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무엇하지만,
또 다른 말로 하기에도 무엇하기에 그냥 작품이라고 말해둡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한 얼굴.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한 타이포그라피. 십자가-죄-사랑을 주제로 만들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한 정보디자인. 집을 떠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경험이 많아서,
살아왔던 기간은 색으로, 숟가락의 갯수는 함께 살았던 사람, 숟가락의 색깔은 함께 살았던 사람들과의 친밀도를 표현합니다.
전체적으로 '밥솥, 밥숟갈' 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해서 '동거동락' 이라는 주제로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동고동락이 맞지요?)
이런 식의 패러디 물은 취미로도 무수히 만들었었는데... 남은 것은 이것뿐이네요.
전역하고 나서 의욕에 불타, '패러디' 에 대한 주제의 레포트 표지를 패러디로 만들어 보는 짓을 해 봤습니다. 아래에 적힌 글을 보니 참 민망하네요. ㅡ_-a;;
지금은 온게임넷 해설자로 맹활약중인 프로게이머 김정민 선수... (저에겐 언제나 선수라는 ㅡ_ㅡb)
한때 열심히 팬질(;;) 을 했더랬습니다.
수능시험 끝나고, 친구와 함께 강원도에서 삼성동 아셈 메가웹까지 달려가서 목쉬어라 응원했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김정민 선수를 위해 만들었던 치어풀을 모아봤습니다.
몇 개는 방송을 탄 것도 있고... 간만에 보니 재미있네요. 후훗.
제가 만든 치어풀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치어풀이 아닐까 하네요. 방송에서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그랬어?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뭐 나름 인기있었다구요.) 질레트배 스타리그 16강 변은종 선수와의 경기에 치어풀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오랜만에 스타리그에 올라온 김정민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서,
많은 이들이 '김정민의 부활이다' 라고 말했을 때, 저는 웬지 그 말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치어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정민 선수는 아쉽게 패배...
이때부터 제 치어풀이 걸리면 김정민 선수가 패배하는 징크스가 생겼... ㅡ_-a;;
경기에 사용될 목적이 아닌, 순전이 응원하는 팬심(ㅡ_-a;; 허헉)으로 만들었던 치어풀입니다.
치어풀에 씌여진 문구 '야, 임마...' 는 약간의 사연이 담겨 있는데,
김정민 선수 팬카페 'TheMarine' 에는 회원들이 자기자신을 소개하는 자기소개 게시판이 있습니다.
여기에 김정민 선수도 자기소개 글을 올렸는데,
30문 30답 형식으로 되어 있는 자기소개 맨 끝의 문항이 'To. 정민' 이었거든요.
결국 김정민 선수는 'To. 정민' 에서,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저게, 그 문항에 대한 김정민 선수의 답이고요.
김정민 선수 자기 자신에 대한 격려와 채근을 일깨우고, 더 열심히 하길 바랬다는...
(저게 언젠데 그때 팬심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 )
치어풀이 한창 인기를 끌자 온게임넷 사이트에서 '베스트 치어풀' 이라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주장원을 하면 MMgear 3D 헤드폰을 주고, 월장원을 하면 최신형 핸드폰을 주는 행사였죠.
첫 주에 이 치어풀로 주장원을 차지했습니다. ㅇ_ㅇ/~
MMgear 3D 헤드폰은 손에 넣었는데, 그 이후로 월장원 이벤트는 온겜측에서 진행을 안하더군요...
호응이 별로여서 그랬나...
보기보다 만들기 어렵지 않은 치어풀이었습니다;;
그래도 '콜럼버스의 달걀' 아닐까요? 후훗...
어느 대회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듀얼 토너먼트 1라운드 A조에 김정민 선수와 임요환 선수가 함께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당시 같은조가 김정민-임요환-문준희-박성준(삼성준 선수) 였었죠.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이라, 먼저 김정민-문준희 선수 , 임요환-박성준 선수 경기가 있었는데,
임요환-김정민 선수 경기가 성사되었을 경우 이 치어풀이 걸리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김정민 선수는 2패 탈락, 임요환 선수는 2승으로 듀토 2라운드에 진출했습니다.
사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임요환 선수의 최대 라이벌은 김정민 선수였지요. 테란이라는 종족, 전략과 정석이라는 대비, 준수한 외모로 인한 인기, 황제와 귀족이라는 닉네임...
하지만 임요환 선수는 두 번의 우승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김정민 선수는 중요한 길목에서 고배를 마시고 비운의 테란, 눈물의 테란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저는 그 비운과 눈물의 주인공에게 왜 그렇게 끌렸던 것일까요.
한 사람은 지금 최고 기량의 해설자로 변신하여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30대 프로게이머라는 약속을 지키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멋진 청년들입니다.
우주배 MBC 게임 스타리그 박정석 선수와의 경기에서 사용되었던 치어풀입니다.
군대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제작한 치어풀이고, 이후에 김정민 선수가 은퇴하면서
정말로 '마지막' 치어풀이 되어 버렸죠...
어찌 보면 좀 철없는 짓이기도 했던 치어풀 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뭐, 그 때도 제 인생이니, 소중하게 추억하려고 해요.
누구에게나 즐거워서 몰두했던 일들은 행복이라 말할수 있을 테니까요.
당신은 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박식한 수준의 경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경제에 대해 몹시도 무지하고 미련한 일자무식이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저와 같은, 좋게 말해서 관심이 없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할 수도 있겠지요. 글 처음부터 무식하다 어쩌다 해서 기분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 툭 터놓고 이야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뭐, 누가 보나요. 당신과 저만 아는 비밀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석훈 씨가 쓴 이 책, 「괴물의 탄생」은 저에게는 저의 무식함을 책망하지 않고 경제와 경제학에 대해서 알려준 고마운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대체 경제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한창 세계 경제가 어렵다, 국가 경제가 어렵다 하는데 대체 무엇이 ‘경제가 어렵다’ 는 것이고, 대체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들이 있는가 알 수 있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직까지 ‘밝히 아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어렴풋이, 윤곽을 잡고, 무언가 아는 것 같기는 하다, 그 정도입니다. 책 한권 읽었다고 제가 미네르바처럼 국가 경제에 대해 수준 높은 예견을 한다던가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지는 못하겠지요. 단지, 그 ‘무언가 아는 것 같기는 하다’ 라는 사실이 즐겁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제껏 저에게 경제란 그저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돈 이야기, 그리고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갑자기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물가가 올라 먹고살기 힘들어진다는 것 정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면 극복할 수 있다. 하는 정도였지요. 나라의 정책이 어떻고, 국제 정세가 어떻고, 이런 것은 그저 TV 뉴스에서 떠드는 저와는 먼 이야기였습니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물가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몰랐다면, 저의 무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 책, 「괴물의 탄생」에서 저는 경제와 경제학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밑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강의 식으로 구성된 책의 구조와 문체도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말로 이런 강의가 있었다면 열심히 듣고, 과제도 하고, 레포트도 쓰고 하면서, A+ 받을수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공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말이지요.
세계 경제와 경제학의 역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야기
지금부터 제가 책에서 배울 수 있었던 유익한 점들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물론 책에서는 훨씬 더 많은 내용을 가르치고, 또 말하고 있으니 저자인 우석훈 교수님께서 혹시라도 제 글을 읽으신다면 “뭐야, 이거 헛읽었구만” 하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네요. 단 한번 읽어서는 경제학의 유치원생인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힘들었던 부분이 많습니다. 나중에, 경제학적 소양이 더 쌓이고 난 다음에 읽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지도요.
먼저, 이 책을 통해 세계 경제와 경제학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 경제는 어떠한 흐름으로 발전하고 발달해왔는가.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그것을 유통시키는 방법에 대해, 학자들은 어떻게 연구하고 또 말해왔는가 알 수 있었지요. 역사를 통해, 경제학은 두 가지 힘의 충돌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그 두 가지 힘이란 바로 ‘국가’ 와 ‘시장’ 이지요. 경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데,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가, 아니면 시장에게 맡겨 둘 것인가. 국가의 주도적 개입이 극에 달하면 사회주의이고, 시장의 힘이 강한 것이 바로 현대에 득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고 하겠습니다. 역사를 거쳐 오면서 많은 국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 시장과 국가의 주도권 싸움을 풀어 나갔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요?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유익한 점이라면, 바로 경제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역대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정책과, 그 의미,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온 영향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는 무슨 정책으로 발전을 이룩했고, 전두환은 물가를 잡기 위해 무슨 짓을 했으며, 김영삼은 대체 왜 IMF 라는 환란으로 나라를 밀어넣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그 이후에 어떤 식으로 나라를 몰아갔고, 이명박은 왜 욕을 먹어야만 하는가,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그 ‘정책’ 들과 그 정책이 가지고 온 파장, 그리고 우리나라가 가지고 온 고질적인 문제점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등을 소상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지금 이 글에서 설명하기는 무리일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싶으시다면 책을 보시고,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 그랬구나. 무언가 알 것 같다’ 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안목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큰 자산입니다. TV 뉴스를 볼 때,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다, 어떤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할 때 저것이 앞으로 어떠한 파급 효과를 가지고 올 것인가 판단하고, 이해하고, 그것에 찬성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되겠지요. 무조건 “한나라당이 하는 거니까 안 봐도 뻔해” -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고 침 뱉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팔을 걷어 붙이고 삽으로 떠서 밭에다 가져다 버리는 노력이 있어야겠지요. 앎의 노력, 판단의 수고로움이 나라를 사는 우리들에게, 특히 저와 같은 청년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라는 질문에 글쓴이 우석훈 교수님에게도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제까지 있던 일을 분석하기는 쉽지만, 한치 앞의 미래를 예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자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대안을 내놓아봐라’ 하는 요구만큼 막무가내도 없습니다. 논쟁할 때에도 되도록 이 말은 피했으면 합니다. 좌우지간, 우석훈 교수님은 대안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그 대안이 사실 제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제 3부문’ 이라는 대안입니다.
‘제 3부문’ 이란, 앞에서 언급했던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강력한 두 주체, 즉 국가와 시장이 아닌 다른 주체를 말합니다. 국가를 ‘제 1부문’, 시장을 ‘제 2부문’ 으로 본다면, 이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둘 사이의 관계를 완충하고, 자생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제 3부문’ 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유럽 등 국민소득 4만불을 넘어서는 선진국가, 복지국가에서는 이러한 ‘제 3부문’ 이 하나의 당당한 경제 주체로서 자리잡아 일자리를 창출해 내고, 돈을 돌게 하고, 문화를 생산하고, 복지를 실현시키는 등 긍정적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로서는 ‘제 3부문’ 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또 세계 경제학에서도 이 ‘제 3부문’ 이라는 개념은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역사회의 생활협동조합, 특산물 및 전통공예산업 등의 지역적 특화상품 생산, 대기업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조성되어 정부나 시장의 간섭없이 운영되는 복지 기금 등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제 3부문’ 이 경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식으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설명하고 있지만, 제가 지금 그것을 다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단지, 이러한 ‘제 3부문의 활약’에서 제가 받을 수 있었던 뉘앙스는, 단순한 법률 한 조각, 정책적으로 지원되는 돈 한 다발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경제의 문제를 경제논리로 풀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요점입니다. ‘윤리경영’, ‘호혜성’ 과 같은 단어들의 논의되고, 나 혼자 잘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으로의 회복. 이것이 바로 책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경제대안의 요체가 아닐까 합니다.
흐름, 흐름.
저는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그래서 문화만 잘 알면 돼,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문화가 뭔지도 잘 모르고 말이지요.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은 경제입니다. 내가 먹고, 쓰고 있는 모든 것은 다른 누군가가 만들고, 키워낸 것입니다. 모두가 혼자 살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도움을 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갑니다. 이 더불어 사는 삶이 경제의 참 모습이고, 경제학의 참 목표일 것입니다. 보다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보다 빨리 커나가는 것이 집중했던 경제가 이제 서서히 그 목표를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빨리 키우고, 거대해지면, 그것을 독점하는 몇몇이 생기고, 차별과 차이가 심화되고 박탈감과 사회적 우울이 커져가는 것이 도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시대가 지날 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중시된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꺼지지 않을 것만 같던 신자유주의의 등불도 이제 쇠락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보고, 그 흐름을 알고, 그 흐름에 발맞추어 현명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지금 2009년의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군생활의 끄트머리 무렵, 한 번쯤은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써 보고 싶어 적어내린 소설입니다다.
스스로도 다시 읽을 엄두는 잘 나지 않습니다. 민망하고 무안해서...
그래도 쓸 당시에는 마음 속에 담긴 사랑을 생각하는 언어들을 잘 표현하려 애썼고,
그 때에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진 언어였을 테니, 추억하는 의미에서라도 보관의 가치가 있겠지요?
손
1
7월의 햇살은 솔잎 사이로 바스라지며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빛살의 가루들은 산들거리는 바람과 함께 춤추며 나의 눈 언저리로 떨어져 들어왔다. 어제 빗방울이 조금 흩뿌려진 후 날씨가 맑게 개어서인지, 솔잎들은 저마다 물기를 머금고 생글거리며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댄다. 그 눈부신 산뜻함에, 나는 정겹게 한쪽 눈을 찡긋 해 보였다.
7월.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달이라니. 조용히 발음해 보면 입 속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머쉬멜로우를 장난스레 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7월은 빛나는 햇살도, 그 아래 드리워진 솔빛 녹음도, 그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향기마저도 달콤하다. 이렇게도 한껏 오늘 맞이한 7월의 첫날에 대한 감사의 제목들을 정신없이 나열하고 있으려니까 누군가가 나를 큰 목소리로 불러댔다.
"이현 병장님! 이현 병장님!"
처음에는 아득한 메아리처럼 들리던 그 소리가, 나의 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걸걸한 그 군인 목소리마저, 오늘은 싫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렇지만 나를 부르는 것이 영민이 목소리라는 것,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어서 나를 찾는게 분명하다는 것이므로 간만에 즐기던 사색도 여기까지였다. 역시 이런 여유로움, 군인이라는 내 분수에 어긋나는 호사였나. 하지만, 뭐 어떤가? 이 7월은, 내가 그 군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달이니까.
"이현 병장님! 또 여기에서 농땡이 피우고 계십니까?"
역시 영민이는 금방 나를 찾아내 버렸다. 영민이는 이 더운 날씨에, 내가 당신을 땀 뻘뻘 흘리며 공짜로 등산하면서 찾아다녀야 하겠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긋이 입가에 떠올리며 그의 푸념어린 눈초리에 응수했다. 하긴, 나의 단순한 행적은 '영민한' 영민이에게 금방 추적당하고 만다. 나와 함께 군생활 한 지도 벌써 13개월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13년과 맞먹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다. 그게 군인이다.
"농땡이는. 잠깐 쉬는거지."
그러면서 어깨에 걸쳐 놓은 삽을 몇 번 흔들어 보였다. 뭐, 행정 보급관님도 나에게 무슨 대단한 작업 역량을 기대하면서 나 한사람에게 이곳 교통호 작업을 지시하신 것은 아니다. 전역 마지막 달 말년 병장이, 여기 저기에서 빈둥거리면서 출몰한다는 것은 오히려 휘하 장병들의 사기 앙양에 도움이 못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셨기에, 나를 이 곳에 휙 하고 던져 놓았으리라.
"여기서 그만 얼 때리시고, 지금 보급관님께서 찾으십니다."
"무슨 일인데?"
"신병 왔습니다."
"신병?"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전역 한 달 남은 말년 병장에게, 전입 신병 소식은 전혀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단지 나는 신병이 전입해 들어왔다는 사실이 왜 나에게 뉴스거리가 되어야만 하는가, 그 이유가 진짜 뉴스거리였다.
"다른 병사들은 다 작업 나갔고, 이 병장님밖에 사람 없습니다. 행정보급관님이 직접 시키신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신병 더블백 풀어주라는 거?"
그러자 영민이가 어깨를 으쓱 했다.
"짬밥 안 되면 해야지 말입니다. 보급관님보다."
"나 이제 대우좀 해 줘. 행정보급관님보다 전역 빨리 한다구."
"그렇게 전해드립니까?"
"됐다, 됐어."
