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cimple 2009. 9. 16. 12:38


간단한 Mel 스크립트를 파일로 만들고, 이를 실행하기


매우 간단한 MEL 스크립트 파일을 만들고 실행하는 방법을 알아 보자.

script editor 의 command input panel 에 다음과 같이 입력하도록 하자.




이것을 그대로 Ctrl + Enter 로 실행시켜 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mel script 를 파일로 저장해보자. 

mel script 를 파일로 저장하는 방법은,
1. script 를 마우스로 드래그한 다음
2. script editor 메뉴의 file > Save script... 로 저장한다.

이름은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아무렇게나 저장해 준다.

ex) myscript.mel




다음, 위에서 저장했던 스크립트 파일을 다시 마야에서 실행시키는 방법이다.
물론 스크립트 파일의 소스 코드를 복사해서 script editor 에 붙여넣기 한 다음 실행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스크립트 파일을 적당한 경로에 위치시켰다면 이 파일 전체를 하나의 명령어로 실행시킬 수도 있다.


script editor 의 command input panel 이나
마야 하단의 command line 에

source myscript;

또는

source myscript.mel;

을 입력하면, 미리 입력해둔 스크립트가 실행되게 된다.





이를 위해서 스크립트 파일이 위치해야 할 경로는

... \ (내 문서 폴더) \ maya \ (마야 버전) \ scripts

또는

... \ (내 문서 폴더) \ maya \ scripts

에 위치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C:\Documents and Settings\admin\My Documents\maya\2009\scripts

또는

C:\Documents and Settings\admin\My Documents\maya\scripts

에 위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ThEnd.



p.s. 추가적인 사항

만약에 마야에서 멜 스크립트를 만들고, 이를 mel 에 저장한 다음
즉시로

source myscript;

이런 식으로 실행하려고 하면 아마 실행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마야를 한번 종료했다가 다시 켜면 정상적으로 경로를 찾고 source 로 실행시킬 수 있다.

posted by cimple 2009. 9. 9. 23:08

Visual Studio 2008 에서 Maya 2009 Plug-in Wizard 를 사용하는데
지속적인 문제가 있어 이를 해결해 보았습니다.

사용법은 첨부된 파일(MayaPluginWizard2.0.zip)을 다운로드 받은 후 압축을 풀어 보면
MayaPluginWizard2.0\_MayaPluginWizard 안에

MayaPluginWizard 라는 폴더와

MayaPluginWizard.ico
MayaPluginWizard.vsdir
MayaPluginWizard.vsz


3개의 파일이 있습니다.

MayaPluginWizard 폴더는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9.0\VC\VCWizards
폴더 안으로 복사해 주시고,
나머지 3개의 파일은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9.0\VC\vcprojects
안으로 복사해 주십시오.

그리고 Visual Studio 2008 을 실행시킨 후 Project 를 생성하면
정상적으로 MayaPluginWizard 가 실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수정한 사항 설명]
(이 부분은 꼭 보셔야 할 부분은 아닙니다. 위의 설명대로 따라만 하셔도 됩니다.)


1번사항.

MayaPluginWizard2.0\_MayaPluginWizard\MayaPluginWizard.vsz
의 원본 내용은

//
VSWIZARD 7.0
Wizard=VsWizard.VsWizardEngine.7.1

Param="WIZARD_NAME = MayaPluginWizard"
Param="FALLBACK_LCID = 1033"
//

인데, 이 내용을

//

VSWIZARD 7.0
Wizard=VsWizard.VsWizardEngine.9.0

Param="WIZARD_NAME = MayaPlugInWizard"
Param="ABSOLUTE_PATH =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9.0\VC\VCWizards\MayaPluginWizard"
Param="FALLBACK_LCID = 1033"

//

로 변경시켜 주었습니다.



2번사항.

MayaPluginWizard2.0\_MayaPluginWizard\MayaPluginWizard\HTML\1033\default.htm

의 '2008' 을 모두 '2009' 로 변경하였습니다.

(Maya 2009 의 devkit 폴더 안에 들어있는 PluginWizard 파일에도 2008로 되어 있더군요;;)




///////////////////////////////////////////////////////////////////////////////////



[추가사항]
(이 부분은 위의 예와 다른 VisualStudio 나 Maya 의 버전을 사용하신다면 참고하시면 됩니다.)



1. Visual Studio 2005 에서 Maya 2009 Plug-in Wizard 를 사용하고 싶다면,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서 MayaPluginWizard.vsz 파일의 내용을

//
VSWIZARD 7.0
Wizard=VsWizard.VsWizardEngine.8.0

Param="WIZARD_NAME = MayaPlugInWizard"
Param="ABSOLUTE_PATH =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8\VC\VCWizards\MayaPlugInWizard"
Param="FALLBACK_LCID = 1033"
//

로 바꿔준 후 저장한 다음, 똑같이 폴더는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8\VC\VCWizards
로, 3개의 파일은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8\VC\vcprojects
로 복사해 주시면 됩니다.


2. VS2005, VS2008 에서 Maya 2008 PluginWizard 를 사용하시고 싶다면
C:\Program Files\Autodesk\Maya2008\devkit\pluginwizard
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MayaPluginWizard 압축파일의 압축을 푼 후,

MayaPluginWizard 폴더는

(VS2005의 경우)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8\VC\VCWizards
또는
(VS2008의 경우)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9.0\VC\VCWizards
폴더 안으로 복사해 주시고,

나머지 3개의 파일중 MayaPluginWizard.vsz 파일을 메모장/워드패드로 열어서

(VS2005의 경우)
//
VSWIZARD 7.0
Wizard=VsWizard.VsWizardEngine.8.0

Param="WIZARD_NAME = MayaPlugInWizard"
Param="ABSOLUTE_PATH =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8\VC\VCWizards\MayaPlugInWizard"
Param="FALLBACK_LCID = 1033"
//

(VS2008의 경우)
//
VSWIZARD 7.0
Wizard=VsWizard.VsWizardEngine.9.0

Param="WIZARD_NAME = MayaPlugInWizard"
Param="ABSOLUTE_PATH =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9.0\VC\VCWizards\MayaPlugInWizard"
Param="FALLBACK_LCID = 1033"
//

로 수정한 다음 3개의 파일 모두
C:\Program Files\Microsoft Visual Studio 9.0\VC\vcprojects
안으로 복사해 주십시오.



이 글의 방법대로 한다면, Visual Studio 나 Maya 가 설치된 폴더를 임의로 지정해 주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Maya2008 Plug-in Wizard 의 VS2005, VS2008 에서의 사용,
Maya2009 Plug-in Wizard 의 VS2005, VS2008 에서의 사용을 모두 커버할 수 있을 것입니다.


ThEnd.

posted by cimple 2009. 9. 8. 17:02

(클릭하시면 선명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졸업작품으로 제작했던 풀3D 애니메이션 <셀라비(C'est La Vie)> 가 해외 여러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언론 매체를 통해서 보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손으로 공들여 만든 작품이 유럽 등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있고, 조금씩이나마 국내에도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는 것 같아 고무적으로 여겨집니다.

다음은 각 보도 자료의 링크입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
내일신문
경기방송
한국대학신문
중부일보

앞으로 더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어오고,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ThEnd.



p.s. 각 신문기사 스크랩

posted by cimple 2009. 9. 6. 03:57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감독 켄 콰피스 (2009 / 미국)
출연 제니퍼 애니스턴, 스칼렛 요한슨, 드류 배리모어, 제니퍼 코넬리
상세보기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답니다. 정신 차리세요!"

라고 일단 영화는 외칩니다. 그 산뜻한 충고를 던져주는 영화 제목 만큼이나, 쟁쟁한 출연진들이 전해주는 이야기 또한 맛깔나는 멋진 사랑 이야기 영화였습니다. 그럼 한번 각 커플의 이야기들을 엿보면서, 사랑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공유해보도록 할까요?



