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에 대한 나의 무식함.
‘경제’ 를 아시나요? ‘경제’ 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신가요?
당신은 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박식한 수준의 경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경제에 대해 몹시도 무지하고 미련한 일자무식이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저와 같은, 좋게 말해서 관심이 없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할 수도 있겠지요. 글 처음부터 무식하다 어쩌다 해서 기분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 툭 터놓고 이야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뭐, 누가 보나요. 당신과 저만 아는 비밀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석훈 씨가 쓴 이 책, 「괴물의 탄생」은 저에게는 저의 무식함을 책망하지 않고 경제와 경제학에 대해서 알려준 고마운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대체 경제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한창 세계 경제가 어렵다, 국가 경제가 어렵다 하는데 대체 무엇이 ‘경제가 어렵다’ 는 것이고, 대체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들이 있는가 알 수 있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직까지 ‘밝히 아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어렴풋이, 윤곽을 잡고, 무언가 아는 것 같기는 하다, 그 정도입니다. 책 한권 읽었다고 제가 미네르바처럼 국가 경제에 대해 수준 높은 예견을 한다던가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지는 못하겠지요. 단지, 그 ‘무언가 아는 것 같기는 하다’ 라는 사실이 즐겁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제껏 저에게 경제란 그저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돈 이야기, 그리고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갑자기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물가가 올라 먹고살기 힘들어진다는 것 정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면 극복할 수 있다. 하는 정도였지요. 나라의 정책이 어떻고, 국제 정세가 어떻고, 이런 것은 그저 TV 뉴스에서 떠드는 저와는 먼 이야기였습니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물가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몰랐다면, 저의 무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 책, 「괴물의 탄생」에서 저는 경제와 경제학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밑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강의 식으로 구성된 책의 구조와 문체도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말로 이런 강의가 있었다면 열심히 듣고, 과제도 하고, 레포트도 쓰고 하면서, A+ 받을수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공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말이지요.
세계 경제와 경제학의 역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야기
지금부터 제가 책에서 배울 수 있었던 유익한 점들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물론 책에서는 훨씬 더 많은 내용을 가르치고, 또 말하고 있으니 저자인 우석훈 교수님께서 혹시라도 제 글을 읽으신다면 “뭐야, 이거 헛읽었구만” 하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네요. 단 한번 읽어서는 경제학의 유치원생인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힘들었던 부분이 많습니다. 나중에, 경제학적 소양이 더 쌓이고 난 다음에 읽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지도요.
먼저, 이 책을 통해 세계 경제와 경제학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 경제는 어떠한 흐름으로 발전하고 발달해왔는가.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그것을 유통시키는 방법에 대해, 학자들은 어떻게 연구하고 또 말해왔는가 알 수 있었지요. 역사를 통해, 경제학은 두 가지 힘의 충돌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그 두 가지 힘이란 바로 ‘국가’ 와 ‘시장’ 이지요. 경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데,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가, 아니면 시장에게 맡겨 둘 것인가. 국가의 주도적 개입이 극에 달하면 사회주의이고, 시장의 힘이 강한 것이 바로 현대에 득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고 하겠습니다. 역사를 거쳐 오면서 많은 국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 시장과 국가의 주도권 싸움을 풀어 나갔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요?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유익한 점이라면, 바로 경제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역대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정책과, 그 의미,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온 영향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는 무슨 정책으로 발전을 이룩했고, 전두환은 물가를 잡기 위해 무슨 짓을 했으며, 김영삼은 대체 왜 IMF 라는 환란으로 나라를 밀어넣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그 이후에 어떤 식으로 나라를 몰아갔고, 이명박은 왜 욕을 먹어야만 하는가,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그 ‘정책’ 들과 그 정책이 가지고 온 파장, 그리고 우리나라가 가지고 온 고질적인 문제점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등을 소상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지금 이 글에서 설명하기는 무리일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싶으시다면 책을 보시고,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 그랬구나. 무언가 알 것 같다’ 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안목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큰 자산입니다. TV 뉴스를 볼 때,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다, 어떤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할 때 저것이 앞으로 어떠한 파급 효과를 가지고 올 것인가 판단하고, 이해하고, 그것에 찬성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되겠지요. 무조건 “한나라당이 하는 거니까 안 봐도 뻔해” -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고 침 뱉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팔을 걷어 붙이고 삽으로 떠서 밭에다 가져다 버리는 노력이 있어야겠지요. 앎의 노력, 판단의 수고로움이 나라를 사는 우리들에게, 특히 저와 같은 청년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라는 질문에 글쓴이 우석훈 교수님에게도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제까지 있던 일을 분석하기는 쉽지만, 한치 앞의 미래를 예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자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대안을 내놓아봐라’ 하는 요구만큼 막무가내도 없습니다. 논쟁할 때에도 되도록 이 말은 피했으면 합니다. 좌우지간, 우석훈 교수님은 대안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그 대안이 사실 제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제 3부문’ 이라는 대안입니다.
‘제 3부문’ 이란, 앞에서 언급했던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강력한 두 주체, 즉 국가와 시장이 아닌 다른 주체를 말합니다. 국가를 ‘제 1부문’, 시장을 ‘제 2부문’ 으로 본다면, 이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둘 사이의 관계를 완충하고, 자생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제 3부문’ 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유럽 등 국민소득 4만불을 넘어서는 선진국가, 복지국가에서는 이러한 ‘제 3부문’ 이 하나의 당당한 경제 주체로서 자리잡아 일자리를 창출해 내고, 돈을 돌게 하고, 문화를 생산하고, 복지를 실현시키는 등 긍정적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로서는 ‘제 3부문’ 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또 세계 경제학에서도 이 ‘제 3부문’ 이라는 개념은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역사회의 생활협동조합, 특산물 및 전통공예산업 등의 지역적 특화상품 생산, 대기업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조성되어 정부나 시장의 간섭없이 운영되는 복지 기금 등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제 3부문’ 이 경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식으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설명하고 있지만, 제가 지금 그것을 다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단지, 이러한 ‘제 3부문의 활약’에서 제가 받을 수 있었던 뉘앙스는, 단순한 법률 한 조각, 정책적으로 지원되는 돈 한 다발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경제의 문제를 경제논리로 풀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요점입니다. ‘윤리경영’, ‘호혜성’ 과 같은 단어들의 논의되고, 나 혼자 잘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으로의 회복. 이것이 바로 책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경제대안의 요체가 아닐까 합니다.
흐름, 흐름.
저는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그래서 문화만 잘 알면 돼,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문화가 뭔지도 잘 모르고 말이지요.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은 경제입니다. 내가 먹고, 쓰고 있는 모든 것은 다른 누군가가 만들고, 키워낸 것입니다. 모두가 혼자 살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도움을 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갑니다. 이 더불어 사는 삶이 경제의 참 모습이고, 경제학의 참 목표일 것입니다. 보다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보다 빨리 커나가는 것이 집중했던 경제가 이제 서서히 그 목표를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빨리 키우고, 거대해지면, 그것을 독점하는 몇몇이 생기고, 차별과 차이가 심화되고 박탈감과 사회적 우울이 커져가는 것이 도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시대가 지날 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중시된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꺼지지 않을 것만 같던 신자유주의의 등불도 이제 쇠락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보고, 그 흐름을 알고, 그 흐름에 발맞추어 현명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지금 2009년의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Th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