결국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탁에 샤워까지 꼭 시켜야 한다는 영민이의 마지막 당부를 귓전으로 흘려들으며, 터덜 터덜 생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걷지 않아 금새 등줄기에는 땀이 배어나왔다. 국방색 속옷에는 점점이 퍼져나가듯 땀방울들이 배어날 터였다. 그렇게 속옷으로 스며드는 땀방울처럼, 어느새 나의 생각도 그 뜨거웠던 2년전 여름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도 세상은 무더움을 피하려 열중하고, 편하고 안락하기 원하던 것들이, 그 훈련소의 여름에는 모두 허깨비처럼 느껴져 버렸던 것인지. 땀과 흙먼지가 곤죽이 되어서도 대책없이 뒹굴었고, 저항할 틈도 없이 먹을 것이 주어지면 즉시 행복했다. 쉬게 해 주면 철없이 감사했다. 숱한 즐길거리,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 재밋거리. 이 모든 '꺼리' 들을 제한당한 그 해 여름은 그 치열한 만큼이나 민감하고 순수했다. 악질같은 조교에게까지 고마움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고, 생면부지였던 동기들은 계산없이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그래, 그 시기에 정말로 감사했다. 그 때는, 그렇게 해 주는 것에 너무도 감사해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러던 순간, 무엇인가가 가슴에 퍼뜩 떠오르려 하기에 나는 서둘러 한숨을 쉬었다. 폐는 공랭식(空冷式) 기관이었던지, 가슴에 서늘해졌다. 마음이 추스려졌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2
"예! 이병! 김! 광! 은!"
내무실에서는 신병의 관등성명이 우렁차게 울렸다. 일과 시간이 끝나자 여기 저기서 기웃 기웃하며 신병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모여든 녀석들은 이런 저런 질문들을 중구난방으로 던져댔고, 신병은 그 질문 하나 하나에 '잘 못들었습니다' 나 '예 그렇습니다' 따위를 번갈아가며 답하고 있었다.
"이 병장님, 그래도 꽤 똘똘해 보이긴 합니다?"
"그래도 며칠 두고 봐야지."
몇 명의 상병들이 신병을 힐끔거리고는 내 귓가에 와서 소곤거렸다. 신병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와 생활관으로 들어가보니 납작한 빵모자를 푹 눌러쓰고 침상 끝에 굳은 허리로 앉아 있는 깡마른 이등병. 그게 신병의 첫 모습이었다. 의류대를 풀어서 빨래를 해 주고, 같이 샤워를 하며 몇 마디를 주고받아 보았는데 생각하는 것도 있고, 군기가 제법 들어 있었다. 전역 한 달쯤 남겨두니, 사람의 첫인상과 처음 몇 마디로 그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거의 독심술 수준이 되었다. 하긴, 군대에서 뭘 배웠느냐고 물으면 '사람을 배웠다' 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게 가장 크면서도 유일한 소득이었다.
한편, 생활관에서는 한창 신병의 호구조사가 실시중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들의 쓸데없는 심문을 지켜보았다. 군인들이 묻는 것이야 뻔하게도, 누나가 있는지, 여동생이 있는지 따위가 주된 관심사였다. 안타깝게도 신병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남동생이 한 명 있다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그러던 와중에, 신병이 여자친구가 있다는 대답에 생활관이 술렁였다.
"우오~ 사진 있나?"
"예! 있습니다!"
"우와, 함 보자! 빨리 꺼내봐라!"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후임 녀석이 보채자, 신병이 윗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수첩을 꺼냈다. 까만색 가죽에 금색 육군훈련소 마크가 찍혀 있는, 나도 가지고 있었던 그 수첩이었다. 가장 바깥쪽의 겉장을 열더니 고이 넣어 두었던 사진을 빼내어 준다. 모두의 관심이 일제히 그 사진으로 쏟아지는 찰나, 나는 조용히 오른팔과 오른손을 뻗었다. 그리고 씩 웃어주었다.
"아, 이병장님!"
이제 막 사진을 받아든 후임이 툴툴거리면서 내게 사진을 넘겼다. 다시금 후임들은 내 옆과 뒤로 웅성거리면서 몰려들었고, 나는 여유롭게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에서는 곱게 생긴 아가씨가 밝게 미소짓고 있었다. 이 녀석, 비실비실하게 생겼으면서 재주도 좋군.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우와, 이쁘다!"
"야, 참하게 생겼다!"
나도 빙긋 웃으며 신병에게 물어보았다.
"사귄지는 얼마나 됐냐?"
"예! 2년 됐습니다!"
2년이라. 요즘 애들 답잖게 오래도 사귀었다. 이제껏 만나왔던 시간 만큼 떨어져 지내야 하겠구나. 과연 그 무게감을 너는 실감하고 있는지. 그 아가씨는 실감하고 있을까. 시간이라는 매질 속에 빽빽하게 들어찬 그 숱한 질문들을 헤아려보기나 했을까. 하나만 물어보면 되겠지. 나는, 다시 한 번 신병에게 질문했다.
"사랑하냐?"
그러자, 신병은 잠시 머뭇거리더니만 갑자기 허공으로 고개를 꺾으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사랑합니다!"
어쭈? 이 녀석 봐라. 전입 첫 날, 선임병들이 득시글거리는 생활관에서 신병의 대답은 마치, 뭐랄까. 일본인 가득한 거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애국지사의 신념, 그런 것이 느껴졌다. 언제 어디서든 옆구리를 쿡 찌른다고 하여도, 가슴 속에 단단히 심어두어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는, 배신할 수 없는 소중함. 그 책임감.
순간, 갑자기 가슴 언저리 한쪽이 움찔 했다. 책임감이라는 단어 하나에,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민감하게 침을 흘렸다. 그 신념이라는 것에, 누군가에 대한 책임에, 갑자기 내 마음까지 들썩거려 버리자 나는 황급히, 그리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한숨이 콧속을 지나 단내를 풍기며 흩뿌려졌다. 마음이 추스려졌다.
이래 저래 마음에 들면서도 영 탐탁치 않은 녀석이었다. 웅성거리는 다른 후임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집게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으로 사진을 집어 신병에게 건넸다. 신병은 그걸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래, 너 잘났다. 잘 넣어두고, 다른 애들 함부로 보여주지 마라."
예 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신병은 그 사진을 다시 수첩에 넣고, 주머니에 넣었다. 마치 여자친구를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가 되찾은 듯 안도하는 기색이 그의 눈 주위에 어른거렸다. 이 자식, 어지간하구만.
"덥다, 더워!"
그 때, 영민이가 생활관으로 벌컥 들어섰다.
"아, 죽겠습니다. 오늘 정신 하나도 없네."
"왜? 뭐 때문에 이렇게 바빠?"
또 어딜 그렇게 뛰어 다녔는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상병 6개월차인 녀석이 아직도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다니. 영민이가 내 옆에 걸터 앉자, 싫지 않은 땀냄새가 훅 하고 끼쳐왔다.
"신병 하나 또 있습니다."
"뭐? 신병? 인사과에서 오늘 신병은 얘 한명이라고 했잖아?"
누군가가 묻자, 영민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 신병 말고, 소대장님. 새로 왔습니다. 지금 곧 생활관으로 옵니다."
새로운 것은 늘 갑자기, 한꺼번에 찾아온다. 항상 그래왔다. 내 이등병 시절부터 소대장을 맡았던 중사는 '현아, 나 먼저 간다' 는 말과 함께 두 달 전에 전역했고, 그 때 나는 분대장을 달았다. 여군 소대장님이 새로 오신다는 소문은 꽤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신병이 전입한 오늘일 줄이야.
아니나 다를까, 영민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생활관 물이 끼익 하고 열렸다. 먼저 들어선 것은 중대장님이었다. 중대장님을 보자마자, 내무실 최고 선임자였던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어."
중대장님은 내 경례를 받은 후, 뒤쪽에 따라 들어온 선임 소대장을 불러들였다. 신병으로 인해 떠들썩하던 생활관은 또 하나의 신병으로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또각 하고 군화발 소리가 들리고, 수십 개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이미 알고 있었던 대로, 소대장은 여군이었다. 군대에서의 소문이란 사회에서 천리를 간다는 말보다도 좀 더 빠른 것이어서, 벌써 소대장의 대략적인 신원은 신속하게 퍼져 있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인 스물 셋, 여기가 두 번째 근무지, 이전에는 우리 사단의 예하 연대에서 복무했다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다른 녀석들은 다들 나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군인이라는 것의 천성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던지, 직속 상관으로 여군이 온다는 것에 대한 소대원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군인이고, 소대장이었기에 우리는 또 무관심하려 열심들이었다. 그 무관심과 관심 사이에 놓인 긴장의 끈은 팽팽했다. 그리고 그 외줄 위에 올라서 있는 소대장의 모습은, 정작 본인은 모를 터이지만 위태로워 보였다.
"안녕, 오늘부터 너희들의 소대장을 맡게 된 이혜진 하사라고 한다."
또박 또박 여유롭게 자기 소개를 하는 목소리에서, 많은 연습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사실, 솔직한 심정은 조금 귀찮았다. 전역이 한 달 남았잖은가. 말년 병장의 주적은 귀찮음이다. 귀찮은 일은 적과 같아서, 없는 것이 최선이었다. 새로운 소대장에 적응하고 맞추어 나가는 일은 확실히 귀찮은 일임에 분명했다. 우리를 바라보는 소대장의 눈빛은 초롱초롱했고, 소대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 또한 번들거렸다. 서로의 심중을 가늠은 할 수 있는데 확답은 할 수 없으니 막막할 따름이다. 인사 끄트머리에, 소대장은 물어왔다.
"누가 분대장이니?"
"다른 분대장은 근무 중이고, 저 뿐입니다."
내가 대답하자, 소대장이 손을 내밀어 왔다. 나는 무심히 악수를 청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선이 고운, 가느다란 손이었다. 그게 실수였다.
"그래, 잘 부탁한다. 현이? 이 현 병장! 열심히 해보자."
순간, 가슴이 소리도 없이 내려앉았다.
가슴 속에 그런 것이 있을 리도 없는데, 거대한 무저갱이 입을 벌리고 내 속에 들어있는 것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내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이 더 깊은 어딘가로 한없이 쏟아져 내려가 버려서 나는 그 끝을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벽이었는데, 그저 벽돌을 한장 한장 올려놓았을 뿐이었나보다. 가볍게 밀자 마자, 벽은 괴성을 지르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손으로. 하얗고 선이 고운 손으로, 2년의 시간동안 묶어 놓은 시간의 매듭이 속절없이 풀어져버렸다. 마음은 한숨을 쉬어도 추스려지지 않았다. 호흡은 들뜨고, 의식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3
"그래서 조기 취침중입니다."
"말년 병장이라는 녀석이 갑자기 무슨..."
머리 맡에서 당작 사관과 부분대장 영민이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어느새 저녁 점호 시간인 모양이었다. 나는 배를 웅크렸다.
"이현? 좀 어떻냐? 이현?"
당직 사관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대답할 기운도, 기분도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아파버렸다. 마음이 몸 속에 있는 것일까, 몸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일까. 마음이 옥죄어서, 속에 있는 소화기관을 죄어 들어왔고, 웅크려진 몸 속에 든 내 마음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고, 의무대에서 준 알약 몇 알만을 삼킨 채 나는 드러누웠다. 모포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채, 나는 번데기처럼 나만의 고치 속으로 들어갔다.
"잠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이따가 불침번에게 상태 지속적으로 파악하라고 할 테니,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해라."
사관이 사라지고 나서, 난 좀더 편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왜 이러지. 미친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거야. 결국 소대장이 내민 그 손을 잡지 못하고 침상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대로 아팠다. 대체 왜 그랬지. 정신 차리고, 진정하고, 숨을 쉬자. 숨을 쉬어.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손, 손이었다.
소용없었다. 가늘고 하얀, 그 손은 터져버린 둑과 같았다. 뭉클 뭉클 수많은 영상들이 홍수처럼 떠밀려들었다. 이제껏 누르고 밀어낸 만큼 그것들은 쉴새없었다. 왜, 왜 손이었을까. 이제껏 숱한 것들이 찌르듯 다가와도 한숨 한 번 쉬면 그만이었는데.
3년이라는 시간은 삶에 무던히도 많은 것들을 묻혀 놓는다. 그 사람과의 기억 또한 그렇게 세상의 여기 저기에 얼룩처럼 묻어 있다가 옷깃만 스쳐도 나를 흔들어댔다. 어찌나 그렇게 사소한 것들 틈바구니에도, 속속들이 그 사람은 끼워져 있고, 들어 있는지. 그만 나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크게 심호흡을 할 때, 내 폐 속의 폐포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내 감정과 의지와 상관도 없이 교체되며, 그럴 때마다 나는 현실을 회복했다. 호흡은 그 사람 없이도 버젓이 살아가는 생의 증거였고, 내가 주제넘은 감성에 빠져들지 못하도록 경각시켰다.
- 진짜 잘생겼다.
하얀 손이 나의 볼을 쓰다듬었다. 나는 기분 좋게 눈살을 찌푸렸다.
- 놀리지 마.
- 정말이야. 나한테 이렇게 잘생긴 남자친구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가슴이 또 옥죄어왔다. 매트리스 위에 누워, 나는 괜한 옷깃을 주먹으로 그러쥐었다. 왜 손이었을까. 왜 하필 손이 그렇게도 닮은 것이었을까.
"좀 어떠니?"
소대장의 목소리였다.
"아까 약먹고 계속 누워 있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되니까... 종종 이러니?"
"잘 모르겠습니다. 뭐, 몸이 건강한 편은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이렇게 드러누운 적은 처음입니다."
"체한 거야?"
"예, 의무대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 의식이 내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소대장의 목소리를 물고 늘어졌다. 멍텅하던 생각의 줄기들이 그 목소리 하나 하나에 곤두섰고, 마치 낚싯바늘을 잡아당기듯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잡아채서 나에게 끌어당겼다. 정신이 온전해지면서, 두리뭉실하던 몸 속의 고통들도 다시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통증은 심박과도 관련이 있는 듯 했다. 박자를 맞추며 다가오는 통증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참, 만난 첫날부터. 걱정이다."
나는 소대장이 그 손으로 내 머리를 짚거나 하지는 않을까 안절부절했다. 몸 속은 뜨거운데, 등줄기에는 소름이 돋았다. 진부하게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아, 너도 오늘 전입왔다고 했지?"
"예! 이병, 김! 광! 은!"
"그래. 적응 잘 하고, 힘든 것 있으면 소대장에게 이야기하고."
"감사합니다!"
천만 다행으로, 소대장의 관심은 새로 전입한 신병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소대장은 신병과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영민이의 경례를 받고 생활관을 나갔다. 또각거리는 그 군화소리가 아득해졌다. 그 아득함이 나를 다시 휘몰아쳤다. 의식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것도, 가장 잊고 싶은 기억부터.
내 이를 악문 시선과, 눈물이 그렁거리는 그 눈빛이 팽팽히 맞선다.
-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빛이 더 커졌다. 그러더니 이윽고 불이 번쩍 하며, 이를 악문 시선은 초점을 잃고 흩뿌려졌다.
- 대체, 너한테 난...
내가 모포 속에서 쥐어뜯고 있는 주황색 활동복은 우스운 빛깔이었다. 옷깃을 그러쥔 주먹을 서서히 풀었다. 다시 깊게 한숨을 쉬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듯 했다. 땅이 꺼져버렸으면 좋겠다. 깊이를 알 수 없이 추락하는 내 마음처럼.
점호는 끝났다. 생활관 불이 꺼졌고, 후임들은 생활관 바닥에 모기향을 피웠다. 불침번이 인원 파악을 위해 들어왔다가, 내 머리맡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대로 나갔다. 생활관 여기 저기에서 소근거리는 목소리들도 이내 고요해졌다. 적막함은 오히려 나를 일깨웠다.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잠드는 것 만큼 노력한다고 되지 않는 일이 또 있을까. 머릿속은 마치 내 일부분이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생각의 줄기들을 뻗쳐갔다. 불침번이 들어오더니, 누군가를 근무 시간이라고 깨웠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 탄띠를 차고 전투화 끈을 묶는 동안 나는 잠들려 애썼다.
명치 안쪽을 쥐어짜던 통증은 다행히도 많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순간 순간, 기억의 수면 아래에서 영상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은 여전히 추락하는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아득하게 곤두박질쳤다. 몇 시간이 넘도록 하염없이 질주하는 청룡열차에 올라탄 것과 진배없었다. 아까 근무를 나갔던 근무자가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그가 다시 전투화 끈을 풀고 탄띠를 풀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잠들려 애썼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다시 생활관 안이 고요해지자, 나는 조용히 모포를 얼굴까지 내렸다.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와서 닿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쉬었다. 마음은 추스려지지 않았다.
4
화장실에 앉아 있자 검고 묽은 변이 나왔다. 먹은 것도 없는데 악취가 코를 찔렀다. 많이 속상해서, 정말로 속이 상해버렸고, 그 속상해서 응축된 찌꺼기들이 몸에서 배출되어 나왔다. 갑자기 이유도 없이 창피해진다. 서둘러 물을 내려버렸다.