그래,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어. 근데, 여자는 그렇지 않다는건 아니겠지?

지니퍼 굿윈(지지) - 저스틴 롱(알렉스)


영화의 '주인공 커플' 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바로 지지(지니퍼 굿윈) 과 알렉스(저스틴 롱) 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제일 흥미롭고, 두 사람이 서로 엮어지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지지는 아리송한 남자의 태도에 대해 알렉스에게 질문하고, 알렉스는 남자의 솔직한 마음속 생각에 대해 여과없이 대답해 주니까요.


영화를 보고 새삼 알게 된 사실 중의 하나는, 여성들은 남성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여성들은 그들의 커뮤니티 가운데에서, 자신의 친구가 남성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들을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장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요. 사실 이런 것은 남자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좀 낯선 일이긴 합니다. 남자들은 친구들의 연애에 관련해서 그렇게까지 시시콜콜한 감정의 미묘한 줄다리기에 간섭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것을 굳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해 주려 하지도 않습니다. 남자들이 자기 친구의 연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시기는 연애 초기의 "이쁘냐?" 정도가 전부이니까요.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남자의 심리상태들은 대체로 맞습니다. 전화 안하고, 만나자고 안하면 관심 없는거 맞냐고요? 네, 맞습니다, 맞고요, 사실 남자는 자기가 진짜 관심있어 하고, 가슴 두근거리고, 반해버린 여자라면, 먼저 전화하거나 만나자고 하지요. 물론 쑥스럽고 머뭇거리면서 이야기 못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남자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근거없는 용기 같은게 생기는 것 같긴 합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들이댔다가 차여본 경험이 쌓이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첫 눈에 반했다면, 그리고 정말로 매력적인 상대를 만났다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남자가 별 반응이 없이 그저 미적지근하다면, 열에 아홉은 이 남자가 나한테 반하지는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는게 맞긴 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남자의 애매모호한 태도. 즉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안 좋아하는 건지 모르게끔 행동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 짜증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애매모호하게, 솔직하지 못하게 행동한다고 굳이 남자들을 욕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야, 넌 내 스타일이 아냐. 난 널 안 좋아해. 너한테 전화할 일도 없고, 다시 만날 일도 없을테니 괜한 환상 품지말고 신경 꺼."

라고 말하는 남자를 원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서 어중간하고 아리송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장 관리' 라고 대표되는, 자기 주위의 남자들에게 이리저리 먹이를 주면서 맴돌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영화에서는 애나(스칼렛 요한슨) 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이를테면 이런 거죠. 사실 이성으로서 별 관심도 없고,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이 남자가 내 주위에 있으면서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감정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 여자는 가끔씩 모이를 줍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 보고싶다" 라던가, "나 요즘 힘들다" 등등. 그럼 남자는 혹시 이 여자가 나를? 하면서 양식장 안에서 파닥이게 되는 겁니다. 지금 이 남자, 내 호감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라는 감정적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 외에도, 밥을 얻어 먹는다던지, 과제 도움을 받는다던지 하는 부가서비스들도 받을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앞서 말한 남자의 애매 모호한 태도는, 이 여자가 상처받지 않고 조용히 나를 떠나 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기인하는, 어찌 보면 일종의 배려입니다. 물론 남자가 진짜 쓰레기같을 때는 따로 있습니다. 적절한 감언 이설로 여자를 꼬드긴 다음 원나잇 스탠드만을 원할 때이죠. 하룻밤만 즐기고 싶다, 책임감과 무게감에서 해방된 채 쾌락만 즐기고 싶다. 그런 목적으로 여자에게 접근해서 하룻밤 즐기고, 그 다음에 "나는 네가 과분하다" 이딴 식으로 나온다면 그건 몹쓸 수법이죠. 앞서 말했던, 여자가 상처받지 않고 나를 떠나게끔 만든다는 '배려'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파렴치한을 경계시키는 목적이라면 영화의 공익성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이성을 '배려' 하면서 떠나 보내려는 남성의 애매모호함까지 싸잡아 비난받는 것은 좀 억울한 일이 아닐가요.

그리고 영화에서 말하는 남녀의 만남과 호감, 그리고 그에 대한 남자의 표현 등은 너무 순간적인 만남과, 극적인 감정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즉,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나에게 반했느냐 반하지 않았느냐, 여기에 지나치게 몰두한다는 거죠. 누가 나한테 '반했다'. 상상하면 참 즐거운 일입니다. 누군가 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전화기를 붙들고 서성이며, 내 생각을 하느라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하다면. 참 끝내주게 기분 좋은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반하기를' 기대하고 상상하는 자체가 영화적인 상상이고 헛된 바램은 아닐런지요?

사실 남녀가 알고 지낸 기간이 꽤나 오래 되었다면 이러한 법칙들은 힘을 잃게 되죠.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나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단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호감은 증명된 셈이니까요. 서로에게 반해서 어쩔줄 모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를 하나 하나 쌓아가고, 서로의 장점을 하나 하나 발견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을 다른 커플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 진짜 남자가 봐도 너무 멋있다.

제니퍼 애니스톤(베스) - 벤 에플렉(닐)

사랑과 연애에 대한 좀더 솔직한 남자와 여자의 마음을 이야기하며, 영화의 어조는 전체적으로 현실적면서 시니컬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영화는 닐(벤 에플렉) 과 베스(제니퍼 애니스톤) 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면서 세상 어딘가에 있을 숭고한 진짜 사랑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는 것 또한 보여줍니다.

닐은 남자가 봐도 참 진짜로 너무 멋있습니다. 항상 사랑하는 사람을 챙겨주고, 작은 것 하나 하나 배려하고, 따뜻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물론 벤도 잘못이 있다면, 괜한 고집을 부려서 베스를 오해하게 만듭니다. 벤은 결혼이 싫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억지로 다른 사람들 앞에 내보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증명받아야 하는 절차가, 그에게는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훼방받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베스는 그런 벤의 속마음을 믿기 어렵습니다. 이 남자가 나를 책임지기 싫어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아서 나와 결혼하지 않으려 하는구나. 오해합니다. 물론, 벤이 결혼이란 게 여자에게 가지고 있는 큰 의미를 알아주지 않은 채,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밀어붙인 것은 잘못이지만, 어쨌거나 베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둘만의 것으로 고결하게 지키고 싶은 벤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과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까지 있는 남자. 어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힘든 마음과 지친 몸을 기댈 대 없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버티던 베스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찾아와서는 조용히 안아 주는 벤의 모습은 눈물 맺힐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세상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지만 단 한 사람의 품에만 안기고 싶은 베스와,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여러 말 않고 조용히 끌어안아주는 벤의 사랑. 오랫동안 주고 받은 서로간의 깊은 신뢰와 이해 속에서 다져진 사랑. 그런 사랑이, 어떤 시련에 흔들리겠으며, 어떤 유혹에 굴복할까요?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소망했습니다. 때문에 닐이 베스에게 반지를 주며 청혼하는 장면에서는 '아, 이건 영화 속의 일이어도 좋아!' 라고 마음껏 흐뭇해지며 행복해졌습니다. 괜스레 제가 말입니다.

 


세상엔, 사랑이 좀더 손쉬운 사람들이 있지.

