 것 같네요. 베인은 자신의 뜻과, 자신의 철학, 자신의 가치, 그리고 자신만의 악이 가득찬 도시를 그려 내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천재적 두뇌, 막강한 신체 등 그가 가진 특징들과 함께 개연성을 이루었어야 했고요.


헌데 그의 연설은 유치했고, 그 결과물의 도시는 단지 약간의 무법지대가 된 거 말고 대체 무엇을 이루었는가 무의미하며, 브루스 웨인을 가둬놓고 감시 한 명 안붙여놓는 어리석음에, 탈리아 알 굴의 순정남이었다는 꼭두각시 이미지가 덧씌워지더니, 결국은 배트맨도 아니고 캣우먼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최악의 최후를 맞습니다.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를 차로 치지 못하고 피해버리는 장면을 기억하신다면, 베인의 죽음이란 얼마나 비교 불능으로 가벼운 것인지요.


그렇다면 착한 여자 갑부인줄 알았다가 암흑 조직의 수장임이 밝혀진 탈리아 알 굴이 메인 빌런일까요? 그럴 수 없음은 역설할 필요도 없고, 일단, '다크 나이트 라이즈' 는 이런 반전 장난질이 필요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패를 다 보여줘도, 관객의 멱살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이 있었죠. 그 얄팍한 반전이 가져다주는 충격도, 의미도, 가치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전작과의 연계성을 약간 획득하고, 가장 매력적이어야 할 빌런, 베인을 쓰레기통에 디밀었죠. 


기타 무의미한 졸개들은 언급도 못 하겠고, 하여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의 악역들을 말하면 정말 안스러울 뿐입니다. 그들은 그 스스로도, 그들이 만들어 낸 고담시도 모두 실패작일 뿐이었습니다. 








- 멘토, 미아.


배트맨은 알프레드와 폭스, 훌륭한 멘토를 둘이나 둔 축복받은 영웅이고, 이들의 조언은 영화 전체에 담긴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있어 배트맨과 관객, 모두에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관객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의도적이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 는 멘토 없는 배트맨을 홀로 남겨둡니다. 알프레드는 배트맨 그만하고 평범하게 살라고 보채다가 비밀 말하고 떠나버리고, 폭스는 무기 셔틀로 전락합니다. 결국 배트맨은 조언자 없는 외로운 영웅으로 그려집니다.


이것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 에서 브루스 웨인이 겪어야 할 시련이었는지는 몰라도, 멘토들은 분명 배트맨 시리즈에서 매력 있는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없애면서 대체 얻은 것이 무엇이었나 의문이네요. 또 알프레드가 밝힌 레이첼에 대한 진실은 우리가 알고 있던 무게감에 비해 너무도 가볍게 다루어졌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프레드가 바라던 평범함으로 다시 대면한 것으로, 그 갈등은 얼렁뚱땅 덮어지는 것이었나, 싶고요. 하여간 멘토의 부재도 정말 크게 아쉬운 면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다른 캐릭터는


그렇다면 다른 캐릭터들 중에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느냐, 주인공인 배트맨부터, 캣우먼, 존 블레이크(로빈), 고든 경감, 다 어느 하나 딱히 인상깊다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었습니다. '캣우먼이 이쁘다' 라는 사실이 있지만, 그걸 정말로 진지하게 말할 영화 아니었잖아요.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배트맨은 레이첼밖에 모르던 순정파에서 이 여자 저 여자 쉽게 만나고 마음주는 바람둥이로 변했고, 복잡한 철학이고 가치고 자시고 그냥 악당과 싸워 고담시를 지키는 전통 슈퍼 히어로가 되었습니다. 존 블레이크는 정의감 불타서 배트맨 없는 고담시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열심히 노력하고, 그 정의감과 현실 철학으로 나중에 로빈이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 인물이 이번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의 중심적 인물이냐, 그건 아니고요. 고든 경감도 정의감에 열심히 뛰어 다닙니다. 그게 끝이고요. 선과 악을 오고가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졌어야 할 캣우먼은 그냥 과거 포맷하고 싶은 배트맨 도우미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강렬한 인상 없이, 인물들을 더듬거리며 기억해 내야 한다는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만큼 색깔도, 개성도 불분명한 캐릭터들이 잡탕처럼 뒤섞여, 폭발과 총성 속에서 두시간 여를 뒹굴다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마무리하는 것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의 인물들이었습니다.





2. 사라진 개연성들


쌓인 말을 쏟아내다 보니, 리뷰글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듯 하네요. 개연성 부분 관련해서는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개조식 가깝게 풀어쓰고자 합니다. 혹시 제가 잘 몰라서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부분들은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브루스 웨인 허리가 부러졌는데 접골 한방에 회복... 정말 이 부분은 웃음 터질뻔 했는데 참았네요.


- 감옥에서 탈출하는 브루스 웨인. 그 오랜 세월 아무도 탈출 못한 그곳을 탈출하는 방법이 '몸에 줄을 묶지 않고 훌쩍 뛰면' 된다는 것이, 아무리 그래도 좀 설득력이...;;


- 감옥 안에 있어야 할 브루스 웨인이 슬며시 엄중히 통제된 고담 시 안으로 들어와서, 제 발로 잡히기까지 했는데, 폭스가 있는 곳까지 안전히 배달되어서 들어옴. (흠;;)


- 베인에게 의해 본진 털려서 무기 다 빼앗긴 줄 알았는데, 폭스가 숨겨둔 무기 창고가 또 있어서, 무기 빼앗긴게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구나;


- 레이첼에 대한 진실이 밝혀져도 '알프레드는 쫓아내지만 뭐 딱히;'


- 하비 덴트에 대한 진실이 밝혀져도 '뭐 어쩌라고'


- 고든 경감 등이 사형판결 받고 강물위로 걸어가는데 안전하게 안깨지고, 반대쪽에서 배트맨 걸어옴;


- 경찰과 범죄자들이 한판 패싸움을 벌이는데,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음. 굳이 일렬로 달려들어 죽고, 패싸움을 벌일 필요가 왜 있는건지? 그냥 배트맨과 베인 싸움의 배경도구일 뿐?


- 밝은 대낮에 경찰들 옆에서 싸우는데 아무 주목이나 관심도 없이 싸우게 되는 배트맨.


- 비행기로 간편하게 가져다 내다 버릴 수 있는 궁극의 핵융합 무기


- 블레이크가 뚜껑만 열어줘도 빠져나올 수 있던 일부 갇혀 있던 경찰들


-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핵융합 폭탄이 아슬아슬하게 폭발했는데 멀쩡히 살아있음. 차리라 알프레드가 고개를 들고 미소 짓는 정도로만 씬을 마무리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인줄 아는 사람이 이제 넘쳐남. (블레이크, 베인, 캣우먼, 고든 경감 등등등...) 



이게 다가 아니라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지을까 합니다.











3. 마치며...


오랜 만에 리뷰를 쓰려니 의욕적으로 시작해도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네요. 게다가 재밌고 신나게 썼으면 좋겠는데 실망감이 큰 채로 남기는 리뷰글이라...


더 좋은 리뷰글을 남기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 는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이로써 전설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아쉬움 때문에 저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시절의 전설을 다시 한 번 들추어 보게 될 것 같네요.


Th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