"후우......"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가, 얼굴에까지 물을 끼얹었다. 거울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 달이라고, 한 달. 아우성치던 마음은 이제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손목에 채워진 검정색 돌핀 방수시계를 내려다보았다. 7월 2일. 칠월이었다. 31일까지만 다다르면 군인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는 달이다. 9박 10일의 말년 휴가와 주말 휴일, 제헌절 따위를 빼면 7월의 남은 검은 날들은 손에 잡힐 듯 분명했다. 그런데 첫 날부터 호되게 보냈다. 역시 군대라는 녀석은 녹록치 않았다. 쉽사리, 고이 놓아 줄 요량은 아닌가보다. 간밤에 끝도 없이 뒤채이던 속병은 새벽녘에 얼핏 잠이 들자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하지만 아침밥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흰 밥에 미역국, 열무김치와 멸치 볶은 것, 계란찜을 식판에 받아만 놓고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숟가락 끝에 달린 포크로 쌀알만 두어 번 뒤적거리다가 그대로 짬통에 부어버렸다. 밥을 받아간 그대로 버리러 내어가는 내 식판을 보고, 취사병의 표정이 심드렁해졌다. 어차피 맛있게 먹으라고 만든 밥도 아닐 테고, 그도 똑같이 하기 싫은 군생활 하며 하기 싫은 밥 내어 놓은 것 먹기 싫다 하는 것인데도 실례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작 밥을 버릴 때에도, 그 취사병과 눈이 마주쳤을 때에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 그 일을 떠올리는 지금 갑자기 꼬리를 물고 생각났다. 그녀였다. 내 삶의 도처에 도사리면서 수시로 나를 찔러대던 그 기억의 편린들이 이제 대놓고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이젠 저항하는 것도 힘겨웠고 한편으로는 우스웠다. 왜? 왜 그토록 그 기억들을 떨쳐내려고 하는데? 그깟 일들, 좀 되새김질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 언제나 혼자 난리였다. 혼자 성내고, 혼자 고민하고, 결국 혼자 결정으로 끝냈다. 혼자 설레발 치는 것 좀 관둬야 한다.
- 야, 이현. 밥 남기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너, 이거 프랑스에서는 요리사에 대한 대단한 모욕이야.
- 여기가 프랑스냐? 대한민국이지.
- 됐어. 다 안 먹을 거면 다시는 밥 안 차려줘.
- 아니야, 아니야. 먹을게.
- 내놔, 치우게. 맨날 맛없다 그러고. 남기고.
- 윤하연이 만든 밥인데, 어떻게 맛 없을수가 있어?
윤하연. 세 음절의 그 단어가 마음속으로 불리워지자 마법처럼 그 사람이 되살아났다. 이름이란, 진짜 주문과도 같았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그 이름을 불러봤자 그건 '통나무', '핸드폰' 이라는 낱말보다도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이름을 부를 때, '윤하연' 이라고 하자마자,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의 알갱이들이 돌멩이를 던진 흙탕물처럼 뿌옇게 떠올랐다. 죽어있던 사람이 살아나고,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후우..."
다시 한 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나왔다.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파란색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거울을 보니, 우울한 표정의 낯선 남자가 서 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다시 쳐다보지 못하고, 생활관으로 뒤돌아섰다. 손목의 돌핀 시계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여덟 시 십팔 분이었다. 일과 집합 오십 분 까지는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잠깐 더 누워서 눈을 좀 붙여야겠다. 몸은 정직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눈은 피로를 호소했다. 걸어오는 길에 나를 보고 경례를 붙여 오는 몇몇 후임들을 무표정하게 지나쳤다. 세면백을 관물대에 던져놓고, 모포 위에 올려둔 베개를 꺼내어 침상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이현 병장님, 괜찮으십니까?"
눈이 부셔서, 왼팔로 눈을 덮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대학교 1학년 때, 호프집 아르바이트였다. 가게는 '채플린' 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그리고 흔해빠진 대학가 술집이었다. 하는 일도 뻔했다. 손님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그릇을 닦고, 손님이 나가면 뒷정리를 하고, 다시 다른 손님을 받았다. 두 달 남짓 일했을 때, 곧은 등을 가진 동갑내기 아가씨가 신참으로 들어왔다. 나와 같은 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좁은 가게에 알바가 셋이나 필요 없었지만, 주인은 서빙을 할 예쁘장한 여학생이 꼭 있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윤하연은 그런 주인 아저씨의 기대 이상이었다.
워낙 일도 성실하게 할 뿐더러, 그녀에게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조금 들뜨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마치 그녀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컴퍼스로 빙 그려 놓은 일정 영역이 있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생기가 돋고 활력을 불어넣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하연이 딛는 발걸음이 복 있는 발걸음이었는지, 가게는 금새 북적였고 매상이 오르기 시작했다.
헌데, 유독 나와 하연과는 대화가 없었다. 주인 아저씨도, 가게에서 일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는 선배 형도 그녀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고, 단골 손님들과 깔깔거리면서 그 틈에 끼여앉아 공짜 술을 얻어먹을 때도 많았건만, 나하고는 한 달이 다 되도록 제대로 이야기 한번 나누지 못했다. 손님들 테이블에서 술잔과 그릇들을 나르다가 마주칠 때에도 서로 어색하게 목례만 나누었고, 주방에서 함께 그릇을 닦을 때에도 무덤덤한 달가닥거리는 소리에 둘 다 난처해했다. 일을 마치고 하연이가 가게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돌아갈 때, 나는 가게 한쪽 귀퉁이에서 애먼 바닥만 대걸레로 훔쳐냈다.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나와서 워낙 여자에 대해 숫기 없던 내 탓도 있겠지만, 유달리 나에게만 거리감을 두는 하연이의 태도는 더 알 수 없었다.
그 날도 주방에서 접시와 포크, 수저 등을 닦고 있었다. 주말 저녁이라 가게는 무척 분주했다. 싱크대에 물을 받아 놓고 식기를 가득 담가 놓은 다음, 수세미로 거품을 내며 문질렀다. 정신없이 닦고 있던 그 때, 하연이가 또 다른 식기를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그녀도 나를 보앗고, 나도 그녀를 돌아 보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칠 때 그녀는 잠시 멈칫 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까딱 목례를 했고, 그녀도 해온 것처럼 고개를 숙여 답했다. 그녀는 내 싱크대에 그 설거지 거리를 내려 놓더니, 팔을 걷어붙이고서는 그릇을 헹구기 시작했다. 나는 수세미로 그릇을 닦아 넘기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 물에 헹구었다.
한참을 그렇게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그릇을 헹구어 내는 그녀의 손이 보였다. 나에게서 거품 묻은 그릇을 받아 쥐어,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에 대고서는 손으로 문질러가며 헹구었다. 맨손으로 해야 그릇에 기름기가 남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안쪽, 바깥쪽 돌려가면서 거품이 남아 있지 않도록 몇 번이고 문질렀다. 손가락으로 뽀드득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옆의 건조대에 종류별로 쌓아 놓았다. 나는 그 일련의 동작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얀색 접시와, 하얀 비누거품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의 손도 투명한 하얀색이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마디, 손등, 손목까지, 참 고운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릇들은 지저분함을 떨어내고 순결함을 부여하는 그녀의 다정한 손길을 거쳐 저마다 말끔하게 쌓여갔다. 성스러운 정화의 예식인 듯, 그렇게 고귀하게 느겨지는 순간이었다.
"손이 참 예쁘네요."
"예?"
그녀의 얼굴로 내 시선이 옮겨갔다. 뒤로 묶은 머리타래에서 몇 가닥이 그녀의 볼에 흩어져 있었다. 하연도 설거지를 하던 손을 멈추고서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합을 알리는 방송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온다. 눈을 누르고 있던 왼팔을 들어, 실눈을 뜨고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니 여덟시 오십분이다. 기운없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칠월의 두번 째 날이었다.
5
"서걱, 서걱, 서걱..."
사포로 쇠 긁는 소리가 수송부 건물 안을 가득 메웠다. 사포가 한번 왔다갔다 할 때마다 붉은 녹가루가 춤추며 떨어졌고, 흰 목장갑과 전투복에는 벌써 붉은 녹가루로 범벅이다. 지난 주 목요일에 시작된 위병소 바리케이트 작업은 주말을 제외하고 오늘로 닷새째이다. 부대 여기저기에서 쓸모 없는 쇠파이프, 철근 등을 모아다가 절단기로 자르고, 글라인더로 갈고, 용접기로 용접해서 여닫을 수 있는 바리케이트를 만든 것이 어제까지였다. 이제 마무리 도색 작업을 하고 위병소로 가져다 나르기만 하면 된다. 도색을 하기 전, 먼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녹을 사포로 긁어 내야 한다. 잘 긁어내지 않으면 나중에 유성 페인트를 칠했을 때 표면에 밀착되지 못한 페인트가 계란껍질처럼 바스라져 떨어져버린다. 그 때문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은 붉은 녹가루 먼지 피워올리며 큼지막한 바리케이트에 달라붙어서는 오전 내내 '빼빠질' 이었다.
"좀 쉬었다가 하자."
마스크 대신 얼굴에 둘러놓은 군용 손수건을 턱 밑으로 내리며, 내가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둘도 분주하게 놀리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담배 한 대씩 피우고 해. 신병! 너 담배 피워?"
"이병, 김! 광! 은! 예, 피웁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신병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지간히 열심으로 문질렀는지, 런닝 앞뒤가 땀으로 흥건했다.
"그래? 상필아, 얘 데리고 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어. 난 PX 잠깐 다녀올게."
"우와, 이현 병장님. 쏘시는 겁니까?"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사줄게. 담배피울 때 수송부 건물 안이나 유류고 옆에서 피우지 말고, 꼭 오른쪽에 벤치 만들어 둔 데 거기서 피우고."
"예, 예."
잔소리 몇 마디를 덧붙인 뒤, 나는 느릿느릿 PX로 향했다. 위병소 옆에 자리잡은 PX는 수송부에서부터 걸어서 삼 분 거리에 있었다. 후임들 쉬는 시간을 판단해주고, 과자 부스러기라도 제 돈 들여 사 먹이는 것. 비록 작업을 설렁설렁 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작업장 최고 선임자의 암묵적 책임이었다. 후임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먹을 것을 사오라 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냥 혼자 휘적휘적 다녀오는 편을 택했다. 하늘엔 두꺼운 구름들이 햇빛을 듬성듬성 뿌리고 있었다. 내일 비가 온다던가, 하늘을 올려다 보던 중에, 구름 틈 사이로 갑자기 쏟아지는 햇살이 두 눈을 파고들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속담을 역행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
*****
손은 언어였다. 실제로 손으로 하는 언어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이들도 누구나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손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언어였다. 하연이와 처음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한 날, 나는 진작부터 입기로 마음 먹었던 하얀색 남방과 검은색 바지를 입고, 몇 시간동안 거울 앞에서 옷 매무새를 고쳤다. 아껴둔 옷이었지만, 탐탁치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 머릿속에서 나와 하연은 수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 머릿속의 하연이가 내 농담에 풋 하고 미소짓자, 나도 헤벌쭉 미소지었다. 그런 나를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힐끔거렸다.
내 눈 앞에 샛노란 개나리 꽃밭이 펼쳐졌다. 노란색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목에도 노란색 스카프를 두른 하연은 그대로 조그마한 개나리 꽃이었고, 정신없이 활짝 핀 개나리 꽃밭이었다. 영화관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갔지만, 나에게 존재하는 사람은 눈 앞의 한 명 뿐이었다. 꽃무늬가 들어간 하얀색 주름 치마를 사각거리며, 나에게 걸어오는 매끈한 다리로 내 시선이 황망히 떨어지는 순간 나는 불경스러운 짓이라도 한 양 움찔 했다. 많이 기다렸어? 밝게 웃는 그녀의 인사에, 아니, 나는 얼버무리며 짧게 답했다. 내 대답이 퉁명스럽게 느껴졌는지, 미안, 화났니? 그녀가 묻는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다른 변명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솔직할 수 밖에는. 네가 너무 예뻐서. 그래서 그래. 그렇게 답하자, 어머 얘, 하며 하연이 나를 툭 건드린다.
영화관 안에 들어가,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내가 왼편에 앉았고, 그녀가 오른편에 앉았다. 노란색 개나리 꽃이 내 옆에서 숨쉬었다. 달콤한 향기에 입술이 말랐다. 무의식적으로 팔걸이에 팔을 올려 놓으려는데, 순간 아차 했다. 그녀의 팔이 이미 올려져 있었다. 그녀의 손등 위에, 내 손이 아주 잠깐 닿았다 떨어졌다. 뜨거운 것이라도 만진 듯 황급히 팔을 떼며 아, 미안. 소근거리며 사과하자, 그녀가 말없이 웃었다. 다시 영화에 집중하려는데, 그녀의 손등의 감촉이 아련했다. 그 때, 극장 안의 어두움이 내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었을까. 아니면 그 꽃 향기에 취한 것이었을까. 다시 하연의 손등 위에, 내 손을 가만히 올려놓았다. 그녀의 손이 의아했는지 멈칫 했다. 심장이 하릴없이 쿵쾅거렸다. 그 진동이 손끝을 타고 전해질 정도로 심박은 내 온몸을 들썩였다. 그녀의 손은 그냥 그대로, 잠시동안 나의 언어를 이해했다. 바로 그 대,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움직이더니, 내 손을 살며시 맞잡았던 것이다. 여린 그 손이 나의 손을 부드럽지만 힘있게 감싸안자, 등줄기에 전율이 지나갔다. 그 손으로, 우리는 천 마디 말보다 많은 것을 나누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는 서로의 손을 쥐고,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극장 안에서 나누는 그 사랑의 밀어는 다분히 선정적이었다. 너무 멀어서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가느다랗고 하얀 손이, 내 손에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 어떤 은밀한 밀회보다 더 가슴 떨리고 비밀스러운 나눔이었다.
손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잇닿도록 연결해 준, 영혼의 다리였다. 그녀가 손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다시 그 손으로 서로에게 먹여 주며 즐거워했다. 보드라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은 것은 내 손이었고, 미처 면도를 못한 날 내 턱수염을 쓰다듬은 것은 그녀의 손이었다. 나의 두 손으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그녀의 손에 커플링을 끼워 주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들여다보며 해맑게 미소지었다. 한 밤중, 학교 노천극장에서 그녀와 첫 키스를 할 때에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작별할 때 끝내 떨어지지 못하는 손끝에 안타까워했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마주잡은 서로의 손등에 입술을 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의 손등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대며 정중한 기사도를 전했고, 그녀의 입술이 내 손등에 닿을 때 나는 비밀스러운 아찔함을 선사받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은 분명한 언어였다.
*****
PX에 들어서자마자, 예기치 못한 상황에 걸음을 멈칫 했다. 오전 시간의 한산한 PX에는 손님이 한 사람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소대장이었다. 소대장은 노란색 장바구니를 왼팔에 끼고 이런 저런 물건들을 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이 물건 저 물건을 뒤적거리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흘러갔다. 나는 PX 입구에서 머뭇거렸다. 왜 그렇게 갈등하는지도 모른 채, 우물쭈물거리고 있던 내 판단을 도운 것 또한 소대장이었다. 소대장은 나를 발견하더니 살짝 미소까지 띄우며 알은체를 했다.
"어, 이현!"
별 수 없이 나는 경례를 하고 PX 안으로 들어섰다. 소대장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안색부터 살폈다.
"어때, 몸은 좀 괜찮니?"
그 날 이후 만나기만 하면 이 질문이다.
"이제 진짜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말년 병장이 몸관리 잘 해야지. PX에는 왜 왔어?"
"작업하는데, 후임들 아이스크림이나 사 주려고 왔습니다."
"몇 개나 되는데? 소대장이 사 줄게."
난감했다. 몇 번이고 사양을 했지만, 결국에는 제법 근엄한 표정까지 지어보이는 소대장 앞에서 더 실랑이할 수가 없었다.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가 아무거나 세 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PX 계산대로 가는데 아무래도 소대장의 표정이 이상했다.
"어어? 어라..."
소대장은 군복 주머니 여기 저기를 뒤져보고 있었다. 상의에 두 개, 바지에 여섯 개. 여덟 개의 주머니를 이리 저리 더듬어 보아도 찾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소대장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가로로 흔들고, 지갑 속의 카드를 꺼냈다.
"이거 다 얼마에요?"