스칼렛 요한슨(애나)



세상엔 사랑이 좀더 손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애나(스칼렛 요한슨) 처럼 반경 100m 내의 남자들을 모두 빨아들여 버릴 것만 같은 매력의 소유자라면 더욱 그렇고 말이지요.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일단 호감을 주는 데에는 타고난 재능을 가졌잖습니까. 1.3초 만에 결정된다는 그 첫인상 말입니다.
세상은 공평한 일이라, 그런 사람들에게도 고뇌와 고민이 있겠지? 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니, 그런 고뇌와 슬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사실 좀 어불성설입니다. 그들을 가엾게 생각해 봤자 나의 자기위안에 그치는 것 같아서 못나 보이고, 그런 사람들이 하는 볼멘소리가 다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다음 크레딧이 나올 때, 애나의 마지막 대사는 무언가를 알려준 것 같습니다.

"내가 집중하고 있는 건, 나를 찾는 거에요. 친구와 몇 달간 여행을 떠날 거에요. 인도로."

예쁜 얼굴과, 멋진 몸매의 나. 그런 나 자신은 쉽사리 거울 속에서 확인할 수 있고, 쉽게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자아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받고 사랑받으면서 살 수 있었고, 딱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신중하게 돌아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겉껍데기 자아' 는 불안정해서, 그것을 보고 사랑인 양 달려드는 남자들과의 관계도 불안정할 수 밖에 없을 터입니다. 그래서 거울로는 확인할 수 없는, 진짜 내 안에 담긴 자아를 찾을 시간이 필요했겠고, 자신의 겉모습이 아닌 그 '진짜 자아' 를 볼 수 있는 상대. 그것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가요? 외면적 매력에 있어 출중한 사람들이, '진짜 자아' 를 찾는데는 오히려 우리들보다 좀더 멀리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역시 인생은 공평하군' 이라는 결론에 데려다주는 것 같나요?

(아니. ㅡ_ㅡ)

 

모든 남자는 짐승이야. 하지만 모든 남자가 짐승처럼 살지는 않는다구.

제니퍼 코넬리(제나인) - 브래들리 쿠퍼(벤)



벤(브래들리 쿠퍼) 는 요즘 인기있다는 대표적인 '짐승남'인 듯 합니다. 나쁜 남자이긴 한데, 여자를 잘 압니다. 그래서 참 여자 다루는 일에 능숙하죠. 아내인 제나인(제니퍼 코넬리) 와 애인인 애나(스칼렛 요한슨)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갑니다. 무언가 특별한 사람인 것 처럼 보이는 나름의 재능이 벤에게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뭐, 벤이 뼛속까지 쓰레기같은 바람둥이는 아닌 것 같긴 합니다. 그도 나름대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끔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니까요. 하지만 벤에게 아내를 향한 그런 노력들은 제나인이라는 한 사람을 향한 순수한 애정이 아니라, 여자를 대하는 그의 재능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뿐입니다. 즉, 그가 제나인을 위해 따스한 말을 해주고,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담배 끊는 척이라도 했던 것은, 제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를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자리에 다른 누구여도 상관 없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벤에게 결혼이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속박의 굴레일 뿐입니다. 결혼은 한 사람에 대한 의무와 헌신을 요구하니까요. 벤은 멋모르고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서 제나인과 결혼 생활을 하지만, 그는 제나인을 '제나인' 으로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의 곁에 있는 한 사람의 여자로서 사랑했습니다.

제나인은 그것을 뒤늦게 알게 되지요. 둘 사이에 트러블들이 생길 때, 처음엔 상대방을 탓하다가, 다음엔 자신에게 문제가 있나 돌아봅니다. 그러다 다시 상대방을 탓하게 됩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에서 자꾸만 잡음이 발생하는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모르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투영시켰던 모습은 겉껍데기 뿐이였던 것입니다. 제나인은 벤이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깊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껍데기를 덧씌웠고, 벤은 제나인에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보통 여자라는 껍데기를 덧씌웠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라는 것은 가식과 위선으로 지탱될 수가 없지요. 벤은 제나인이 보통 여자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감있게 사랑해야 할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부담감과 속박의 굴레를 견디지 못합니다. 제나인은 벤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더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출발부터 어긋나있던 두 사람의 사랑은, 아무리 서로가 노력하려고 한다 해도 더이상 좁혀지지 않을 만큼 엇갈린 먼 길을 와버렸습니다. 결국 헤어지는게 더 나은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죠.

사실 벤과 같은 바람둥이 성향은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 여자 마다할 남자 없고, 예쁜 여자가 방에서 옷 벗고 달려든다면 초연하게 버텨 낼 수 있는 남자는 아마 한명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가 벤과 똑같다고 오해하는 것은 곤란하죠. 마치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까요. 모든 남자는 짐승이지만, 모든 남자가 짐승처럼 살지는 않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도 그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모른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라는 사실을 알고 싶은 이유는 뭘까요? 만약에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잊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반대로 만약에 나한테 반했다면, 그래? 그럼 한번 생각해 보겠어. 이런 잣대질은 얼마나 이기적인가요. 왜냐하면, 이렇게 이리저리 재고 있다는 자체가, 당신이 그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라는 사실은 별반 쓸모없는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반하지 않았지만, 나도 그 사람에게 반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감정의 크기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으로, 서로 공평한 입장입니다. 당신이 그에게 느끼는 감정만큼이나, 그가 당신에게 느끼는 감정도 불확실할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랑은 개인 감정이 아니라 함께 하는 거죠. 마치 핸드폰을 세상 아무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핸드폰은 서로 가지고 있어서 통화를 해야 그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고 받아야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습니다. 나 혼자 머릿속으로 굴리고 생각해서 노력하면 잘 할수 있는, 다른 여타 인생일과는 좀 종류가 다릅니다.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가치롭고 아름다운 것이지요.

정답 없는 삶과 사랑에,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무엇인가를 붙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사랑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내가 사랑해야 할 그 사람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런 사람이 곁에 있는 당신, 지금 당신의 그 사랑을 축복합니다.
그런 사람이 없는 당신, 당신에게 곧 정말 멋진 사랑이 찾아오기를 소망합니다.

Thend.

posted by cimple 2009. 9. 5. 15:48


해운대
감독 윤제균 (2009 / 한국)
출연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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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실미도>(1108만),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 <왕의 남자>(1230만), <괴물>(1301만) 에 이어 한국 영화사에 새겨질 5번째 대기록입니다. 천만 관객이란 생각할수록 경이로운 수치입니다. 전 국민의 4분의 1 가까이 하나의 영화를 보다니요. 천만이라는 숫자를 넘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 조그마한 나라의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영화를 사랑하는 국민이었나, 참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어지는 관객 수입니다.

영화관을 찾은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천만 관객이라는 수치적인 검증이 이루어지자 그제서야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사실 개봉 전부터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훌륭한 영화를 사전에 알아보는 안목은 굉장히 낮은 편이지만 (흑...;;) <해운대> 는 뭔가 석연찮았습니다. 뭔가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별 거 없을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뚜껑을 열어본 다음 튀어나온 천만이라는 수치는 사실 놀라웠습니다. 그 수치는, 단순한 입소문 이상의, 영화적인 재미와 감동을 보유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는 <실미도>와 <왕의 남자>도 천만 관객의 영화답지는 않았다고 봅니다만.)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대체 2009년 여름, 우리나라 국민들이 원하는 그 어떤 것을 영화 <해운대> 가 충족시켜 주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감상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갸우뚱' 입니다. 일단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천만명이라는 관객이 볼 정도로 대단한 작품인가, 라는 질문에는 즉각 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천만이라는 팩트 또한 실제입니다. 그래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영화 보는 눈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저만 재미 없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해운대> 에서는 천만 관객의 명백한 요소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는걸요. 자세한 이야기는 뒤이어 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이번 결과는 기이하다 싶을만큼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형 재난영화' 해운대.

'한국형 재난영화' 에 동조하기 어려웠다.

헐리우드의 재난영화 공식에서 벗어나, 재앙 앞에 선 우리의 모습,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기에 앞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헐리우드의 재난영화 공식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의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가장 비슷하다고 볼수 있는 <투모로우> 부터, <볼케이노>, <단테스 피크>, <트위스터> 와 같은 옛날 자연재해 영화들, <딥 임팩트>, <아마게돈>, <코어> 와 같은 인류를 멸망시킬 재난에서부터 <포세이돈 어드벤쳐>, <타워링>, <데이라잇> 등과 같은 단일 사고로 인한 재난 영화까지. 이러한 헐리우드 재난영화의 공식들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 물량공세. 스펙터클.
2. 극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
3. 희생과 헌신, 사랑.

이 공식에서 벗어나서, '한국식 재난 영화' 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연출력과 기술력의 부재로 인한 불가피함이었는지, 아니면 감독의 확고한 의지였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벗어나긴 벗어났습니다. 해운대에 밀어 닥치는 메가쓰나미는 영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할 뿐이므로 물량공세를 벌이는 1번 공식을 탈피했고, 대신 영화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한국적인 정겨운 캐릭터들이 벌이는 코믹하고 즐거운 드라마에 할애했습니다. 또한 등장인물들은 밀어닥치는 메가쓰나미로 인한 상황을 극복한다기보다는, 그저 그 속에서 허우적댈 뿐이므로 2번 공식에서도 탈피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3번 공식인 희생과 사랑은 매우 억지스럽게도 충실합니다. 하여간 한 두가지가 아니었던, 그 '한국식 재난영화' 에서 느꼈던 위화감을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력한 주인공, 만식(설경구), 연희(하지원)

이 영화가 재난영화인가 아닌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끔 만든 것은 바로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었습니다. 영화는 해운대 토박이 어부 청년인 만식과 횟집 아가씨 연희, 이 둘의 이루어질듯 말듯한 사랑 줄다리기를 큰 관심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TV 앞에서 자주 보던, 드라마 속에 나오는 두 명의 남녀 주인공들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여기에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라는 설정이 추가되고, 연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가 만식 때문이었다는 비밀 하나쯤 덧붙이면 완벽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코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입니다. 이걸 '한국식' 이라고 부른다면, 나름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영화 속에서는 여러 가지 갈등 구조가 존재합니다. 연희와 만식과의 갈등, 연희와 만식의 어머니와의 갈등, 지역 유지인 억조(송재호) 와 만식 사이의 갈등. 쓰나미는 이들의 이야기에 있어서, 갈등을 해결하거나 상황을 반전시키는 그 어떠한 필연이나 개연도 마련해주지 못합니다. 단지, 메가쓰나미가 밀어닥치고, 그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재앙 속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스리슬쩍 갈등이 해소된다는 식입니다.

억조(송재호)와 해운대 사람들간의 갈등을 봅시다. 무엇이 해소되고, 해결되었을까요? 억조가 돈/권력 때문에 해운대 사람들과 마찰이 빚어졌고, 이는 굉장히 골이 깊은 갈등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재앙이 닥치고, 팔 한번 내밀어 만식(설경구) 한번 붙들어주면 화해가 되는 것이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는군요? 문제의 중심에 있던 억조(송재호)가 흘러가는 간판에 맞아 안타깝게 죽어가는 것으로 그 모든 문제를 덮어버리고 해결하려는 영화의 문제해결방식은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이었습니다. 어떠한 감정적 회복도, 진심의 공개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말입니다.

다른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나미가 끝난 다음에 특별한 이유 없이 연희는 다시 만식과 함께하기로 결정하고, 만식의 어머니는 결혼을 승낙합니다. 큰 일을 함께 겪으면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 하고 그렇게 좋게 좋게 살게끔 되는 것일까요. 뭐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것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이야기 진행인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가 여전히 난감합니다.

두 사람은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사실상 하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그게 우리의 진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대재앙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무력한 모습. 그저 도망치고, 매달리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전부인 모습.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영화의 주인공 아닙니까. 그들이 무엇인가 보여주기를 바랬습니다. 쓰나미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 가운데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예를 들면 만식은 영화 초반의 사고 때문에 폭풍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면, 쓰나미가 밀어닥쳤을 때 자신의 공포를 이겨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모습을 그려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우리는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끝까지 평범하게 끝나는 것이 아닌, 평범 속에 담긴 우리 안의 영웅을 생각해봄직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무능한 전문가, 김휘(박중훈) 박사와 그의 가족.

다른 모든 인물은 그렇다고 치고, 영화에서 유일하게 쓰나미와 관련있는 인물은 김휘 박사(박중훈) 입니다. 따라서 그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가 재앙에 맞서서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은 없었을까요? 아주 약간, 먼저, 쓰나미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 또한 쓰나미가 일어나자 마자 허둥대고,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죽어가는 그냥 보통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무력한 모습을 인간미라고 포장해 버리기에는, 그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던 전문가 아니었을까요. 사고가 발생하자 마자 자신의 자리를 비워버리고 딸을 구하러 갔다가, 아내하고 죽는 것이 전부인 전문가. 이것이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네의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데에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김휘의 아내인 유진(엄정화)의 마지막 모습들은 억지 감동, 억지 설정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딸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서서히 물이 차올라 죽어가는 유진의 모습은, 우리들 마음에 충격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나 싶었고, 그 노골적인 안타까움 조장에 사실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괄시하던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죠.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대체 이 대목에서 유진을 살려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옥상에 올려 보내서 남편과 함께 한번 더 죽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려는 것인가, 좀 불쾌하게까지 여겨지더군요. 딸을 구조 헬기에 태워 보내면서 외치던 김휘(박중훈)의 "내가 니 아빠다!" 는 딱히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밀려 오는 쓰나미 앞에서 남편의 넥타이를 고쳐 매어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너무 억지 감동을 짜내려 애쓰는 모습 아니었던가요. '딥 임팩트' 에서 혜성이 떨어지는 순간에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던 아버지와 딸의 상황만큼 절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지요. 김휘 박사라면,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거나, 아니면 어떻게라도 살아남을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리얼리티를 원했다면, 오히려 그 쪽이 낫지 않았을까요.

 

신파의 희생자들, 형식(이민기) 와 동춘(김인권)의 어머니.

구조대원 형식(이민기) 와 서울아가씨 희미(강예원) 의 사랑이야기는 '헐리우드의 공식'에서 벗어나는  대신 '대한민국 연애소설의 공식'을 판박이 해놓습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에서 본듯한 아가씨가 해운대에 놀러 와서는 돈 많고 재수없는 준하(여호민)의 꼬임에는 넘어가지 않고 구조대원과 눈이 맞아 졸졸 쫓아다니는데, 이를 질투한 준하(여호민)는 친구들을 불러 형식을 때려주고, 형식과 희미 사이에서는 오해가 생기고 뭐 어쩌구 저쩌구...

그러다가 쓰나미가 일어나자 형식은 준하와 희미를 구하기 위해 출동해서, 몇 번이고 헬기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결국 로프가 고장나자 <버티컬 리미트> 나 <투모로우> 에서 보았던 것처럼 로프를 잘라 자기를 희생합니다. 유진(엄정화) 의 죽음만큼이나 억지 감동을 짜내기 위한 불필요한 희생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차라리 두 사람을 안전하게 구해 내기만 했으면 어땠을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평범하고도 사실적인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를 잘 드러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동춘(김인권) 이라는 캐릭터는 잘 살려냈으면 훌륭한 캐릭터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동춘이 쓰나미 이후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것으로 보아, 평소에는 괄시받고 무시받던 얼간이 이미지였던 동춘이 정작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는 순수한 의도로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러한 '의외의 영웅' 이라는 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이미지와 전개가 잘 드러나지 않았죠. 또한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동춘의 어머니로부터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비중이 낮았고, '어머니' 라는 단어를 영화 안에 황급히 집어 넣은 무리한 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천만인가.