"아이스크림까지요? 팔천 칠백 오십원입니다."
"카드로 할게요. 봉지도 하나 주세요."
내가 PX병에게 카드를 내밀자 그때까지도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소대장이 어쩔 줄 몰라했다. 지갑을 책상에 놓아두고 온 것 같다고, 올라가서 꼭 다시 준다고 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은 현금을 안 가지고 와서 다음에 꼭 주겠다고 했다가, 계통없는 말들을 덧붙였다. 미안한 마음에 횡설수설하는 소대장에게 나는 비닐봉지에 물건을 넣으며 대답했다.
"다음에 사 주십시오. 그때 사양 않고 비싼 것 먹겠습니다."
"아유... 진짜..."
소대장도 더 이상은 말이 없었다. PX 문을 나서자 소대장도 뒤따라 나왔다.
"그거 이리 줘. 내가 들고 갈게."
"수송부까지만 들어 드리겠습니다. 저도 작업 가야 됩니다."
함께 걸었다. 소대장의 발걸음은 더뎠다. 별 수 없이 그 발걸음에 맞추어야 했다.
"무슨 작업 하는데?"
"위병소 바리케이트 다시 만드는데,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도색만 하면 됩니다."
"더운데 고생이다. 하긴 다른 애들도 다 고생 많겠지. 그래도 현이는 이제 곧 집에 가잖아?"
전역 이야기가 나왔다. 소대장의 다음 질문은 뻔했다. 전역하면 뭐 할거냐. 앞으로 계획은 뭐냐. 아니면 군생활 끝나는 기분이 어떤가. 그런 것들을 물어올 터였다. 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서, 이제는 몇 개의 질문에 대해 대답할 거기를 미리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전역하면 한 학기 쉬지 않고, 바로 다니던 학교에 복학할 것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군생활 하려고 하는데 끝날 때가 되니 아쉽다, 밖에 나가면 군대에서 몸에 익힌 규칙적인 생활 잃지 않아야 겠다 등등. 미리 모법 답안들을 준비해 놓으면서 발걸음을 서너 번 옮기고 나자, 예상대로 소대장이 물어왔다.
"현아, 너는..."
"예."
그런데, 소대장의 질문은 전혀 뜻밖이었다.
"현아, 너는 군생활하면서 제일 슬펐던 때가 언제야?"
나는, 그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그러자 소대장도 따라 멈추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은 준비하지 못한 답을 요구했고, 준비하지 못한 답은 진실을 요구했다.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나는 소대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칠월에, 그 첫 날부터 왜 갑자기 나타나서, 내 존재를 통째로 이렇게 흔들어 놓는 이유가 대체 뭔가? 소대장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소대장도 뭔가 이상하다 싶은 기색을 얼굴에 띄웠다.
가장 슬펐던 순간은, 하나뿐이었다. 그 때, 몸 속에 있는 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깊은 어느 곳에서, 마치 우물에서 물이 스며나오듯 몸 안의 물은 서서히 차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눈 언저리까지 다다랐다. 가득 찬 물은 몸 안에서 찰랑거리며 넘쳐 흘렀다.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6
두돈 반. 2.5톤 차량 뒤에 실려 있는 우리들은 병력이라기보다는 화물에 가까웠다. 군복 속에 입은 내복은 헐거웠고, 그 밖을 깔깔이와 야전상의, 스키파카로 덮어도 추위는 맹렬히 엄습했다. 무엇이든지 이중, 삼중 이상이었다. 손에는 장갑 위에 방한 장갑을 덧씌웠고, 얼굴에는 목토시, 귀도리, 안면 마스크로 친친 감아놓고 방한 두건을 덮어썼다. 최대한 몸을 웅크려 보았지만, 차가운 공기는 영리하게 빈틈만을 노리고 파고들어왔다. 코와 입 언저리에는 물방울이 맺혔고, 허벅지와 무릎은 대책없이 얼어붙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은 피할 길도, 막을 수도 없었다. 발은, 진짜 말로 표현할 만한 게 못 된다. 농담 아니고, 발가락을 잘라 내어 버리고 싶었다. 발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따뜻하게 할 방도가 없었다. 단단하고 좁은 전투화 속에서 애처롭게 발가락을 옴지락거려 보았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여름의 더위는 짜증날 뿐이지만, 겨울의 혹한은 공포감마저 불러 일으킨다. 그 와중에서도, 최악은 K2 였다. 그 한기를 내뿜는 검은색 쇳덩어리를, 신주단지처럼 끌어 안고 있어야 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내 몸의 일부분처럼 여겨야 할 터인데, 지독히도 내 몸과는 동화되지 못했다. 항상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끝없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 차디찬 바람의 터널을 지나온 끝에 혹한기 훈련장에 도착했다. 그 때 나는 아직 이등병이었다. 무엇을 핑계댈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묵직한 방탄헬멧과 방독면, 그리고 빌어먹을 K2를 짊어진 채 그저 뛰엇다. 눈에 보이는 대로 옮겨다 나르고, 나다 싶은 일에 무조건 끼어들었다.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가자, 고참들이 칭찬을 했다. 하지만 칭찬을 받으려던 게 아니라, 그렇게 뛰어다녀야 얼어붙으려는 발가락이 어느 정도 열이 올라 버틸 만 했다.
혹한기 훈련은 별 게 없다. 그 별 게 없는게 정말 힘들었다. 그저 추위를 버티는 것이 혹한기 훈련의 핵심이었고, 밤이면 그 사실은 분명해졌다. 손전등 불빛 속에서 입김은 허옇게 공중에서 얼어붙었고, 불출되어 나온 건빵을 씹으며 수통에 든 물을 마셨다. 그런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통 주둥이는 이미 두텁게 얼어 있었다. 수통 안쪽의 물은 찰랑거리는데 입구가 얼어버려서 물을 못 마시니 난감했다. 건빵은 더욱 뻑뻑하게 느껴졌다. 침낭 속에 들어가, 서걱거리는 핫팩을 세 개 터뜨렸다. 하나는 가슴에, 하나는 발 있는 곳에, 하나는 손에 쥐었다. 텐트 안과 밖의 온도 차이는 없었다. 그저 바람이 불지 않는 게 다였다. 고참들의 침낭들은 겉보기에도 두터웠지만, 내 침낭은 지퍼도 온전치 못했다. 영하 두 자리수로 내려가는 기온 속에서 잠들면, 과연 내일 아침에 무사히 일어날 수 있을까. 찬 공기가 안면 마스크를 두른 얼굴에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셋째 날 저녁 무렵, 하연이가 찾아왔다.
아무런 말도 없었고, 기별도 없었다. 내가 그랬다는 것이다. 내 부대 주소와, 전화번호는 아무도 몰랐다. 형에게도 그저 내가 속한 사단만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나는 사단 예하, 연대 예하, 대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형이 가르쳐준 것일까. 하연이는 내가 속한 사단과, 내 이름 하나만 들고 나를 찾았다. 나중에야 헤아린 일이지만, 그녀는 사단 본부를 찾아가고, 다시 연대 본부를 찾아가고, 그리고 다시 대대까지 찾아가서, 훈련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어이 이 곳까지 온 것이었다. 그건 '그럴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다. 저녁 배식을 하던 도중에 중대장이 나를 불렀을 때, 그리고 나를 부른 이유를 설명할 때 나는 중대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하연은 이 곳 까지 나를 찾아왔다.
오 개월 만이었다.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떠난 지 오 개월이었다. 저 멀리, 하연은 훈련장 위병소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있을 수 없는 현실은 분명해졌다. 오 개월 이었는데도, 변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녀 또한 멀리서도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 이를 악문 시선과, 그눈물이 그렁거리는 그 눈빛이 팽팽히 맞선다. 침묵의 시간은 아득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첫 마디가 그랬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 마지막 한 마디가 그거였다. 그녀의,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빛이 더 커졌다. 그러더니 이윽고 불이 번쩍 하며, 내 시선은 초점을 잃고 흩뿌려졌다.
"대체, 너한테 난..."
내 시선이 머무른 곳은 하얀 손이었다. 그 가느다랗고 고운 하얀 손에, 나의 시선은 그대로 고정되었다. 내 영혼을 통째로 흔들던 그 손이, 이제는 내 영혼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뺨이 얼얼했다. 하연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섰다. 감정 없는 겨울 바람 속에, 그녀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졌다. 홀연히 마법에 걸렸다 풀려난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냐 하고 다가오는 중대장과, 누구냐고 묻는 고참들의 말소리들이 그저 귀 언저리에 맴돌다가 사라졌다.
나는 텐트로 돌아왔다. 고참들이 타 놓은 밥이 있었다. 나는 차갑게 식은 밥과 국을 먹었다. 다 먹고 난 다음, 식기의 비닐을 벗겨서 버리고, 포크 달린 숟가락을 수통의 물로 씻어 비닐로 싸 탄입대 안에 넣었다. 날은 금새 어두워졌다. 저녁 이후에는 특별한 일과가 없었고, 텐트 정리를 하라는 중대장의 지시에 나와 내 맞선임이 텐트 안에 널브러져 있던 군장과 침낭, 의류대 등을 정리했다. 고참들은 텐트에서 뒹굴거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홉 시가 되자, 중대장이 텐트 밖으로 집합을 시켰다. 간단한 인원 파악만을 한 후, 일찍 재워 주겠다는 것. 오늘 밤만 지나면 내일 부대로 돌아간다는 말로 병사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서둘러 철수해야 하니 행동을 빨리 할 것, 주위를 말끔하게 전장 정리를 해야 한다는 말들을 했다. 다시 텐트로 들어와, 침낭을 펴고 누웠다. 남아 있던 핫팩 네 개를 모두 터뜨렸다. 하나는 가슴에, 하나는 발에, 하나는 등에 넣었고, 하나는 손에 쥐었다. 텐트 안의 등을 끄자 주위는 몹시 어두워졌다.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7
"여기 와서 앉아."
책상 위에는 커피 두 잔이 올려져 있었다. 검은 커피의 수면에 하얀색 프림의 소용돌이가 빙글거리며 맴돌았다. 그 소용돌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소대장이 재차 재촉하자, 나는 가만히 소리가 나지 않게 의자를 꺼내어서, 그 위에 천천히 앉았다. 소대장이 커피를 가리키며 권했다.
"마시렴."
"커피 안 마십니다."
소대장은 낮게 한숨을 쉬면서 커피를 가져가더니 한 모금 마셨다.
"현아."
"예."
나는 소대장의 질문에 너무 빠르다 싶을 정도로 즉시 대답했다. 무성의한 태도를 눈치챘을까. 소대장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간 침묵이 흐르자, 책상 위에 있던 탁상시계의 초침소리가 갑자기 볼륨이 높아졌다. 탁상 시계는 중대장님의 것이었다. 조용한 중대장실에서, 나는 소대장과 책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았다.
"현이, 요즘 무슨 힘든 일 있니?"
순간,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나와버렸다. 실수다. 이건 소대장님께 대한 실례지. 하지만 이미 새어나온 웃음을 어쩔 수는 없었다.
"왜 웃니?"
"소대장님, 지금 저 면담하시는 겁니까?"
"아니... 면담이라기 보다는 그냥 요즘 네가 약간 이상해보여서. 무슨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 그렇지."
면담이라니. 이등병으로 전입해 온 날 받아보고 처음이었다. 만난 지 열흘 남짓 된 사람으로부터 '요즘 이상해보인다' 라는 말을 듣는 것도 희한한 일이었고, 지금 소대장의 팔꿈치 아래에 놓여진 봉투 안에 들어 있을 나의 노란색 생활 지도 기록부도 나를 어이없게 했다.
"소대장님, 저 힘든 일 없습니다."
"현이, 네가 형하고 둘이서만 사는 줄 소대장이 오늘에서야 알았네. 많이 힘들었을 거 알아. 그래서..."
"소대장님."
나는 끼익 하고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났다. 다분히 그 쇳소리는 거칠었다.
"소대장님, 솔직히 말씀 드립니까? 이거 진짜 웃긴 일입니다. 저 아무 일도 없고,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달 말이면 전역합니다. 제 집 이야기가 지금 상황에서 왜 나옵니까? 괜히 저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이등병들이나 다른 고민 많은 애들부터 만나 보십시오."
"현아."
"신경 써주시는 것 감사한데, 저 그냥 좀 내버려 두시면 안됩니까? 가만히 계셔도 저 조용히 알아서 별 탈 없이 전역 합니다."
"이현, 자리에 앉아. 소대장이 한번 이야기 했어."
소대장이 눈을 치켜떴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꾸벅 목례를 하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대장실을 나왔다. 내 등뒤로 한두 번 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대로 가던 길을 가버렸다.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소대장도 무척 기분 나쁘겠지. 무언가 처벌을 한다고 해도 내가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군인이니까.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
육 개월 정도였다. 여섯 달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연이는 최대한 좋게 이야기하려 애썼지만, 그 단어와 표정, 어투 속에 담겨진 불만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나를 찔러 들어왔다.
문제의 발단은 하품이었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길을 걷는데, 내가 하품을 한 번 했다. 그 날따라 하연이는 그것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내가 하품을 하는 것이,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따분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치즈 크림 스파게티를 앞에 두고서도 시무룩한 모습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내가 묻자, 하연이는 그런 자신의 섭섭함을 조근조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논리적이고 분명했다. 그 날은 그게 오히려 거슬렸다.
평소같으면 그랬냐고, 미안하다고 하연이의 기분을 달래 주었을 나엿지만, 그 날은 나도 피곤이 쌓인 나머지 신경이 예민했다. 그 무렵의 나는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하고 있었다. 하나는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그대로 주중에 계속했다. 하연이는 석 달 정도 일하다 호프집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돈이 필요해서 하는 아르바이트였지만, 하연이는 경험이 필요해서 했던 아르바이트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약사이신 하연이는 돈의 부족함을 모르며 자라온 아이였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고 형과 단 둘이서 오랫동안 살아온 나로서는, 돈에 대한 하연이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그건 하연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또 하나의 아르바이트로, 주말에는 청소년 사회복지법인의 '직장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돈을 받았다. 나머지 하나는 알음알음으로 의뢰받은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일이었다. 그 전날, 마감에 쫓겨 밤 늦게까지 홈페이지와 씨름하다가 늦게 잠들었다. 수업은 수업대로, 일은 일대로 하면서 매일같이 하연이를 만나다보니 몸에도, 정신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속이 상했다. 그날 밤, 하연이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면서, 그녀와 손을 잡고 말없이 걸었다. 그러다 퍼뜩 그녀와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잡고 걷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인정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냥 내 손을 서로 맞잡은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감정의 변화도 그 손으로부터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옆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무표정에서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예민하게 그것을 공감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우울해있는 그녀의 표정으로부터, 처음으로 내가 그녀의 우울함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존재가 아닌, 그녀의 즐거움을 우울함으로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현실을 자각했다. 그건 충격이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전혀 평소같지는 않았다.
집에 들어오니 형이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형은 내가 집에 들어서자 라면을 입에 가득 문 채 손을 흔들었다. 형이 먹고 있는 라면과, 아까 하연이가 절반 이상 남긴 치즈 크림 스파게티가 눈 앞에서 겹쳐졌다. 짜증이 치밀었다. 짜증의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짜증스러웠다. 나는 형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잘 놀다 왔냐?"
형이 방문을 빼꼼히 열며 물어왔다. 짧은 스포츠형으로 자른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형의 손에는 접시에 담긴 방울토마토가 담겨 들려 있었다.
"아까 시장에서 이거 좀 샀어. 먹어봐."
"됐어."
옷을 갈아입으며 내뱉듯이 대답했다. 나는 애써 기름때묻은 형의 하얀 런닝을 외면했다. 형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자동차 정비하는 일을 시작했다. 형은 나보다 더 공부를 좋아하는 학구파였다. 생긴 것만 봐도 곱상했다. 그런데도 자동차 정비를 아주 잘해서 칭찬받았다. 지금은 이름있는 자동차 회사 A/S 센터에서 자동차 정비하는 일을 했다. 지금 형의 손에 들려 있는 저 방울토마토가, 저 사람이 내 대학 등록금과 이 집 집세를 내가며 자기는 새 런닝 한장 사 입지도 않으면서, 저녁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고 동생을 먹이기 위해 사온 방울토마토라는 생각에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그 울컥함이 목에까지 차올랐다.
"안 먹냐? 그럼 나 혼자 먹는다."