하지만, 결국 영화 <해운대> 는 천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이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인정하고, 높게 평가했다는 증거입니다. 수십만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영화를 만들기도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수백만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천만의 관객을 모으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인 일입니다. 이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죠. 아무리 저 혼자 '해운대 재미없더라. 그런데 대체 왜 본거야?' 라고 떠들어봤자 소용 없는 일입니다. 천만이라는 팩트는 저같은 일개 개인의 평가를 짓누릅니다. 왜 천만 관객일까요? 무엇이 천만 관객을 만들었을까요?

일단 '웃음이 있는 영화' 라는 요소를 들고 싶습니다. 해운대는 참 웃긴 장면이 많은 영화입니다. 설경구가 겔포스 대신 샴푸를 집어삼킨 장면은 그 중에서도 백미이고, 심지어 쓰나미라는 대재앙이 일어난 다음에도 코믹한 요소를 삽입했습니다. (부산대교 위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는 동춘의 장면) 한국 사람들은 심각한 것 보다는 웃긴 것을 좋아합니다. 웃을 일 없이, 가슴 먹먹하고 답답한 일 많은 요즈음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2009년은 참으로 우울한 한 해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적당한 볼거리와 함께 적절한 웃음을 던져주는 해운대는 마침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가기 알맞은 영화가 아니었나 합니다.

두 번째로, '익숙함' 입니다. 드라마에서 보았을 법한 캐릭터, 연애소설에서 본듯한 스토리, 다른 영화에서 보암직한 장면들. <해운대> 는 우리에게 익숙한 코드들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모자이크처럼 붙여 나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신선하지는 않지만 친숙하고, 식상하다 싶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보고 나왔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지만 손해보지도 않았다는 기분. 그 '본전치기' 를 <해운대> 는 보장합니다. 그리고 천만의 사람들이 그 안전한 본전을 약속받고서는 극장을 찾았습니다. 마치 최고의 명품은 아니지만, 빨간 색으로 Hit 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과도 비슷합니다. <해운대> 는 관객과의 그런 합리적인 상거래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나중에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부산' 과 '해운대' 라는 지역 자체의 요소입니다. 818만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친구> 의 경우에도, 부산을 배경으로 하여 강렬한 부산 사투리를 사용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나이드신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극장을 찾도록 만드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여전히 부산은 우리나라 제 2의 도시이고,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부산 효과' 가 이번 <해운대> 에서도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열기 넘치는 해운대 해수욕장, 횟집에서 신선한 생선회와 함께 들이키는 소주 한잔. 걸쭉한 부산 사투리. 사직 구장에서의 야구 응원 등등, 영화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지역적 공감대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킵니다. 여기에 동조하게 될 부산에 살고 있는, 또 부산에 살았던 사람들만 극장을 찾더라도 이미 어느 정도의 흥행 수치는 보장된 것이었죠. 따라서 그들이 느끼는 '재미' 란 것은 사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100%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라 해도, 영화 자체의 재미인 것으로 포장되고 재생산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 나갑니다.
또한 영화 <괴물> 의 한강과 마찬가지로, 부산의 해운대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상당히 친숙한 장소이라는 것이 좀더 <해운대> 의 입소문이 신속하게 온국민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였겠죠. 따라서 그 곳에서 일어나는 대재앙이라는 설정에 대해 좀더 호기심이 들고 현실감있게 받아들이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바로 이러한 요소들 정도가, <해운대> 가 천만이라는 관객을 넘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해운대> 가 남긴 것들.

부산 해운대에 쓰나미를 일으킨다. 그런 컴퓨터 그래픽이 화제가 되는 영화라는 사실만으로, CG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해운대> 의 성공은 무척이나 반길 일입니다. 비록 해외 CG 회사에 거액의 돈을 지불해서 외주를 맡기고, 또 실제 작업은 국내 CG 팀이 소스를 받아 와서 새롭게 진행하는 등 이런 저런 잡음도 있었지만, 어쨌든 한국 영화의 CG 산업에 훌륭한 성공 사례를 남긴 것은 맞습니다. 이를 통하여 국내 CG 업계가 새로이 주목받고, 또한 이번 경험을 통해 시뮬레이터 개발 등 원천기술을 보유하려는 R&D 기반의 CG 회사들이 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영화에 대한 안좋은 평을 잔뜩 써 놓았지만, 어쩌면 이것은 헐리우드의 스펙터클한 재난영화에 길들여진 제 탓일 수도 있습니다. <해운대> 는 경험 부족과, 예산 부족 가운데, 우리 손으로 직접 도전적인 시도를 통해 만들어진 훌륭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수천억원의 제작비를 자랑하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우리나라는 100억의 예산을 들인 영화를 만들기에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니까요. 천만 관객은 그러한 한국 영화의 끊임없는 도전에 대한 국민들의 성원이자,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소망의 표현입니다. 더욱 과감한 시도들, 더욱 과감한 도전들이 이어져서, 경험이 축적되고, 노하우가 쌓여,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퀄리티와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영화들이 끊임없이 제작되기를 바랍니다.


ThEnd.

posted by cimple 2009. 8. 21. 16:00



adidas 의 'Impossible is Nothing' 이라는 슬로건으로 만들어진 CF 시리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것. 미국의 NBA 농구선수 길버트 아레나스의 이야기다.

아무도 나를 인정하거나 믿어주지 않을때, 
바로 그럴 때 나 자신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

실망과 낙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과 싸우는 이들에게, 이것보다 큰 화두는 없다.



나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
나를 그 자리에 붙들고 있는 스스로의 생각.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매직으로 '0' 을 그려넣는 길버트 아레나스의 모습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가장 멋진 격려이자 칭찬이다.

ThEnd.


p.s. 다른 'Impossible is Nothing' 시리즈 보러가기
posted by cimple 2009. 8. 13. 16:06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감독 스티븐 소머즈 (2009 / 미국)
출연 채닝 테이텀, 시에나 밀러, 레이 파크, 이병헌
상세보기


이병헌!!!

생일을 맞아 참 신나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난데없는 생일강조;; ㅡ_ㅡ;)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아주 어렸을 적에, 낙하산이 달린 '지 아이 유격대' 장난감을 밥상 위에 올라가서 던지며 놀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하지만 그 이상의 기억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나, 생각나는 만화의 에피소드도 전혀 없다는 거...;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이야기인 것 같으니, 어쩌면 당연할런지도요. 

어지간하면 영화의 줄거리도 옮기고, 느꼈던 점을 이야기해야겠는데, 참 그러기가 힘든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한줄 평은, 정말 하나 하나가 예술입니다.

뉴웍 스타-레저의 스티븐 휘티는 “아마도 2009년에 나온, 가장 자신감있게 정신줄 놓은(proudly mindless) 서사극.”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타임의 리차드 콜리스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의 아이큐가 매 분당 뚝뚝 떨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으며, 릴뷰스의 제임스 베랄디넬리는 “눈 외에는 어떤 신체기관도 즐겁게 해주지 않는 영화.”라고 혹평을 가했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크리스 나샤와티는 “이 영화를 보고나면 <트랜스포머 2>가 매우 수준높은 예술작품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빈정거렸다. 또, 할리우드 리포터의 프랭크 쉑은 “각본가이기도 한 소머즈 감독이 고옥탄가 CGI 액션 씬을 연달아 보여주는 것에만 주력하기로 결심한 탓에, 영화속 캐릭터들은 하나도 중요치 않게 되었다.”고 불평했고, 버라이어티의 리차드 퀴퍼스 역시 “시리즈 론칭을 희망하는 영화라기 보다는 오랫동안 이어진 시리즈의 하이라이트 씬만 모아놓은 것 같은 이 영화에는, 엄청난 양의 CGI 액션 포격과 최소한의 캐릭터 개발이 있다.”고 고개를 저었으며, 뉴욕 포스트의 카일 스미스는 “영화속 재난씬은 마치 (감독의 전작인) <미이라>에서 재생한 것처럼 보인다.”고 강한 불만감을 나타내었고, 뉴스위크의 라민 시투드는 “눈가리개를 하고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은 영화.”라고 공격했다.


신랄하네요; 제가 생각하는 영화평은 이겁니다. 영화 상영 시간을 117분이라고 했을 때, 15초짜리 TV CF라면 1분에 4편, 그러니까 약 400편 정도 주우욱 이어 붙인 모음집을 보고 난 듯한 느낌입니다. 그 짤막짤막한 CF 끼리는 개연성도 없고, 별다른 의미도 없으며, 단지 보는 사람에게 '너는 지금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고 있다' 라는 사실만 주입시킵니다. 여기에 생각이나 추리가 개입하면 난감해집니다. 관객은 15초 전의 장면을 기억하거나 15초 후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거나 할 필요 없이, 그냥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 순간만 소비하면 되는 거죠. 다행히,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건질 것은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남는 것은 딱 이것뿐이었습니다.

이병헌!!!

정말 이병헌 아니었으면 리뷰를 쓸 일말의 의지조차 꺾이지 않았을지...;; 하지만 다행히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안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은 이병헌의 존재감은, 영화를 보는데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할리우드 첫 데뷔작인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에서, 이병헌이 맡은 역할은 '코브라 군단' 의 닌자 용병, '스톰 쉐도우' 역할입니다. 그는 이번 역할에서, 할리우드 그 어떤 배우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카리스마 풀풀 풍기는 역할을 소화해 냅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구도는 원래 지.아이.조의 컨셉이 그렇듯이, 테러리스트 군단 '코브라 군단' 과 최강 특공대 '지 아이 조' 의 대결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서로 열심히, 충실하게 싸우는 것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관객에게 따로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를 없게 하고, 그런 여지도 주지 않으니 친절하다고 해야 할까요;;;??

따라서, 그러한 영화의 전체적인 구도를 볼 때 같은 맥락으로 형성된, 실질적으로 양쪽 세력을 대표하면서 중심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바로 '코브라 군단' 의 스톰쉐도우와 '지 아이 조' 의 스네이크 아이즈 입니다. 물론 진짜 주인공인 듀크(채팅 테이텀)와 그의 애인 배로니스(시에나 밀러) 가 서로 다른 군단에 소속되어 있고, 그 둘의 갈등이 영화의 중심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긴 하죠. 그렇지만 어차피 둘은 사랑하는 사이고, 그렇게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둘이 결국 말도 안되게 급 가까워져서는(ㅡ_ㅡ;;) 함께 코브라 군단을 대적한다는 방향으로 여차저차 흘러가는 보면, 듀크와 배로니스의 대결구도는 단지 미남미녀 주인공간의 로맨스를 뭔가 있어보이게 포장한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스네이크 아이즈


그에 반해, 진짜 라이벌 대 라이벌의 느낌을 풍기면서, 코브라와 지 아이 조의 대립 구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스톰 쉐도우와 스네이크 아이즈, 이 둘 뿐이죠. 일단 옷부터 서로 흑백으로 입고 나오며, 최첨단 무기가 난무하는 와중에서도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으로 현란하게 일본도 칼싸움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것이 이번 영화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에서 스톰 쉐도우라는 캐릭터가 비중 큰 무게감을 가진 이유이며, 또한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역량이 더욱 빛나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너지는 에펠탑과 CG, 그리고 캐릭터들.

세계 3대 컴퓨터 그래픽 회사인 Digital Domain 이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의 CG를 담당했습니다. 정말 영화 전체적으로 물량을 엄청나게 쏟아부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화 전부터 예고되던 에펠탑이 무너지는 장면과, 그 이전에 파리에서 펼쳐지는 추격씬은 영화에서 사용된 CG 기술의 백미죠.



특히 에펠탑이 붕괴되는 장면 하나만을 보려고 사람들이 극장을 찾을 정도로, 이 장면 하나만큼은 높은 퀄리티를 보여 주었습니다. (프랑스의 자존심을 이렇게 맘대로 무너뜨려도 되냐? 근데?) 그렇지만 Digital Domain CG 팀 안에서도 1군, 2군이 나누어서 작업을 했는지, 이 파리의 추격장면 외에는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수준의 CG를 보여주는 장면들도 군데 군데 있었습니다. 특히나 전투기가 이착륙 할 때의 움직임 자체가 난감한 장면도 있었고, 쉐이딩과 이착륙시 발생하는 연기의 파티클 효과 등등이 가장 눈에 띄던 부분이었습니다. 길이도 꽤나 긴 영화에 CG를 빈틈없이 채워 넣다 보니 생겨난 어쩔 수 없는 한계였을까요. 아니면 워낙 편집 속도가 빠른 영화이다 보니 관객이 뭐라 할 틈도 없이 장면을 돌려버릴 테니, 효율성과 사실성의 중간 정도 부분에서 접점을 찾은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1인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가 아닌, 많은 수의 캐릭터가 함께 싸우는 영화이므로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영화를 산만하게 만들 뿐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톰 쉐도우와 스네이크 아이즈 외에는 다들 별 개성 없이 비슷비슷한 군인들입니다. 다행히도 영화의 많은 시간동안 등장하는 히로인 배로니스(시에나 밀러) 가 캐릭터 자체보다는 배우의 매력을 발산해서 어느 정도 커버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불행 중 다행.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같은 영화를 보면, 정말로 '산업' 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영화 한편 만들어야 CG 하는 사람들 할일 많아지고, 촬영하고, 연기하고, 그 외에 관련되어 종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먹고 사는...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본질과는 좀 동떨어져 있지만, 산업의 유지를 위해서 이런 영화가 기획되고, 소모된다는 거대한 시스템. 그 순환구조 자체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한, <지. 아이.조 : 전쟁의 서막> 은 그런 영화였습니다.

ThEnd.

p.s.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Paramount Pictures Corporation. 에 있습니다.)

posted by cimple 2009. 7. 30. 16:50

감독 피트 닥터, 밥 피터슨 (2009 / 미국)
출연 이순재, 에드워드 애스너, 크리스토퍼 플러머, 조던 나가이
상세보기



78세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일단 그동안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장난감, 개미, 물고기, 괴물, 자동차, 쥐, 슈퍼 히어로, 로봇 등등... 여러분이 생각했던 '가장 참신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는 어떤 캐릭터였나요? 다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그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매력을 설명하고도 남는 주인공들이었지요.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영화처럼 크리스쳔 베일이나 메간 폭스를 주연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매번 캐릭터를 새롭게 창조해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새로이 그 존재를 납득시키고, 매력에 빠져들게끔 해야지요. 모두들 앞다투어 흥미로운 캐릭터, 감동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려 애씁니다. 

그런데, '78세 노인' 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생각해 보셨나요?




PIXAR의 10번째 애니메이션 <UP>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기 힘든 캐릭터를 가지고, 또 한번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풀어 냄으로써, PIXAR 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리고 왜 PIXAR 인지를 다시 한 번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UP>의 줄거리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모험과 탐험을 좋아하던 칼. 그는 자신과 같이 모험을 좋아하던 왈가닥 여자아이인 엘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자녀는 없지만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늙게 되고, 마침내 엘리가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도시 재개발의 열풍 속에서도 엘리와 살아왔던 집을 지키며 혼자 살아가던 어느 날, 칼은 건설 직원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양로원으로 퇴거 조치를 받습니다. 그래서 칼은 마지막 수단으로, 수천개의 풍선을 집에 달아 집을 통째로 하늘로 띄워 올립니다. 그리고 아내인 엘리가 그토록 가기 원했던 남아메리카의 폭포를 향해 날아갑니다.