형은 접시를 들고 나가는 척 하다가, 다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능글거리면서, 형은 방바닥에 접시를 놓고 바닥에 털썩 앉았다. 방울토마토는 알이 굵고 단단해보였다. 나도 형 앞에 앉아서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붉은 방울토마토가 잇새에서 으깨지면서 찰진 과즙이 흘러나왔다. 맛있었다. 맛있어서 가슴이 저려왔다. 이제껏 눈에 들어오지 않던 집안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망막 앞에 드리워졌던 무엇인가가 벗겨진 느낌이었다.
"맛있지? 냉장고에 더 있으니까 꺼내서 씻어가지고 먹어."
나는 말없이 먹었다. 형과 이야기를 한 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저다 그렇게 되었냐고 돌아보면 이유는 하나였다. 형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형은 한번도 내가 여자친구 사귀는 것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훈이 형."
"응?"
젠장,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방울토마토를 넘길 수가 없었다.
"미안해."
8
테이블 위에는 커피 두 잔이 올려져 있었다. 검은 커피의 수면에 하얀색 프림의 소용돌이가 빙글거리면서 맴돌았다. 그 소용돌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어머님께서 조용히 권하셨다.
"마시렴."
"예."
나는 평소에 잘 마시지 않는 커피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이제 갓 나온 커피는 입을 가까이 하자 마자 뜨거운 기운이 훅 하고 끼쳤다. 너무 뜨거어서 마실 수가 없었다. 한 모금을 마시는 척만 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카페에는 'Fly to the moon' 이 소근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 틈새로 은은히 흐르고 있었다. 어머님은 'in other words' 부분에서 입을 열기 시작하셨다.
"이현 군, 나는 항상 우리 하연이 편이야. 우리 하연이가 좋으면 나도 좋은 거고, 그래서 나도 이현 군을 참 좋아해."
"예, 감사합니다."
사실이었다. 어머님께서는 항상 나를 잘 대해 주셨다. 음식 하나도 푸짐하고 정성스레 준비해 주셨고, 하연이와 나를 함께 좋은 곳에 데리고 다니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아이라고 해서 단 한번도 그것에 대해 표를 내거나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하지 않으셨다. 딸의 남자 친구에게 말이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군대 다녀오지 않았지? 언제쯤 다녀올 생각이니?"
가슴이 철렁 했다.
"이제, 곧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어서 다녀 와야지. 군대 다녀와서의 계획은? 물어봐도 될까?"
오늘 어머님께서는 무언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오신 모양이었다. 이렇게 어머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무언가를 많이 물어오신 것도 처음이었다.
"일단 학교를 계속 다녀서 졸업을 하고, 지금 생각으로는 바로 취업을 할 계획입니다."
"지금 이현 군이 전공하고 있는 컴퓨터 관련 분야로?"
"예.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하면서도 내 답들은 껍데기만 있지 실체가 없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어머님의 질문에 답하는 순간보다 침묵이 더 부담스러웠고 불편했다.
"이현 군이 군에 있는 동안에 하연이는 졸업을 하게 될 거야. 그리고 아직 학교에 다닐 때 직장 생활을 하게 될 거고. 나이가 같으면, 여자는 원래 그렇게 한 걸음 앞서 나가게 마련이야."
"...예."
"나는 이현 군이 우리 하연이 그냥 가볍게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도 이현 군을 그저 하연이 친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고. 물론 세상 일은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지만, 앞으로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할 것도 생각하고 있을 테고,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도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예."
'예' 라는 짧은 대답에 나는 머물렀다. 더 이상 오도 가도 못했다.
"하연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보이는 게 달라. 주위에는 다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정된 사람들일 텐데, 아직도 이현 군은 학생일 테고. 군대 복무하는 시간 2년, 학교를 졸업하는 시간 2년, 그리고 바로 직장 잡아서 안정되기까지 몇 년 동안, 우리 하연이는 이현 군을 잘 기다려야 해. 지금 우리 하연이랑 만난 지 얼마나 되었지?"
"일년... 조금 넘었습니다."
"그래,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 그런데 내가 방금도 말했지만, 앞으로 두 사람이 거쳐 내야 할 시간은 그것보다 훨씬 많아. 그 이후에는 평생이라는 시간을 두고 함께 해야 하고. 그게 인생이고, 그게 사랑이라는 거야."
어머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나는 양파껍질 벗기듯 그 껍질이 한 겹 한 겹 벗겨졌다. 그리고 그 양파처럼, 다 벗기고 나면 내 안에 남는 것은 없었다. 그게 나였다. 어머님도 그것을 모르시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나를 신뢰하고 계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사랑하는 당신의 딸을 신뢰하고 계셨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현 군이 우리 하연이에게 평소에 정말 잘 해 주는 것. 나도 알고 있어. 하연이가 집에 와서 자랑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그래서 무척 고맙고, 나도 이현 군을 우리 가족처럼 사랑하고 있어. 내가 우리 이현 군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이제 남자로서 좀 더 책임감 있게 우리 하연이를 잘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야."
책임감. 내가 이제껏 생각하던 책임감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다른 무게의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에 얹혔다.
"하연이한테 이현 군이 뚜렷하게 서 있지 않으면, 하연이는 몹시 힘들어 할 거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사람 마음이란 게 항상 한결같기를 자신하는 것도 교만이고. 난 하연이 엄마로서 그게 걱정돼. 그건 이해해 줄 수 있지?"
"예."
"그래. 이현 군도, 우리 하연이도 이제 성인인데 자기들의 인생은 당사자들이 결정 하겠지. 더 이상 내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수도 없는 거고, 그저 약간의 조언 정도를 해 주고 싶었어. 혹시라도 내가 말한 것들 중에서 마음 상한 말 있었으면 미안하고."
"아닙니다. 어머님, 그런거 없었습니다."
얼굴이 뜨거웠다. 나는 안절부절 못 했다. 사랑은 나와 하연이가 전부 써내려가는 줄로만 알았던 스스로가 얼마나 어리석었고 생각이 좁았는지, 민망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 때, 어머님께서 나를 더 난감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핸드백에서 흰색 봉투를 하나 꺼내시더니, 나에게 밀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 그리고 하연이보고 나오라고 했어. 조금 있으면 이 쪽으로 올 거야. 둘이 만나서 재미있게 놀고, 그리고 이건 오늘 하연이 만나면 맛있는 밥 한끼 먹으라고 주는 건데,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아니, 아닙니다, 어머님."
"어른이 주는 건데 받아. 이현 군이 이런 거로 자존심 상할 만큼 속 좁지 않은거 내가 아니까 오히려 주는거야. 그동안 우리 하연이 뭐 이것 저것 얼마나 많이 사줬어? 오늘은 그거로 맛있는 것도 먹고, 하연이랑 쇼핑도 다니면서 걔 옷도 좀 사 주고 이현 군도 필요한 것 사. 내가 선물로 따로 못 주고 이렇게 주는 거니까 이해하고."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어머님."
"안 받으면 서운해할거야. 우리 딸 더 잘해주라고 주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둬. 알았지?"
나는 봉투와 어머님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어머님은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드시더니 웃으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커피 다 식었다. 마시렴, 아깝잖아."
"예."
어머님의 말씀에, 나도 잔을 천천히 들어 올려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가, 그 날따라 혀 끝에서 더욱 쓰디썼다. 마실만한 음료가 못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커피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날 어머님께서 주신 봉투 안에는, 십 만원짜리 수표가 석 장이나 들어 있었다. 그 날 하연이를 만나, 어머님을 어떻게 보내 드리고, 하연이와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날 분명히 결정했다.
하연이와 헤어지겠다고.
9
여름은 자신의 이름을 가진 이 계절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고 싶은 모양이다. 7월 중순은 여름의 소유였다. 특히나, 군 부대는 어디를 가든 '여름스러움' 일색이었다. 여름스럽게 무더웠고, 습했고, 끈적거렸으며, 물과 그늘과 바람이 필요했다. 더위와의 싸움은 분주했다. 군인들은 끊임없이 찬물에 샤워하고, 찬물에 세수했으며, 땀에 절은 속옷을 세탁하고, 말렸다. 부지런히 달아오른 땅에 물을 뿌려댔고, 초병 근무자들은 냉동실에 얼린 물통과 물수건을 들고 나갔다. 밤이면 거대한 선풍기가 복도의 끝에 놓여져서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그래도 후덥지근한 생활관 안쪽까지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군인들은 팬티에 런닝 차림으로 포단 위에서 뒤척였고, 귓전에서 앵앵거리는 모기 때문에 철썩거리며 자신의 뺨을 때렸다.
삽질은 그 여름스러움 안에서 가장 여름스러운 작업이었다. 삽이라는 도구를 빼놓고 어찌 군생활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게 땡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삽 한자루를 들고 열심히 흙을 퍼내고 있는 소대장의 모습은, 말장난 같지만 '여름다웠다'. 그런 단어를 떠올리고 나서, 그게 '아름다웠다' 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내 생각에 아연했다. 아니다, 그냥 여름다울 뿐이다. 아름답다, 여름답다.
"야, 이현! 왔으면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소대장이 허리를 펴다 나를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소대장 옆에서 웅크려 앉아 사낭을 붙들고 있던 후임 두 명도 한숨을 푹 쉬며 일어났다. 벌써 녀석들의 런닝은 앞뒤가 땀으로 흥건했다. 주위에 적당한 그늘도 없어, 그저 햇살을 몸으로 받아내며 작업하는 중이었다.
"아우, 소대장님. 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 됩니까?"
"지금 삼십분 째 한 번도 안 쉬었습니다."
그러자 소대장이 삽을 땅에 꽂고, 한쪽 손을 허리에 걸치며 어이없다는 듯이 후임들을 나무랐다.
"이것들이 기껏 사낭 몇 개 옮겼다고 남자녀석들이 징징대? 소대장은 계속 삽질했잖아!"
"아, 저희가 힘든 게 아니라, 소대장님 힘드시니까 잠깐 쉬자는 거 아닙니까."
"저희들이 PX 가서 음료수라도 좀 사오겠습니다. 소대장님 잠깐 쉬십시오."
후임들의 능청에 소대장도 손을 휘휘 내저었다. 둘은 해냈다는 표정으로 신나게 내리막을 뛰어내려갔다. 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소대장이 다시 나를 부르더니 삽을 내밀었다.
"이현! 넌 방금 왔으니까 소대장 쉬는 동안 여기 삽질 좀 더 해. 이쪽은 평탄화 하면서 그 흙으로 사낭 만드는 거니까 너무 파버리지 말고."
"예."
내가 순순히 삽을 받아들려 하자, 소대장이 삽을 휙 하고 다시 뒤로 뺐다.
"나, 참. 소대장이 의리가 있지 나는 쉬고 너 혼자 삽질 시킬까? 저기 그늘 가서 좀 쉬었다 하자."
그리고 소대장은 소나무 그늘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언젠가, 내가 앉아서 쉬던 그 그늘이었다. 나도 조용히 따라가서는 그 곁에 앉았다.
"후아... 덥다."
소대장은 손에 끼고 있는 목장갑을 벗어들더니 이마에 송골 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입고 있던 전투복 가슴께를 펄럭거려서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더워도 소대장은 전투복을 벗고 작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통 군인들이야 런닝까지 훌훌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작업해도 그만이지만, 여군이 그럴 수가 있는가. 이 더위에 전투복을 입고 작업하는 것이 얼마나 덥고 힘들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소대장이 안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때마침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소대장은 잠시 눈을 감고, 얼굴에 스쳐가는 그 바람을 감상하더니 한숨 쉬듯 한 마디 던졌다.
"힘들다."
"수고하셨습니다. 날도 더운데 작업하시느라."
그러자 소대장이 살짝 미소지으며 나를 넘겨다보았다.
"아니, 군생활이."
나는 잠시 그 답의 의미를 찾지 못해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자 소대장이 땅에 있던 돌을 하나 집어 올리더니,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여군이란 거,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본 일 있어?"
"......"
난 분명히 당황했다. 몹시도 당황해서 그저 조막돌을 만지작거리는 소대장의 손을 내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군대는 어쩔 수 없는 남자들의 사회야. 그 안에 있는 여자 군인이라는 것. 남자다움을 흉내내야 하고 남자같은 성향을 요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의 능력을 요구하기도 하지. 일부러라도 더 냉정하고, 딱딱하고, 무미건조해야 한다면서도, 부드럽고, 온순하고, 섬세하기를 원하기도 해. 참 모순되는 곳이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소대장은 돌을 땅에 떨어뜨렸다.
"게다가 사람들이란. 여자가 왜 군대에 갔을까,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나? 솔직히 현이 너도 그런 생각 하지 않니? 다들 말은 안 하지만 그렇게들 생각하잖아. 그래, 사실 나도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아. 하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야. 할 게 없어서 군대에 왔다거나, 집을 위해 내 인생을 희생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야. 난 이곳 군대에 꿈이 있어. 목표가 있고, 비전이 있어. 모두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나에게는 나라와 민족에 대한 분명한 신념이 있어서 이 길을 선택한거야."
나는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였다. 마음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지만, 물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소대장이 내 마음속의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어제, 내가 현이에게 잘못한 것 같아서. 나는 내 마음을 열지도 않았는데 현이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려고 했잖아. 그게 큰 실수였다고 여겨지더라. 그래서, 그 실수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가장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 준 거야."
"소대장님..."
"그렇다고 억지로 현이 너 이야기 하라는 건 아니야. 네 말대로, 이제 곧 전역이잖아. 사실 나도,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방법을 좀 배워야 해. 그래서 곧 전역하는 너에게, 처음으로 이런 이야기 해 봤어. 부탁인데, 아직은 어디 가서 내가 이런 이야기 했다고 하지 말아줄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대장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홀가분하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다시 한 번 서늘한 바람이 스쳐왔다. 발갛게 상기되어 있던 소대장의 볼이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제는."
"죄송한 건 아네? 내가 너 확! 한따까리 하려다가 참은 거 알어? 대체 왜 그런거야?"
소대장의 질문이, 이상하게 마음을 파고들어왔다. 그냥 질문 한 마디였지만, 더 이상 무엇인가를 숨기게 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진실의 힘이었다. 누군가 마음 문을 열고 다가온다면, 나 또한 그 진솔함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도 처음이었다. 군에 와서, 누군가에게 하연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렇게 가슴 속에 눌러 두고, 담아 두고, 숨겨 왔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하니, 어이없을 정도로 짧았다. 한 여자를 사랑했고, 아주 많이 사랑했는데, 그 사람의 미래와 내 미래를 보았을 때 내가 아무것도 확신을 줄 수 있는게 없었다고. 그래서 헤어지고 군에 왔다고. 그게 다였다. 더 이상 뭐가 있나 했지만 정말로 그게 다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소대장의 표정을 살폈다. 이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고통은, 그 무거웠던 시간들이라는 것은 그냥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별 이야기 아닌가. 그렇게 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 아마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나 또한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 몰래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노여워하고, 눈물 흘렸었는데, 그걸 누군가에게 이야기한 지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어 한 거야?"
"손이 예뻤습니다."
"응?"
소대장이 되물었다.
"소대장님처럼, 손이 예뻤습니다. 그래서, 소대장님을 볼 때마다 그 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 이야기까지 했다. 그 말을 듣고, 소대장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더이상 소대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마, 함부로 무어라 이야기할 수 없을 터였다. 소대장은 내가 가정 문제로 고민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성 문제는 가정 문제보다 좀 속되 보일 수도 있겠지. 완전히 가정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별 말 없이, 조용히 그것을 생각해보고 또 공감해주는 소대장이 고마웠다. 너무도 굳게 닫아오던 것을 풀어 내 놓으니, 속이 뻥 뚫려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가벼웠다. 이게, 이 뻥 뚫려버린 허전한 가슴이 홀가분함이라는 감정인가. 내 얼굴에도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스스로도 그 의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지만, 어쨌든 내 얼굴에 떠오른 것은 미소였다.
바로 그 때, 내 눈에 소대장의 뒷머리가 들어왔다.
"소대장님, 그런데 머리가..."
"아, 머리? 작업하다가 헝클어졌나?"
그물망 안에 들어있떤 소대장의 머리카락 뭉치가 그물망이 흐트러지면서 삐져나와 있었다. 소대장은 그것을 목 뒤로 만져 보더니, 그물망을 벗겨 내고 머리를 묶고 있던 고무 밴드를 풀었다. 그러자 치렁 치렁한 긴 머리가 사락 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 내렸다. 저 길고 검은 머리가 작은 뭉치 안에 담겨 있었다니. 신비한 일이었다. 소대장은 긴 머리카락을 몇 번 흔들어서 정리한 다음, 두 손으로 잘 다듬어서 다시 고무 밴드로 묶었다. 그리고 나서, 머리카락을 또아리 틀더니 다시 그물망을 씌워서 고정시켰다. 손으로 몇 번 툭툭 건드린 다음, 소대장이 물었다.