그런데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그의 여정에 예기치 않은 불청객들이 찾아옵니다. 꼬마 탐험가 러셀, 강아지 더그, 도요새 케빈. 그리고 칼이 어린 시절 우상으로 여겼던 탐험가 찰스 먼츠까지. 이들과 얽혀들며, 칼은 남아메리카의 오지에서 펼쳐지는 갖은 모험을 펼칩니다.

PIXAR 애니메이션은 항상 그렇지만,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들 나름대로 영화를 해석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린이들이 봤을 때에는 집이 풍선을 타고 날아다닌다는, 그리고 야생에서 두근거리는 모험을 즐긴다는 즐겁고 유쾌하며 환상적인 상상력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어린이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어른들이 영화를 볼 때에는 그들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철학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번 <UP> 이 던진 질문은, 그 동안의 PIXAR 애니메이션이 던졌던 질문 가운데에서 가장 녹록치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UP>, 아름다운 보수를 이야기하다.

UP 이 추구하는 가치는 사실 난해합니다. 그동안 PIXAR 애니메이션이 보여주었던 뚜렷한 가치관의 제시에 비해, UP 은 조금 어려운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저울질합니다.

영화는 단순히 '한 노인이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오던 꿈을 끝내 이룬다' 라는, 어떠한 '숭고하고 지켜져야 할 것을 지키는 것에 대한 예찬' 에만 몰두하지 않고,
또는 '낡아빠진 옛것에 매달리지 말고, 새롭고 가슴 떨리는 모험에 도전해라' 라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메시지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약속했던 자신의 오래된 신념을 지켜 나가는 '보수적' 가치와,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삶의 양상을 받아들이고 또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는 '진보적 가치'. 영화는 이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제시하고, 그 가운데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관객들로 하여금 칼과 함께 고민하게 합니다. 그 고민은 쉽지 않습니다.



칼은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과, 자신이 고수해온 가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랑하는 아내 '엘리' 와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온통 사방이 공사중이어도 고집스레 자신이 살아온 터전을 지켜 나가는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점프컷으로 짧게 표현되지만, 칼과 엘리가 서로 행복하게 사랑하면서 늙어 가는 모습을 그려 낸 부분은,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만큼 칼에게 자신의 추억과, 자신이 추구해온 가치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칼은 진심으로 엘리를 사랑하며,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고 싶어 합니다. 엘리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항상 남아메리카의 아름다운 폭포에 가서 그 곳에서 가슴 떨리는 모험을 하면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보물처럼 여기는 탐험 일지에 '내가 앞으로 할 일들' 이라는 제목을 적어놓고, 그 뒤로는 백지로 남겨둔 채, 바로 그곳에 찾아가 '가슴 떨리는 모험들' 을 적어 나가겠다 소망했습니다. 칼은 꼭 그곳에 같이 가자는 엘리와의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천개의 풍선으로 집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날아갑니다.

수천 개의 풍선으로 집이 떠오르는 장면은 단연 <UP>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예고편이 등장하는, 다행히도 저는 '진짜' 보고싶은 영화는 예고편조차 보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데 가장 최고의 준비는, 그 영화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상태 아닐까요? 때문에, 이번 <UP> 도 참 다행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한 할아버지가 아내와의 아름다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적지에 도착하고, 어릴적 탐험의 꿈을 이룬다. 끝.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간단한 답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칼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예기치 않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동행하게 됩니다. 천진난만한 아이 러셀과, 강아지 더그, 도요새 케빈.

칼은 그의 삶에 새로이 개입한 것들을 거추장스러워 합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아내 엘리와의 약속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남아메리카의 아름다운 폭포로 떠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인데, 러셀과 그 친구들은 자꾸만 그의 발걸음을 더뎌지게 만듭니다. 때문에 칼은 그들과, 그들과의 관계를 애써 밀어냅니다.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쫓아다니는 강아지 '더그' 도 싫고, 까악거리면서 졸졸 쫓아다니는 도요새 '케빈' 도 귀찮을 따름입니다.

칼이 보수를 대표한다면, 천진난만한 아이 러셀은 진보의 상징과 같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데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을 꿈꾸는 아이. 그 또한 항상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은 줄 알지만, 실제로 그것에 뛰어들면서 그게 생각처럼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들을 배웁니다. 그 아이로 인하여 보수로부터 기꺼이 배움을 마다하지 않는 아름다운 진보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남아메리카의 오지에서 그들과 이미 얽혀버린 칼.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불편한 칼은 다른 이들과의 동행을 거부하고 혼자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걷습니다. 풍선에 매달린 집을 끌고 걷지만, 그 때 그의 모습은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처럼 어둡게 그려집니다. 날으는 집을 타고 행복을 찾아 두둥실 떠오르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아름다운 약속은 굴레가 되어 그를 얽매고 있습니다.

칼은 마침내 아내와 약속했던 그 곳, 그 폭포에 닿는데 성공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일을 달성해 낸 후, 그는 조용히 집 안에 들어와 앉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일,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약속을 지켜낸 후인데,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칼은 조용히 엘리의 탐험 일지를 펴듭니다.

그때, 칼은 당연히 백지여야 할 '내가 앞으로 할 일들' 의 다음 페이지들이 백지가 아닌 것을 발견합니다. 그 곳에는 엘리와 칼이 함께 했던 사진들이 붙어 있습니다. 엘리에게는 칼을 만나고, 그와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왔던 모든 날들이, 마치 꿈꾸던 이상향에 다다른 것 같은 행복이요 아름다움이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칼은 비로소 발견합니다. 오랫동안 숙원해 온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라는 것을 위해 인생을 희생하는 것 보다, 매 순간 순간의 삶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진짜 이상향이었다는 사실을.



칼은 자리를 딛고 일어섭니다. 엘리가 칼에게 지켜달라 원했던 것은 '약속' 이 아니라, '행복' 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삶의 매 순간을 밀쳐내지 않고 포용하고 받아들임에 있다는 것. 그래서 칼은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집의 정든 물건들을 하나씩 내버립니다. 고집스레 붙들어 왔던 그 오래된 집착들로부터 벗어나자, 칼의 집은 다시 두둥실 떠오릅니다. 진짜 행복을 찾기 위해서.

쉽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지만, 이면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며,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가치가 다르지만,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함께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메시지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바로 칼의 어릴적 우상인 찰스 먼츠입니다. 그는 광기어린 극도의 보수주의의 상징입니다. 도요새를 잡아서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또한 원래는 순수했던 탐험가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다른 이의 침입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며, 이미 배타적인 욕심이 그의 삶을 삼켜 버린 후입니다. 그로 발생하는 폭력과 억압은 보수주의의 가장 안좋은 단면을 드러냅니다.



다양한 가치를 가진 수많은 사람이 한데 얽혀 살면서도, 서로 다투지 않고, 싸우지 않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것.
날아다니는 집을 타고서 도착한 꿈같은 장소에서조차 그것을 찾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여정 속에서 해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영화는 말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닿을 수 없는 이상향처럼 여겨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유쾌한, 그러나 평가는 엇갈릴 수 있는.

<UP> 은 충분히 유쾌하고 즐거운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개' 를 이용한 여러 가지 개그 코드 (개에게 테니스 공을 던지면 열심히 물어 온다던지, 개가 다람쥐에게 신경이 온통 쏠린다던지 하는) 들은 사실 미국 문화에 익숙한 것이라서 100% 공감하고 웃기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스럽거나 저질스럽지 않은 유머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관객들로 하여금 유쾌함을 선사합니다. 또 일단 영화 내내 '풍선을 매달아 집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또 끈으로 집을 묶어서 손에 들고 다닌다' 라는 재미있는 설정은 동심을 자극하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의 무게감 때문에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즐거움을 만끽함과 동시에 진지한 질문들을 던져 볼만한 영화로 생각됩니다.