"됐니?"
"예. 예쁘게 잘 됐습니다."
그 말에, 소대장이 풋 하고 웃었다.
"훗, 현이도 스물셋이지?"
"예."
미소짓는 소대장의 눈가엔, 솔잎 틈새로 들어오는 여름 햇살이 가득했다. 소대장은 그것을 올려다보며 실눈을 떴다.
"나하고 동갑이네. 우리가 만약 밖에서 만났더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10
"정말 연락 안 할거야?"
형이 또 물었다. 벌써 세 번째다. 나는 이번엔 대답 없이 도리질을 했다. 형도 더 이상은 어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어제, 하연이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바로 논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오로지 형과 나, 단둘이었다. 하연이가 정신없이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꽉 막혀왔다.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냥 오늘 하루도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황당하고 어이없기는 하겠지. 며칠간은 몹시 슬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 시간이 할 일이다.
처음 헤어지자고 했을 때, 하연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어젯밤, 호프집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하연이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함께 길을 걸었다. 만나자 마자, 하연이는 학교에서 꼴불견 짓을 오랫동안 해 온 같은 과 친구 이야기부터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하연이는 그 친구가 하필이면 조별 수없에서 같은 조라고, 오늘은 교수님과의 조별 면담 자리에서도 졸린 눈으로 꾸벅거리다가 조 전체가 감점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분통을 터뜨렸다. 정말 짜증나지 않니? 그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 우리, 헤어지자.
하연이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멈칫 했다.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 우리, 이제 헤어지자.
- ......왜?
하연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빛은 더욱 떨려왔다. 그걸 듣자, 태연하고 싶었지만, 나 또한 목소리가 떨려서 길게 말할 수가 없었다.
- 네가 싫어.
그리고 뒤돌아섰다. 돌아보지 않았다.
"입영하시는 입영 장정 여러분께서는 지금 즉시 가지고 계신 귀중품, 현금, 신용카드, 핸드폰 등을 가족과 친지분들께 모두 전달하신 다음, 연병장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송이 흘러 나왔다. 주위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짧게 깎은 청년들은, 저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여기 저기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식을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축복의 말을 하는 어머니들은 웃는 얼굴로 울었고, 그 옆에 서 있던 아버지들은 굳은 얼굴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젊은 아가씨들은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일부러 큰 소리로 환호하면서 친구를 보내는 청년들도, 그 청년들에게 어리숙하지만 씩씩하게 경례를 하는 친구도 애틋하긴 마찬가지였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눈물로 울었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들은 가슴으로 울었다. 저마다 그렇게 작별을 한 다음, 계단을 성큼 성큼 내려가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나도 형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갔다올게, 형."
"그래."
형은 내 어깨를 두드려주더니, 자기 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감정이 북받칠 때 형의 버릇이었다.
"빨리 가, 임마."
턱짓으로 나를 보내는 형을 다시 한 번 돌아본 후, 손을 흔들고 나서 나는 짧은 머리들 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아주 잠깐, 하연이가 생각났지만, 나는 한숨을 쉬었다. 깊이 숨을 들이키고, 깊이 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묻어두기로 했다. 너무 미안했고, 너무 안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러기에 나는 상처받은 그녀를 모른척하는 짓을 이겨내야만 했다. 뚜껑만 살짝 열어도 끓어 넘쳐버릴 그 모든 감정들을, 나는 조용히 마음 한 켠에 숨겼다. 그리고, 먼 훗날까지 덮어두기로 했다. 아주 먼 훗날까지.
11
"신고합니다! 병장 이 현은 2007년 7월 31일 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나의 우렁찬 경례소리가 중대장실을 쩌렁 쩌렁 울렸다. 중대장도 만족스럽게 웃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병장! 이! 현!"
"그래. 이현, 정말 수고 많았다. 우리 중대에서 현이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자기 임무 하고, 또 내무생활 잘 한 병사도 없었던 것 같다. 사회 나가서도, 여기서 열심히 살았던 만큼만 한다면 꼭 성공할 거다."
"감사합니다!"
"자, 이건 가지고 나가야지?"
중대장이 전역증을 수여했다. 2년의 세월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귀중하게 감상적으로 받아들기엔 억울할 정도로 조잡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가라!"
중대장이 장난스레 손을 휙 내저었다. 나도 씩 미소지으며, 마지막으로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크게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중대장을 뒤로 하고 중대장실을 나오니, 소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고 잘 했어?"
"예! 병장! 이! 현!"
내 큰 목소리에 소대장이 눈을 흘겼다.
"오버하지 마. 귀청 떨어지겠다."
"소대장님, 전역 신고하겠습니다!"
"됐네요. 그 동안 수고했고, 집에까지 조심해서 잘 들어가. 위병소 나가는 순간까지 안심하지 마. 너 후임들 많이 괴롭힌 모양이더라."
"걱정 감사합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행정병들이 거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소대장님. 위병소 아마 기어서 나가야 할 겁니다. 어딜 두 다리로 걸어서 나가려고."
"어젯밤에 아주 십자인대를 끊어놨어야 하는데."
"야, 어제 나 많이 맞았어. 아직도 등이 욱신거린다. 어제 무릎으로 찍은 거 김영민이지?"
"야? 이 아저씨가 야라고 하네? 어이, 아저씨. 정신 놨어요?"
"이거 진짜 안되겠네. 야, 가서 K2에 착검해서 가져와!"
우리는 다들 좋다고 낄낄댔다. 함께 웃던 소대장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나 한번 하자."
다시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하얀 손. 하얗고 선이 고운 그 손을, 나는 이번엔 힘있게 맞잡았다. 하연이의 손은 서늘했었지만, 소대장의 손은 따뜻했다.
"잘 가라.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보자."
"예. 소대장님도 건강히 군생활 잘 하십시오."
그렇게, 소대장과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왠지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행정반을 빠져나왔다.
*****
옛날에는 중대원들이 두 줄로 죽 서서 전역자 가는 길을 축하해주는 도열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것도 옛날 일이었다. 중대원들은 다 오전 일과로 바빴고, 가는 길에 마주친 몇몇 후임들과 작별 인사만 나누었다. 남겨진 이들에게는 남겨진 삶이 있을 터였다. 나는 조용히 위병소를 나섰다.
위병소 바깥에 나가서, 부대를 돌아보았다. 이제 끝이다. 그렇게도 나오고 싶었는데,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곳이 그곳이었다. 전역이라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나. 왜 그렇게도 전역자들이 그 감흥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는지, 나는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말로 설명되는 기쁨도 아니었고, 말로 설명되는 서운함도 아니었다.
"이 병장님, 좋으시겠습니다."
"이 병장님은 무슨. 이제 민간인이야."
오늘 백일휴가를 떠나는 신병, 광은이가 곁에서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후반기 교육을 받고 와서, 자대에 온 지 한 달만에 백일휴가를 출발하는데 그게 하필이면 내가 전역하는 오늘이었다.
"그래, 광은아! 내가 맛있는 거 사줄까?"
"아닙니다."
"왜, 빨리 가야해?"
"예. 약속이 있어서..."
그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읽고, 나는 씩 웃었다.
"아아,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구나?"
"그렇습니다."
"여자친구 이쁘던데. 끝까지 잘 사귀어라. 뭐, 이제 아저씨인데 이런 말 하는건 실례이겠지만."
"아닙니다."
광은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광은아."
"예."
"여자친구에게, 항상 진솔하게 대해라. 그러면 잘 될거야."
내가 해 줄 충고는 그것뿐이었다. 광은이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그 때, 때마침 부대 앞으로 택시 한 대가 달려왔다. 나는 손을 흔들어 택시를 세웠다.
"광은아! 어서 이거 타고 가."
"아닙니다. 이현 병장님 타고 가십시오."
"아무리 이제 민간인이라도, 백일 휴가 나가는 이등병은 챙겨야지. 어서 이거 타고 먼저 가."
그러자 광은이는 쭈뼛거리더니, 결국 택시를 탔다. 그리고 창문을 내리더니, 나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이현 병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래, 너도 잘가라!"
부웅 소리를 내며 택시가 떠나갔고, 나는 그 뒤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위는 조용해졌다. 이 곳은 차가 잘 다니는 곳이 아니다. 택시 아니면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차가 많이 다니는 삼거리까지 십 분 정도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날씨는 여전히 더웠지만, 오히려 기분은 상쾌했다. 발걸음을 옮기기 전, 나는 다시 한 번 부대 정문을 돌아보았다. 노란색과 검은 색 유성 페인트를 반짝거리면서 빛내는 바리케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만든 것이었다. 숱한 내 흔적들이 이 곳에 남겨져 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안녕."
나는 손을 흔들고 나서, 툭.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Epilogue
"김영민 상병님?"
야전상의에 초록색 견장을 달고 있던 영민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왜?"
"이거, 이현 병장님한테 온 건데 말입니다?"
"현이한테?"
영민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후임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건네받았다. 하얀색 규격 봉투에 씌여진 글씨는 반듯하고 깔끔했다. 보내는 사람 쪽에, 주소와 함께 '윤하연' 이라는 이름이 씌여 있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김영민 상병님도 모르십니까?"
"모르겠는데."
영민은 편지 내용이 궁금해졌다. 뜯어볼까 하다가, 그의 손이 멈칫 했다. 영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그대로 편지를 후임에게 넘겼다.
"이거 그냥, 문서 수발병한테 반송시키라고 그래."
"예. 알겠습니다."
후임은 편지를 받아들고서는 생활관을 뛰어나갔다. 영민은 다시 야전상의 어깨에 초록색 견장을 달았다. 왠지 묵직해 보이는 어깨에, 기분이 좋아진 영민은 피식, 미소지었다.
나에게 있어 기독교 신앙은 성경 안에 있는 시대 -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의 연결점을 찾는 일이 주가 되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줄곧 이해해왔다.
비단 나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크리스쳔들은 성경이라는 text 와, 그 text 에 담긴 context 를 이해하고, 삶으로 내면화시켜서 손끝과 발끝에서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올바른 크리스쳔의 삶이라고 알고 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면서, 특히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 공격적인 전도 활동, 거대화되고 기업화되는 교회조직 등으로 사회로부터 비난과 비판의 뭇매를 얻어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쳔들은 그들의 의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왜냐 하면, 그들 스스로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교회에는 아직도 성경 말씀에 있는 거룩한 도덕 지침들을 제시하고, 그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기복 신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성도들은 기독교 안에서 성경이라는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현재 교회라는 조직의 직제가 어떤 이유로 구성되었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대체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가 어떠한 길을 거쳐 왔는지 그 역사를 알아보아야 한다. 성경의 시대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연결하는 법은 알지만, 그 중간을 채우고 있는 시간들은 소홀하기 쉽다. 마치 중세가 흔히 암흑기로 불리우는 것 처럼, 초대 기독교 교리와 직제를 정립하고, 신앙의 대상과 방법, 원리를 세워가던 시기를 우리는 흔히 까맣게 잊고 지낸다. 그러나, 실상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틀' 로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를 보며, 마치 아이가 자신의 혈육을 찾아 나가면서 자신의 뿌리와 근원을 알아가듯, 나는 기독교가 생성되고 발달해 온 역사를 되짚으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 또한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대 기독교가 공격받고 있는 많은 의문들에 대한 해답 또한 스스로 얻어낼 수 있었다.
기독교가 욕을 먹고, 비판을 받는 일은 21세기인 지금에 와서 유별난 일이 아니라, 기독교가 처음 생성되던 시기, 즉 1세기부터 줄곧 계속되던 일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1세기부터 있어왔고, 그 말을 듣기 싫어 귀를 막고 비판하고 욕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돌을 던져 죽여버리던 이들도 1세기부터 있어왔다.
예수믿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 조롱거리가 되는 일도 21세기에 들어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1세기부터 그리스도인 위정자들은 탐욕과 권력에 눈이 멀어 세상에 수많은 악을 행해왔다. 초기에는 핍박받고 박해받던 그리스도인들 이었지만, 로마의 국교로 선포된 이래 기독교 사제들은 돈과 권력에 맛들어가고 교회는 세속화되었다.
교회와 기독교 역사의 초창기부터 시작된 이 문제는 오랜 기독교 역사를 걸쳐 끊임없이 대두되었고, 유별난 것도 아니고,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기독교 인들은 조롱당했고, 기독교의 배타적인 교리는 비판받았으며, 비대하고 부패한 교회와 성직자들은 손가락질당했다. 2천년 역사 중에 그러지 않은 시기는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만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지키고, 참된 의미를 밝혀 나가며 사회와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 헌신했던 등불같은 사람들도 끊임없이 있었다. 썩어가는 환부를 도려내고, 과감히 개혁하며,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 또한 기독교 역사와 함께 해 온,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기독교 역사를 증거할 명백한 증인들이다. 2천년 역사 중에 그로써 기독교는 숱한 사람들을 살리고, 인생을 바꾸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무수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현대에 들어 기독교의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논리, 이성, 과학조차도 그 태동은 스토아 학파, 르네상스 시기 학자들의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면, 그 어떤 학문이라도 아주 깊이 연구하면 결국에는 그 근원에 있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역사는 계속되고, 되풀이될 뿐이다. 무엇은 발전하는 듯 하나, 어떤 것은 있는 그대로이다. 기독교의 본질과, 그 가치에 대한 논쟁도 결국은 1세기나 21세기나 마찬가지이다. 분명한 것은 결국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신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성경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삶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냈을 때, 기독교는 참 의미를 부여받고 교회는 진정한 제 모습을 찾는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기독교를 좀더 제대로 알고 싶다면 기독교 역사를 먼저 잘 알아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렇다면 대체 자신이 믿는 것이 왜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권위를 부여받고, 진정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 그 근거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알면 대답할 수 있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는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책이다.
다가오는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맞이하여
역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작/후보작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시상(Acardemy Awards For Best Animated Feature)은 2001년에 신설되어, 현재까지 모두 7편의 작품에게 수여되었습니다.
2001년
<수상작>
슈렉 Shrek (DreamWorks SKG) – Aron Warner
드림웍스의 슈렉이 원년 수상의 영예를 안았군요.
<후보작>
지미 뉴트론 Jimmy Neutron: Boy Genius (Paramount Pictures & Nickelodeon Movies) – Arsalan Ahmed, John A. Davis and Steve Oedekerk
몬스터 주식회사 Monsters, Inc. (Pixar Animation Studios & Walt Disney Pictures) – Pete Docter and John Lasseter
일본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오스카를 거머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후보작>
아이스 에이지 Ice Age (20th Century Fox) – Chris Wedge
릴로 앤 스티치 Lilo & Stitch (Walt Disney Pictures) – Chris Sanders
스피릿 Spirit: Stallion of the Cimarron (DreamWorks SKG) – Jeffrey Katzenberg, Mireille Soria
보물성 Treasure Planet (Walt Disney Pictures) – Ron Clements
2003년
<수상작>
니모를 찾아서 Finding Nemo (Pixar Animation Studios & Walt Disney Pictures) – Andrew Stanton
픽사 최고의 흥행작 니모를 찾아서가 2003년 오스카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의 주인공.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도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입니다.
<후보작>
브라더베어 Brother Bear (Walt Disney Pictures) – Aaron Blaise and Robert Walker
벨리빌의 세 쌍둥이 The Triplets of Belleville (Diaphana Films-France/Sony Pictures Classics-USA) – Sylvain Chomet
2004년
<수상작>
인크레더블 The Incredibles (Pixar Animation Studios & Walt Disney Pictures) – Brad Bird
경쟁상대 드림웍스의 야심작 두 편과 맞붙어 승리를 거둔 인크레더블.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합을 벌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후보작>
슈렉 2 Shrek 2 (DreamWorks SKG) – Andrew Adamson
샤크 Shark Tale (DreamWorks SKG) – Bill Damaschke
2005년
<수상작>
윌레스와 그로밋 : 거대토끼의 저주 Wallace & Gromit: The Curse of the Were-Rabbit (Aardman Animations & DreamWorks SKG) – Nick Park, Steve Box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는 유일하게 수상한 윌레스와 그로밋 콤비.
<후보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Howl's Moving Castle (Toho-Japan/Walt Disney Pictures-USA) – Hayao Miyazaki
유령신부 Corpse Bride (Warner Bros.) – Mike Johnson, Tim Burton
2006년
<수상작>
해피 피트 Happy Feet (Warner Bros.) –George Miller
탭댄스 추는 귀여운 꼬마 펭귄, 해피 피트가 2006년 오스카 수상.