또, 매번 PIXAR 장편 앞에 방영되는 PIXAR 단편 애니메이션이 이번에는 정말 '대박' 입니다. 멋진 상상력과 기막힌 호흡으로 만들어진 이번 단편 애니메이션은 또한 한국인 2세 감독이 연출했다고 해서 더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이지요.



언제나 PIXAR 작품을 볼때마다 되풀이하는 말은

"아, 우린 언제 저런거 만들어보나?"
"우와, 진짜 이런거 한번 만들면 진짜 소원이 없겠다"

...이번에도 어김 없었습니다.

벌써 열 번이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 <UP> 을 보며, 또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한없는 부러움을 가져 봅니다. 하지만, 우리도 할 수 있겠지요?

네, 할수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할 일들"

아직 제 모험 노트는 그 뒤가 백지로 남겨져 있으니까요.



ThEnd.


p.s.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PIXAR animation studio 에 있습니다.

posted by cimple 2009. 7. 29. 21:23

C'est La Vie


C'est La Vie 는 불어로, '이것이 인생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영규, 송재원, 추연준, 이재준.
4명이 'Team Lavie' 를 이뤄서 일구어낸 1년 농사의 결실이며,
2008년 아주대학교 미디어학부 졸업작품으로 제작된 5분 30초 분량의 Full 3D 애니메이션이다.

나는 모든 캐릭터 애니메이션(라비, 비셔스, 백혈구),
부유물 애니메이션, 일부 섬모 애니메이션, 일부 배경 오브젝트 모델링,
그리고 라비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AWARDS

- 2009 SBS 창작애니메이션 대상 TV / 극장 상영작 결정





- 2009 이탈리아 카툰클럽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초청작




- 2009 스페인 온앤오프 페스티벌 경쟁부문 선정 (진행중)





SOUND


http://rwlim.tistory.com/entry/Cest-La-Vie

위 링크는 C'est La Vie 의 사운드 디자인을 홀로 맡은 UBY 의 블로그로,
C'est La Vie 의 사운드 트랙 및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ThEnd.


posted by cimple 2009. 7. 29. 06:00

초콜렛
감독 프라차야 핀카엡 (2008 / 태국)
출연 야닌 비스미타난다, 아베 히로시, 퐁팻 와키라분종, 암마라 시리퐁
상세보기


무려 '미소녀' 의 달콤, 살벌한 액션 감상하기.


일단,

각설하고,

이 영화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예고편 부터 감상합시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초콜릿> 이라는 원제보다 <옹박 4> 라는 제목으로 좀더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이 영화는,
<초콜릿> 이라는 달콤한 제목만큼이나 달콤하고 가냘프게 생긴 미소녀가 펼치는, 살벌할 정도로 화려한 무에타이 액션 영화입니다.

정말 이 아가씨가 주인공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에이, 그래봤자 여자애가 얼마나 하겠어' 라는 생각은, 이미 위에서 예고편을 보신 분들이라면 벌써 떨어내셨겠지요? 영화 자체도 정말 '고맙게도' 액션에 완벽하게 충실한 영화라, 상영시간 거의 내내, 이 가냘퍼 보이는 소녀가 몸빼바지를 입고 펼치는 화려하고 현란한 발차기, 몸놀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순발력에 입을 다물지 못함은 물론이고요.

이쯤 되면, 저 멋진 노와이어 액션 장면들을 대역 없이 소화해낸 이 아가씨가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이름 : 지자 야닌(Yanin Vismitananda)
생년월일 : 1984년 3월 31일
국적 : 태국
신장 : 162cm



영화 <초콜릿> 은 2003년부터 기획이 시작되었고, 2005년에 주연 배우로 이 아가씨, 지자 야닌을 캐스팅합니다. 그리고 3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2008년 2월 태국 전역에 걸쳐 개봉했습니다. 정확한 흥행 성적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센세이널한 작품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곧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다른 국가에서도 개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화의 감독은 토니 쟈와 호흡을 맞춘 옹박 1의 감독, '프라차야 핀카엡(Prachya Pinkaew)' 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영화 마지막의 NG(라고 쓰고 잔혹한 부상장면들 이라고 읽습니다) 모음을 보고 있노라면, 이 감독의 무자비한 액션 연출과 그 기획 의도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입니다.)

물론 지자 야닌의 미모에도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스토리? 그거 먹는건가요?

무언가 영화를 봤으면 내러티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텐데,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나마 한 줄로 요약하면 "자폐증 소녀의 사채업 이야기" 랄까요?

대략적인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스포일러성 100%나, 이 영화로부터 얻어지는 재미를 느끼는 데에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옛날 옛날에 태국 폭력조직의 보스격인 No.8 - 이것도 공홈에 들어가서 알게 된 것이지만 -  과 , 그의 애인 '씬' 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건너온 미남 야쿠자 '마사시' 가 '씬' 과 눈이 맞아 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질투심에 No.8 은 가슴속 깊이 복수심을 안고 살아갑니다. 한편 '마사시' 와 '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센' 이죠. 어렸을 때부터 자폐아로 자라난 센은 대신에 천부적인 무술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옹박>을 보면서 무에타이를 익히죠.

...뭐?


네;;; 사실입니다. 그렇게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싸움이 벌어지면 천재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지요. 바로 즉석에서 상대방의 기술을 익힌 다음 되갚아주기도 합니다.

좌우지간 각설하고, 아버지는 일본으로 떠나버리고, 어머니 '씬' 은 개과천선해서 열심히 살기 위해 No.8 의 손아귀를 떠나려 합니다. 하지만 쉽게 놓아주지 않죠. '씬' 은, 아마도 마약 중독으로 생각되지만, 깊은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굉장한 훈남 아버지 마사시


그 덕에 이랬던 어머니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 센과, 동네 친구 '뚱보' 는 돈을 벌기로 결심하지요. (정말 이름이 뚱보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이름이라도 좀 정해줄 것이지;;;)

이 친구가 뚱보입니다. 나름 멋있다능


두 사람은 씬이 소싯적에 돈을 여기저기 빌려주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아내러 다닙니다. 정말 충실한 사채업 영화죠. (ㅡ_ㅡ;;) 당연히 순순히 돈을 주려는 사람들은 없고, 그래서 센은 가는 곳마다 돈받아내기 위해 건장한 청년들과 싸움을 벌입니다. <옹박> 본편같은 숭고한 목적? 그런 것 없습니다. 돈 받아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죠.

돈 줘.


나중엔 정말 센이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어쨌든 당연히도 그 와중에 결국 인생의 원수인 No.8 과의 대결이 시작되고, 아버지는 뜬금없이 일본에서 태국으로 날아와 칼싸움을 벌여 주십니다. 마무리는 적절하게 마무리된다. 이상 영화 <초콜릿> 이었습니다. 하하.


즐거운 '다름'

참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다지만, 이렇게 무술을 잘 하는 어여쁜 소녀라니요. 그 소녀가 과감히 몸을 던지고, 떄리고, 맞고, 다치고, 찢어지면서도 결국 영화를 완성해 내는 곳.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제아무리 자본력이 된다는 헐리우드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아무리 어설프더라도, 남이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것을 완성해 내는 것은 분명 인정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영화로서의 언어가 좀 부족하고, 구성이 미흡하더라도,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색다른 맛. <초콜릿> 은 그 즐거운 다름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ThEnd.


p.s.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는 하이라이트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