<후보작>
카 Cars (Pixar Animation Studios & Walt Disney Pictures) – John Lasseter
몬스터 하우스 Monster House (Columbia Pictures) – Gil Kenan
2007년
<수상작>
라따뚜이 Ratatouille (Pixar Animation Studios & Walt Disney Pictures) – Brad Bird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픽사 최고의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한편 후보작인 페르세폴리스는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그림체이지만 정말 수작이었던 애니메이션입니다.
<후보작>
서핑업 Surf's Up (Columbia Pictures) – Lydia Bottegoni and Chris Buck
Persepolis (Sony Pictures Classics) – Vincent Paronnaud and Marjane Satrapi
...그리고, 2008년. 세 편의 경쟁작.
월-E WALL-E (Pixar Animation Studios & Walt Disney Pictures) – Andrew Stanton
볼트 Bolt (Walt Disney Pictures) – Byron Howard and Chris Williams
쿵푸팬더 Kung Fu Panda (DreamWorks Animation) – Mark Osborne and John Stevenson
픽사-디즈니-드림웍스의 적절한 삼각구도.
개인적으로는 월-E 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흥행 성적에서 앞서는 쿵푸팬더가 드림웍스에 오랜만에 오스카상을 안겨줄 수 있을지요.
ThEnd.
p.s. 바로 아래에 숨겨진 '더보기' 버튼이 있습니다.
아카데미가 장편 애니메이션 시상을 신설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시상은 앞으로 불가능해졌다고 보아도 될 듯...
물론, 아카데미가 시상하는 한 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매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애니메이션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으면 하는 것도 솔직한 바램입니다.
역대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된 것은 1991년 <미녀와 야수> 가 유일합니다.
당시 최우수 작품상은 <양들의 침묵> 이 수상하였습니다.
역시 아카데미 역사상 유일하게 공포영화가 수상한 최우수 작품상이었죠.
(즐겨 찾는 PGR 이라는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과 관련,
시위에 화염병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격한 논쟁이 붙었습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 vs 폭력을 사용하게끔 한 부조리함이 문제이다.
이 팽팽한 주장에 맞서, 졸필이나 글을 올려 보았고, 달린 댓글들도 함께 옮겨 보겠습니다.)
<영상은 EBS 지식채널 e의 '블랙' 이라는 영상입니다>
아래에 벌어진 '화염병' 논쟁에 대한 리플을 달다가,
리플이 길어지기도 하고, 또는 저의 의견을 한번 PGR 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보기도 해야겠구나 하여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도마' 라는 표현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PGR 의 글쓰기 버튼은 상당히 무거우며, 빈약한 논거로 논쟁을 벌이기가 무섭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씀드리고, 또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은 듣기 위하여 한번 말씀드려 봅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면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폭력 저항 운동을 주장했고
말콤 X 박사는 "폭력에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성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지금 아래 글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가만히 살펴보니,
이 두 사람의 생각의 차이와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라 생각됩니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독립 투사들처럼 매국노들과 원흉들을 암살하고 폭탄을 던지는 방법도 있겠고,
마하트마 간디처럼 비폭력의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 다 나름의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렇게 힘써 저항한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그 저항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후세대로서 그 방법의 가부를 함부로 잣대질하는건 주제넘은 짓거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만약에, 제가 어떤 저항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마하트마 간디가 택했던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미국의 경우, 아직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큰 문제임에는 분명하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X 박사가 저항하던 시대와 비교할 때
이제 흑인이 대통령이 될 정도로 흑인의 인권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 원동력은 흑인들의 폭력적 저항 운동보다는, 조용하지만 꾸준하고 평화롭지만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흑인들의 인권에 대한 변호와 투쟁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영향력있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공부하고, 그 곳에서 차별을 뚫고, 또 버티어내고, 법안을 통과시키고, 후대를 교육시키고...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지루합니다. 변화가 있는것 같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얻어낼수록, 더욱 견고해 진다고 확신합니다.
글을 쓰는 저도 강원도의 한 탄광촌에 살면서, 석탄 산업 합리화라는 정책의 명분하에 보상도 없이 직장을 잃은 숱한 가장들과 그들의 가정의 눈물을 보며,
또 낙후되어가는 지역 사회에 살아가면서, 공권력과 정부의 눈먼 정책에 대한 원망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살 터전을 잃고 주저앉아 눈물흘리는 철거민들에게 비폭력이나, 꾸준하고 점진적인 사회의 개선은 헛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궁지로 몹니다.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갑니다. 도망갈 곳도 없는 데 숨통을 죄어 옵니다.
하지만 어찌 그 억울함과, 분통함과, 권력의 오만한 부조리함을 모르고 간디나 킹 목사는 비폭력을 부르짖었을까요? 정말 멋모르고 하는 배부른 소리였을까요?
화염병으로 대변되는 폭력의 방법은 즉각적으로, 눈에 확연히 보이고, 충격적이고, 신속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실로 역사상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자유와 독립을 위해 폭력의 방법을 사용하고 그것을 쟁취해 냈습니다.
또한 말콤 X 박사의 주장처럼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는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폭력으로 사회가 본질적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신속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사용했던 폭력이, 기존 권력에게 빌미를 제공하여, 더 큰 억압과 부조리한 상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들 이미 알고 계신 사실이겠지만, 바로 이것이 비폭력 운동을 하게 된 이유겠지요.
또한 폭력으로 이룩해낸 일들은 우리 사회에 안좋은 영향력을 심어 놓을 위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폭력이었지만, 폭력이 문제를 해결하면, 폭력의 힘을 알게 되고, 결국 그 힘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폭력'의 변질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번 문제에 대해 한번 다른 묘안을 제시해보라고 하신다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없다고 대답해야 겠네요.
어떤 법안이 필요할까요. 어떤 사람을 갈아치우고, 어떤 정당을 없애고, 어떤 교육을 실시하고, 어떤 곳에 돈을 투자해야 이 문제가 시원스레 해결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했던 '점진적인 사회의 발전' 을 위한 대안이라는 것은 많은 시간을 들여,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일구어져야 할 결실이니까요.
문제의 책임을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돌려 버리는 듯 하여, 말씀드리고도 무책임하게 느껴지지만, 일단 그게 무책임한 발언이 되지 않기 위해 제가 스스로 할 일은, 오늘 하루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올바른 판단을 위해 열심히 보고 듣고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천하보다 소중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중점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몇몇 사람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은 바삐 단죄되어야 하고 국민에 의해 심판받아야 합니다.
촛불 시위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성숙한 비폭력 시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촛불 시위마저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미친 이 나라 위정자들은, 사실 내키는 대로 말하면 그네들이 죽어야합니다.
그러면 국민들도 그들을 심판할 힘이 있어야겠지요.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잘못된 그들을 몰아낼 힘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해야 합니다.
잘못된 대통령을 뽑은 것은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국민이라는 존재에 대해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잘못된 대통령을 세우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지금 국민들은 삶으로 뼈저리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성숙한 국민' 으로, '무서운 국민' 으로, '아는' 국민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이제 달라져야죠.
국민의 선택이 드러나는 선거에서 달라지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가 늘어가고,
그렇게 모두가 꾸준히, 점진적으로, 동반하여 성장할 때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들이 하나 하나 깨어져 가리라 확신합니다.
글쎄요.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한번 "큰 충격" 이 필요할 정도로 정치는 썩어 있고, 경제는 망가져가며, 교육은 답이 없고, 문화는 초라합니다.
꾸준한 노력도 좋지만, 때때로 조금 자극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무언가를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물론 투쟁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킹 목사도 "자유는 절대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고 역설하셨더군요.
비폭력은 저항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라는 이야기겠지요.
마지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현존합니다. -> 이로 인해 폭력적인 방법의 저항 운동이 발생했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먼저 존재하므로 그로 인한 폭력은 정당성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느 한 명의 영웅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 처럼 뚝딱 해결할 수도 없고,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폭력적인 저항 방법이 가져올 수많은 악영향을 생각했을 때,
저는 차라리 이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분개하며 폭압적인 경찰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찰서에 돌을 던질 수도 있겠고,
길거리 시위에 참여해서 촛불을 들고 묵묵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저는 미디어를 통해서 좀더 많은 사람에게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에
그런 영향력 있는 사람이 하루 빨리 되고자, 오늘 하루도 학생의 신분으로 최선을 다 해서 공부를 할 것입니다.
각자가 선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ThEnd.
///댓글들
제리와 톰 (2009-01-22 10:27:41)
많은 고뇌가 느껴지는 훌륭한 글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많은 이들이 원하는 바를 잘 적어 주셨네요.
나두미키 (2009-01-22 10:30:20)
오늘 아침 회의하면서, 팀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단 멀리 가고 싶으면 같이 가라" 라고....
모든 사람이 기본과 상식에 대해서 알고 판단하고, 올곧은 판단을 '선거'에서 내리는 그날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요..
어쨌거나.. 이런 좋은 글 이상으로 답답한 현실입니다. 이런 글이 올라와야 하는 '지금'이 너무 싫네요...
분수 (2009-01-22 10:43:30)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딱 한가지만 말씀드릴께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X 박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비폭력 저항 운동이 필요하듯이 자신을 지키는 폭력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글쓰신 분께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방법을 따르겠다고 말씀하셨듯이 말콤 X 박사의 방법을 따르겠다는 분들도 당연히 생기게 됩니다.
문제는 다른 방법을 선택한 분들끼리 서로를 비난하지 말고 왜 자신의 방법이 옳은지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폭력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만큼이나 비폭력으로 인해 장기간동안 구조적인 폭력으로 죽어나갈 사람들과 그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않게 많습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다른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비폭력을 주장하든 폭력을 주장하든 서로함께 나라의 발전을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일방적으로 한 쪽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스톰 샤~워 (2009-01-22 10:49:53)
가장 중요한 것은 부조리한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며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방법도 있고 저런 방법도 있죠.
간디나 킹 목사의 비폭력 저항이 대단히 훌륭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인 저항이 그보다 못한 것은 아닙니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는 대체적으로 저항을 선택하는 개인의 결단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 힘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간디가 훌륭했다고 해서 김구 선생님이 그 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간디가 훌륭했던 것은 비폭력 저항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을 이끌 수 있을 만큼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품과 능력을 갖췄던 점이라고 봅니다.
星夜舞人 (2009-01-22 10:51:57)
비폭력운동은 폭력을 동반한 저항보다 어떻게 보면 더욱더 잔인한 방법입니다. 아시다 시피 천안문 사태때 대학생의 비폭력엔 중국정부의 폭력으로 맞섰습니다. 용기있는 청년들이 희생되고, 망명하고 죽었습니다. 중국내에선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아는 사람들 중엔 아예 사회체제를 교란시킨 미친XX취급을 받았습니다. 현재 중국은 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나요? 오히려 정부에 슬슬 따라오는 국민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용기있는 비폭력주의자들은 희생만 내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럼, 비폭력을 지향한 촛불집회는요. 촛불집회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정쩡합니다. 아니 어정쩡할수밖에 없구요. 거기있는 사람들이 비폭력으로 폭력에 희생될 순교자를 만들수가 없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래서도 안됩니다. 만약에 촛불집회때 비폭력에 대항해서 폭력으로 사람이 죽는 모습이 보였다면, 사태는 걷잡을수 없게 되었을테지만, 정부에선 그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비폭력을 저항운동을 해도 어차피 인체에 무해하게 살생만 안하고, 언론에 영향력있을 인물만 피하고, 언론을 통제해 버리면 모르는 사람은 아 왜 데모하냐? 시끄럽게 정도로밖에 치부되니까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정부는 이미 비폭력저항운동에 대한 약점을 알고 있고, 그렇다고 희생을 매개로 해서 폭력적으로 나가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수도 없는일이니 더욱더 암울하네요.
AhnGoon (2009-01-22 11:13:49)
저항하는 사람들만 의식이 높아지고, 방법이 세련되어지는게 아닙니다.
억압하는 사람들도 점점 의식이 높아지고, 방법이 세련되어집니다.
星夜舞人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 증거가 천안문 사태이고, 이번 촛불시위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입니다.
예전 제국주의 시대나, 인종차별의 시대의 권력자들은, 민주화된 시민들의 저항 운동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때려잡고, 죽이고, 압박해서 저항을 더 키웠습니다. 그래서 진압에 실패했죠.
하지만, 지금의 권력자들은 전대의 권력자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서, 어떻게 해야 민주시민들의 저항을 무마시키는지 압니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수긍하는 척 하면서 뒷 작업을 합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장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고도화된 방법으로 자신들을 지속적으로 포장하여,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죠.
물론, 몇 몇 멍청한 인물들이 실수(?)를 해서 삐져나오기도 합니다. 이번 용산참사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그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척)해서 "우리는 당신들을 해치려는 세력이 아니에요~" 라고 사탕발림을 합니다.
하지만, 권력자들의 목적은 언제나 자기 잇속만 챙기는겁니다. 그들이 시민들을 위하는 '척'을 하는 이유는...
이놈의 제도가 민주주의라서, 여론이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자신들의 권력의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키온 (2009-01-22 11:29:03)
전반적으로 글쓰신 분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어떻게 보면 폭력적 방법에 의해 얻을 수 있거나, 얻게 되는 것이란 사상누각일 수 있습니다. 또한 더 강한 폭력적 방법에 의해 빼았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비폭력적 저항, 하지만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이런 방식에 의한 변화는 보다 견고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언급하신대로 변화의 속도가 더딥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도 확연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가시적인 변화가 안 느껴진다는, 또는 그것을 못 느낀다는 것. 조금 더 좁게 생각해서 그 변화로 인해 자신이 혜택을 볼 수 없다는 점. 이 점은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변화에 대한, 변화로 인해 더 나아질 미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다면 커다란 벽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분들을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자신은 그 열매 맛을 못 보더라도 내 다음 대, 그 다음 대에서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은 쉽게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논외로,
화염병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폭력적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시위자들이 화염병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을 취하게 만든 '더 큰 폭력'에 대한 논의는 생략 내지는 무시한 채 화염병을 쓰면 잘못이라고만 말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은 외면하고 눈에 보이는 폭력만 지적하는 것은 가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higher templar (2009-01-22 11:44:48)
정당성을 획득했다는데 동의했다면 폭력은 이미 폭력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벗을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왜 그것을 천천히 바꿔야 할까요? 정당한 물리력 행사임에도 왜 부정적으로 봐야 하나요? 왜 우리는 사악한 무리들에게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해야 하나요. 권력자들에게 겁을 주지 말고 달래서 내려오게 하자 라는 의도인 것인지...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그 많던 인구와 촛불시위로에도 눈하나 깜짝안하던 사람들. 그리고 폭력으로 진압하던 사람들과 용산에서 6명을 죽인 그들은 정당한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연일 떠들고 있습니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바뀔때 좀더 견고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의견에는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피를 먹고 자라는 민주주의 라는 말이 있는데....몇번에 걸쳐 많이 흘리는 피와 몇백년에 걸쳐서 흘리는 피의 총합은 당연 후자가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outerspace (2009-01-22 12:01:35)
American History X 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에드워드 노튼 주연)
거기서 백인들이 흑인에게 행하는 폭력은 무자비 합니다. 물리적 폭력 보다 더 무서운것은 사회, 법 그리고 제도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것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행해지는 무시하는 단어, 말투, 말 들의 폭력도 만만치 않죠
위에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더 큰 폭력이요
무조건 비폭력 시위가 방법이라는건 어패가 좀 많네요
피의 프랑스 혁명을 통해 지금은 서민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많은 프랑스 라는 나라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요
Ms. Anscombe (2009-01-22 12:36:54)
비폭력이 좋네 나쁘네, 더 큰 폭력이 무섭다 어떻다, 이런 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화염병은 폭력이며, 폭력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분들은 정말 그 논리를 일관되게 지켜주셨으면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분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현실을 봐야 한다', '이성적이어야 한다',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 '감정만 앞세우지 말자'는 식의 논리(재밌는 건 이게 폭력을 반대하는 논리로도 사용된다는)로 무시무시하게도 전쟁이라는 폭력계의 최강 보스를 옹호하는 모습을 많이 보거든요.. 전쟁, 그거 총들고 하는 거잖아요? 어떤 분은 화염병도 전쟁 무기라고 하시던데, 그 무시무시한 총 가지고 하는 전쟁은... 아이 무서워... 폭력 시러요.. 화염병 나쁘다는 분들, 전쟁 반대에도 동참하도록 해요..
토스희망봉사단 (2009-01-22 12:44:43)
민주주의가 발전한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폭력 시위는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정치인들에 대한 시스템과 법 관련 제도등이 명확히 정비가 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떡찰과 견찰들이 앞장서서 한나라당에 앞다투어 아부 하고 국민을 무슨 노예처럼 보는 사회적 시스템 하에서 비폭력은 오히려 파시즘 적인 정권에게는 우수워 보일 뿐입니다
한국의 국민 의식은 맨처음 비폭력 시위인 촛불로써 증명했고 한나라당은 이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 넘치고 후진적인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키온 (2009-01-22 12:49:32)
천안문과 관련하여 프랑스 바칼로레아의 철학 문제로 제출되었던 문제가 하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제 기억에만 의존했던 것이라서 아래 문제가 천안문 관련...)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가'
예전에도 나름의 답을 낼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저만의 확실한 가치관을 세우지 못 한채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만...
Ms. Anscombe님// 궁금해서 질문 하나 합니다. 화염병 등의 물리적 폭력과 전쟁을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내기 어렵다고 봅니다만. 물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AhnGoon (2009-01-22 13:16:41)
키온님// 물리적 폭력과 전쟁을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냐고요?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습니다.
저렇게 써 놓고 보니까, 아닐 거 같죠? 그럼 다르게 말씀해 드리죠.
폭력시위 등을 반대하시는 성향을 가지신 분들 중에 대표적인 분들 중에서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분들이 있다고 칩시다.
그 분들의 논리는 그렇죠. "폭력은 안돼. 정부의 정책이 맘에 안들더라도 말로 해야지, 왜 폭력을 쓰냐?"
그분들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나 아프간 공격 등을 반대하셨을것 같나요? 아뇨. 자이툰 부대 파병 찬성했습니다.
미국이 6.25때 우리를 도와줬으니까, 우리도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지요. 베트남전때도 마찬가지였구요.
일관적으로 폭력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파병은 안돼! 전쟁은 폭력이야!" 라고 했어야죠.
그 이하의 내용은 Ms.Anscomb 님의 댓글을 다시 보시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Ms. Anscombe (2009-01-22 13:19:01)
키온님// 매우 재미있는 현상인데, 예컨대,
'화염병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까지 몰아간 상황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지 않느냐'
고 하면
'어쨌든 폭력이지 않느냐,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대하는 건 나쁘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에 대해 우리는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시위는 비폭력이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충고까지.
그런데 동일한 논리가 전쟁 찬성에도 적용됩니다.
'사람들을 무참히 살육하고, 관련없는 민간인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쟁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예컨대, 이라크 공습에 대해)
라고 하면
'어쨌든 전쟁은 없앨 수 없는 것 아니냐. 단순히 전쟁이 나쁘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다. 국제 정세에 대해 우리는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감정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폭력에 대한 반대가 말 그대로 '폭력 전반에 대한 반대'로 일관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것을 지지하는 근거들은 그저 폭력이 싫다가 아니라 다른 논리라는 것입니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한 논의들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만.
Ms. Anscombe (2009-01-22 13:24:41)
이 논리들의 이유는 다른 곳에 있겠지만, 근거는 '본질주의적 어법'(본질주의에의 집착이든, 본질주의적인 척이든)에 있습니다. 가령, '여하튼 폭력이 있으면 안 된다', '전쟁은 어차피 없어질 수 없다'와 같은 논리죠. 자매품으로, '정치인들은 다 똑같애', '세상은 원래 더러운 거야'가 있고, 일반화하면 '팔자론'이 되겠죠.
키젤 (2009-01-22 13:36:26)
키온님// 목적만 정당하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당한 목적이 무엇이냐가 문제겠죠. 우리가 어처구니 없어 하는 목적두 그걸 행하는 사람은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 입니다. 권력층은 더 심하지 않을까요?
분수 (2009-01-22 13:36:48)
Ms. Anscombe님// 흠 그걸 주제로 글쓰면 사람들이 넘 지루해 하겠죠? ^^
말씀하신대로 편의주의적인 발상을 하시는 분들이 참 많죠.
폭력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 폭력을 행사했느냐에 따라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논리. 참 무섭습니다.
戰國時代 (2009-01-22 14:14:35)
대한민국이라는 곳이 약자의 [비폭력]이 통하는 곳인가요?
철거민이나 해고된 비정규직 직원들이 아무리 평화 시위를 해도 시민들은 시끄럽다고 욕만하고,
주류신문들은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 단 한 줄도 써주지 않는게 이 땅 대한민국입니다.
이번 용산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무려 폭력 시위였지만, 사망자가 발생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국민들 중 몇명이나 관심을 가졌을까요?
그냥 주변 사람들이나 시끄럽다고 불편하다고 욕하고 불평했겠죠.
그들이 돌과 화염병을 들고, 저항하는 이유는 그들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은 채, 화염병이 날아다녀야 비로소 관심을 가져주는 대한민국에서
비폭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일부기득권층과 그들을 비호하는 집단의 전가의 보도일 뿐이지 않나요?
스스로는 (비물리적이지만) 약자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저지르는 집단들이 약자들이 던진 돌멩이 하나를 가리키며
그들을 폭력집단이라고 몰아세우고 전범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편리한 도구일 뿐이지요.
미국이랑 비교하지 마세요.
미국이 오랫동안 흑인들을 차별해 왔지만, 그래도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FAIR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비록 오랜 진통을 겪었지만 개선되고 오바마 같은 사람도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AstralPlace (2009-01-22 15:01:03)
대한민국은
'프랑스 대혁명'급의 혁명적인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자잘한 폭력에 눈이 멀어서 민주주의를 걷어차버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번 용산 참사를 보면서 느낀 점이 그것입니다...
星夜舞人 (2009-01-22 15:39:14)
AstralPlace님// 개인적으로 로베스피에르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만약 현 상황에서 그런인물이 나타나면 모든악을 일소한다고 나서겠지만, 그런인물이 독재로 갈 가능성이 높고, 제2의 박정희처럼 떠 받들여지고, 한국인의 특성상 개인적인 우상화작업이 일어날가능성이 높습니다. 현 한국상황에선 정치면에선 측천무후같은 사람이 나타나야 된다고 봅니다. 악독해 보였지만, 그 악독함과 철저함이 권력층에만 집중되었고, 실재 민중들에겐 기존의 체제에서 아무런 피해없이 풍요로운 삶을 위한 정치를 펼쳤으니까요. 그런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한국근대사에도 있긴 있었지만, (그중에 진보당에 브레인으로 불리웠던 사형판결을 받았던 김병휘선생이 있죠) 조봉암선생의 진보당사태로 정치적으로 거세되었으니까요. 꽤 많은 엘리트라고 불리웠던 두뇌군이 박정희에서 부터 전두환까지 경찰에게 내사당하고, 노태우때 풀리긴 했지만 그쯤엔 벌써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힘을쓸수없던 6-70대가 되버렸죠..
AstralPlace (2009-01-22 16:21:02)
星夜舞人님// 100% 동감합니다.
로베스피에르같은 스타일의 인물은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처럼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정확하게 현재의 기득권에만 사정없는 죽음의 칼질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군요...
아우디 사라비아 (2009-01-22 16:26:19)
'흑인민권운동'.... 역사의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궁극의 폭력인 '전쟁'으로 극적인 인식변화가 가능했다고 생각 합니다
몸서리 쳐지지만 ... '피칠'을 각오하지 않고 '기득권'을 허물수 있다는 기대가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키온 (2009-01-22 16:36:44)
Ms. Anscombe님// 그런 논리를 펴는 일군의 사람이 있다는 현실을 그동안 모른척 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재미있는 현상이긴 하네요. 이해는 안 되지만...
저는 어떠한 이유로도 전쟁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한가지 고민되는 점은..
소수자, 약자가 강자의 '부당한 더 큰 폭력'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행하는 물리력에 대해 그것을 '폭력'이라 규정할 수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다만 한가지... 현 정권의 행태는 매우 갑갑합니다. (조금 뜬금없나요?)
키젤 (2009-01-22 17:04:08)
키온님// 폭력은 그냥 수단일뿐이죠. 문제는 목적이 아닐까요?
강량 (2009-01-22 17:41:55)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제가 삐딱하게 세상을 보기 때문이겠지만, 화염병에서 흑인대통령으로까지 사고가 확장된 김에 팔레스타인도 문제도 바라봤으면 좋겠네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에서 평화적인 저항만을 계속했었더라면 중동은 평화롭게 유지됐을까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가슴 깊은 곳을 후벼파는 말이네요.
outerspace (2009-01-22 17:55:03)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죠, 암요
퍼플레인 (2009-01-22 18:18:17)
정부는 우선 촛불시위자들을 검거했다. 나는 촛불시위자가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비정규직들을 양산했다. 나는 비정규직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미네르바를 검거했다. 나는 미네르바가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특정 단어를 검색한 네티즌을 무차별 수사했다. 나는 그 단어를 검색하지 않았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철거민이 사망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틴 뇌밀러의 '전쟁책임 고백서' 패러디입니다.
좋은 글이고, 많은 생각을 하신 듯합니다. 저는 위에 리플 다신 분들께서 생각을 잘 정리해 주셨으므로 길게 쓰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현 시국에서, 법과 권력에서 모두 소외된 지독한 약자에게 비폭력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차별을 뚫어내기에 사회적 카스트 제도는 너무 공고해져 버렸고, 황금만능주의 광풍이 몰아치는 대한민국은 오직 '경제'만을 화두로 전과 14범에게 거리낌없이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예전처럼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이 가능한' 시대는 거의 저물었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죠.
Snoopy (2009-01-22 21:29:41)
원 글 쓰신 분이 정말 시의적절하게 이 동영상을 퍼오신 것 같습니다. 피력하신 의견도 공감이 가고요.
마틴 루터 킹과 말콤X가 서로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를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속으로는 "쟤는 왜 그럴까"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었겠죠, 방식이 다르니까.
하지만, pgr에서 댓글로 싸우시는 분들을 보면, 서로 근본적인 생각이 다른데, 방식에서부터 꼬투리를 잡아서 말꼬리를 잡고 잡고 잡다가 결국에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목적의 차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화염병을 던진다"라는 방식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한참 지나면서, 사실은 "철거민 정책"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었다고 깨닫죠. 그래도 계속 싸워요. 왜냐면 내 "생각(혹은 목적)"이 맞으니까.
뭐랄까, 원칙없이 서로 편들어주려고 싸우는 초등학생 말싸움 같습니다.
Ms. Anscombe님// 원칙없이 말꼬리가 계속 물리는 어처구니없는 논리적인 척 대결들을 보시면서 분석하신 것 같은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같은 종류의 오류가 "화염병을 던진다"를 찬성했던 분들에게서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화염병을 던진다"를 찬성하시는 분들 중에서 "이라크 전쟁은 합당하다"를 반대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만... 사실이죠?)
원 글의 취지와 약간 동떨어지게, 한 쪽 방식을 지지하는(이라고 표면적으로 생각해야 쉬운) 집단의 오류만 꼬집어 내시면 또다른 논쟁을 유발하는 일이 될 것 같네요.
"화염병을 던지면 안 된다"라는 명제가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만큼 이상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둘 다 같은 논리로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원인이나 제반 환경을 따져보면 둘 다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이겠죠.
화염병을 없애는 방법이 철거민들의 삶을 보장하고 거리로 내몰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면 좋겠고, 억지로 시위를 진압하고 화염병을 강제로 빼앗거나 법으로 규제하면 이것은 또다른 폭력을 만드는 일이니, 같은 논리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여나 시위하시는 분들이 화염병은 사고의 위험이 높으니 사용하지 않고 시위를 하겠다라고 생각을 하시고 시위를 하시면, 엄청나게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악은 되지 않을까 주장해보는 것입니다.
Minkypapa (2009-01-22 22:08:53)
화염병 없는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깨끗한 나라가 선진국이죠.
화염병에는 죽음으로 처벌하면서 성추행이나 수억원 떼먹어도 정직 혹은 감봉정도로 대응하는 현실이 얼마나 환장할 노릇인지...
책을 읽는데 무슨 책부터 읽는 것이 좋을까? 고민이라면, 일단 책을 칭찬하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이 맞는 듯 하다.
책을 칭찬하는 책을 읽으면, 일단 책을 읽을 맛이 난다. 독서의 가치에 대해 칭찬을 하고, 책 읽는 사람에 대해 칭찬을 한다. 책을 읽는 중에,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칭찬을 계속해서 듣고 있으니, 괜스레 내 머리를 누군가 쓰다듬어 주는 듯 하여 뿌듯해지고 내가 무언가 그럴 듯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 마련.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일단 '독서 입문서' 로는 독서 예찬, 독서 방법 등에 대한 책을 한두 권 정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렸을 적 부터 나름 책을 좋아하고 어느 정도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되듯, 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서는 책을 멀리하게 되어 버렸다. 군대에 있을 때 - 또한 그 때도 누구나 그러겠지만 - 잠시 책의 감칠맛에 빠져서 잠시 책을 폭식하듯 읽어 나가면서, 내가 읽은 책의 목록을 수첩에 적어 나가는 것이 지루한 군 생활을 이겨 나가는 하나의 재밋거리였다. 하지만 전역한 이후에 다시 책을 붙들자니 왜 그렇게 눈과 귀를 빼앗가는 볼거리, 놀거리들이 많은지.
나름 영상을 전공한다는 것은 핑계일까, 책 읽을 시간이 나도 영화 한 편을 보거나, 게임 한 판을 즐기는 데 시간을 사용해 버리고,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손에 든다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단 책을 열고 나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언어들과 놀라운 지식들은 얼마나 매혹적이고 매력적인지. 일단 시간을 만들고, 책을 손에 쥐고, 그 첫 장을 펴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시작을 하면 책은 여간해서는 실망시키거나 거짓말하는 법 없이 그 나름대로 각자 가지고 있던 가치로운 보물들을 내 앞에 펼쳐 보인다.
다시 한 번, 책과 독서에 대한 소중함과, 책 읽는 사람에 대한 아름다움을 되새기고저 고른 책이 우리 시대의 애서가 29인이 함께 펴낸 <책, 세상을 탐하다> 였다. 책을 사랑하고,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가치를 역설하는 이들의 짧지만 호소력 있는 메시지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글은 이문재 시인의 '척추로 읽읍시다' 였다.
살고 있는 집 자체가 의자가 별로 없는 좌식 문화이다 보니, 어렸을 적 부터 책을 책상에 바로 앉아서 읽는 습관보다는 벌렁 드러누워, 그러다 팔이 아프면 옆으로 드러누워, 그러다 옆구리가 결리면 엎드려, 이렇게 뒹굴거리면서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이 되고 도서관에 다니면서도 삐딱하게 기대어, 아니면 허리를 푹 숙여, 그렇게 구부정하게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문재 시인의 '척추로 읽읍시다' 는 책을 읽는 새로운 방법과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르쳐주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별 특별한 내용이 있지는 않다. 바르게 등을 세우고 책을 읽는 올바른 자세를 말하고 있기도 하고, 그만큼 정신을 집중하고 정독해서 책이 가지고 있는 깊은 가치를 정갈하게 받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대목을 읽을 때 내 자세가 삐딱했었고, 때문에 자세를 고쳐 잡았던 것이 뇌리에 남아서일까.
책을 읽다 보면 책을 읽기보다는 글자를 읽고 있고, 책을 읽고 나서 정보를 얻기 보다는 또 한권의 책을 읽었다는 자기 만족을 얻기 급급한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것은 눈으로 읽는 책이고, 한쪽 눈으로 읽고 한쪽 눈으로 내버리는 책이다.
하지만 척추로 읽는 책은 다르다. 단어와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행과 행, 그리고 그 행간의 보이지 않는 여백에 들어 있는 의미를 읽으며, 내가 이제껏 축적해 온 지식과 내 손에 들려 있는 한 권의 책이 서로 힘겨루기도 하고 이리저리 맞대어보며 들어올 것은 들어오고 내칠 것은 내친다. 책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슷하다. 문학이 아니어도 줄거리는 있다.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 까지, 잘 만들어진 책은 하나의 소설과 같아서, 나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 들이고 웃고 울리다가 결국에는 감동을 준다. 결국 감동은 척추로 읽는 책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많은 양의 책을 읽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이 자그마한 산골 도서관에서 쌓여 있는 장서도 내가 다 읽을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아마 세상에는 이 도서관에 쌓여 있는 모든 책보다 더 많은 책이 하루만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 결국, '내가 읽은 책' 목록표에 빈 칸을 채워 나가는 산술형 독서보다는, 내 척추 한칸 한칸에 새겨놓을 의료적 독서가 나에게 정말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